취재의 경계를 넘는 순간

by 마감했나연

<추천 곡> Spell - 폴킴


​*소설 속 모티브와 콘셉트 외의 인물, 단체, 장소, 사건 등은 모두 실제와 관계없음을 알려드립니다*


다음 날에도 나연희는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뉴스 사이트, 커뮤니티, SNS를 수시로 들락거렸다.

기사 하나라도 올라왔을까 봐 몇 분 간격으로 새로고침을 반복했다.


없다.


다행이었다. 아직은 아무도 그들의 시간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날 이후, 두 사람의 만남은 조금 더 조심스러워졌다.


카페나 식당보다는 한적한 공원 주차장을, 눈에 띄는 거리보다는 서로의 스케줄이 끝난 늦은 시간대를 택했다. 때로는 나연희의 회사나 집 앞에서, 차 안에서만 짧게 얼굴을 보고 헤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나려는 마음까지 숨길 수는 없었다. 두 사람은 이미 서로에게 스며들어 있었다.


"괜찮겠어요?" 나연희가 조심스럽게 물으면, 유원우는 짧게 웃으며 말했다.


"보고 싶은데, 안 보는 게 더 이상하잖아요."


그렇게 그들은 사람들의 시선과 불안을 피해 가며, 그들만의 만남을 이어갔다.


나연희는 계속해서 유원우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그는 자신을 변하게 만든 이유와 그 변화의 시작점을 솔직하게 이야기했으며, 그 진심이 그녀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나연희는 그가 이제 막 자신을 찾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변화가 그에게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확실히 이해했다. 그가 지나온 시간들과 그가 느꼈을 고통들을 떠올리며, 자신도 모르게 그에게 더 끌리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하지만, 식당 앞 사진 사건 이후로 그녀의 마음속엔 여전히 두 가지 감정이 충돌하고 있었다. 그의 변화와 성장을 가장 가까이서 응원하고 싶은 마음 한편으로는, 그와 가까워질수록 자신의 직업적 객관성을 유지하기 어려워질 것 같다는 걱정이 들었다. 그 관계가 점차 직업적인 선을 넘어설 때, 그로 인한 혼란이 어떻게든 그녀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칠 것 같았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그녀는 더 이상 그와의 관계를 직업적으로만 다룰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유원우는 그녀에게 많은 의미를 부여한 사람으로, 이제 그와의 관계는 단순히 기자와 연예인 사이가 아니라, 더 깊은 인간적인 관계로 변해가고 있었다.


유원우의 바쁜 스케줄로 인해 두 사람은 3주 만에 다시 만나게 됐다. 장소는 그의 작업실.


"그때 처음 봤을 때부터 좀 달랐어요."
유원우는 조용히 말을 꺼냈다.


나연희는 그의 말에 잠시 머리를 갸우뚱했다.
“처음이라니요? 언제요?”


유원우는 고개를 돌려 멀리 있는 어딘가를 빤히 응시했다.


“사실, 저는 데뷔하고 나서부터 동료 연예인들과도 어느 정도 거리를 두려고 했어요. 같은 업계에 있어도 이상하게 마음이 잘 안 가더라고요. 무대 아래의 삶과 내가 보는 세상이 너무 다르게 느껴졌거든요."


나연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그 이질감이 좀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처음 기자님과 인터뷰했을 땐 좀 달랐어요. 뭔가 다르게 느껴졌어요."


나연희가 눈을 크게 떴다.
“다르게?”


유원우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날, 기자님은 제가 그동안 만나온 다른 기자들과는 달랐어요. 기자간담회부터 첫 인터뷰까지. 다들 내 입에서 뭐 재밌는 거 뽑아먹을 게 없는지 눈을 치켜뜨고, 나를 향한 이미지나 스캔들만 찾으려 했는데, 기자님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물어봤잖아요. 그게 계속 기억에 남았어요."


“사실, 기자님을 처음 봤을 때 조금 놀랐어요. 연예인들을 다루는 사람들은 대부분 겉만 보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그런데 기자님은 처음부터 뭔가 다르게 보더라고요. 시선을 던지는 방식도, 질문하는 태도도… 단순히 기사를 위한 관심이 아니라 사람 자체를 보려는 느낌이었어요. 그게 좀 낯설고, 그래서 더 신경이 쓰였어요."


나연희는 조금 당황했지만, 그 말을 통해 그가 느꼈던 게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그랬군요."


"네. 그런 사람은 처음이었어요. 계속 내 눈을 바라보고, 기사를 쓰기 전에 먼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궁금해했던 기자는 처음이었어요."


유원우는 잠시 말을 멈추고, 그다음 말을 이어갔다.
"그날 이후로 계속 신경이 쓰였죠. 연예인으로서만 나를 보지 않는 사람은 처음이었거든요. 그 점에서 이상하게 끌렸고, 그 끌림이 점점 더 커졌어요."


나연희는 유원우의 말을 조심스럽게 듣고 있었다.
그의 말속에서 드러나는 감정은 분명히 직업적 감정 이상의 무언가였다. 그렇다고 직접적으로 그의 감정을 받아들일 준비는 되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왜 자신에게 호감을 느꼈는지, 이제야 조금씩 이해가 갔다.


"기자는 그런 거죠. 연예인도 공적인 사람이기 앞서 그냥 사람이고, 그들의 이야기를 정확하게 들으려는 게 제 역할인 거죠.“


나연희는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잠시 그가 어떤 사람인지 다시 생각했다.
그가 보여주는 모습은 무대에서의 모습과는 조금 달랐다. 그는 자신을 감추고, 남들에게 보여주지 않으려 했던 부분을 솔직하게 꺼내놓으려는 사람이었다.


유원우는 조금 더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어쩌면 그게… 내가 기자님에게 끌린 이유일지도 모르겠어요. 무대 위에서의 모습이 아닌 진짜 내가 되고 싶었으니까."


나연희는 그 말을 듣고,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그녀 앞에 있는 그는 단순히 유명한 연예인이 아니었다.


‘이 사람의 진짜 모습은 무엇일까?’


그걸 알아가는 것이 그녀에게도 중요해질지도 모른다고, 이제야 느끼기 시작했다.


유원우의 작업실은 따뜻한 조명이 켜져 있었고, 방 안에는 그의 손길이 묻은 음악의 흔적들이 가득했다. 키보드 위에 펼쳐진 악보, 한쪽 벽에 걸린 기타, 소파 옆 테이블에 놓인 온갖 음료와 커피. 나연희는 그 공간이 무척 그 다운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어 미소 지었다.


유원우는 소파 맞은편에 앉아 음료 잔을 천천히 굴리며 잠시 침묵했다. 나연희는 그런 그를 보다가 장난스럽게 고개를 기울였다.


“왜요? 갑자기 왜 그렇게 진지해져요?”


유원우는 살짝 웃으며 손으로 입가를 가리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사실..” 그가 음료 잔을 내려놓으며 머뭇거렸다.


나연희는 그런 그를 빤히 바라보다가 슬쩍 장난스럽게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예요? 빨리 말해봐요.”


유원우는 잠시 시선을 피하더니 작게 웃으며 말했다.

“기자님 처음 봤을 때부터… 너무 매력적이었어요. 분위기부터 눈길이 가더라고요. 맞아요, 사실 예뻤어요. 첫눈에 호감이 갔어요.”


그 말에 나연희는 살짝 놀란 듯 눈을 깜빡였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일하면서 예쁜 사람 많이 보잖아요. 근데 제가 예뻐 보였어요?”


유원우는 두 손으로 음료 잔을 살짝 굴리며, 부끄러운 듯 볼이 붉어졌다. 이어 쑥스러운 듯 시선을 잠깐 피했다가 말했다.


“그냥 예쁜 걸 넘어서.. 무슨 아우라 같은 게 느껴졌어요. 눈빛도, 당당한 태도도 빛이 나는 사람처럼 보였어요. 저도 이렇게 갑자기 마음이 끌릴 줄은 몰랐어요. 누군가에게 첫눈에 반한 게 태어나서 처음이었거든요.”


나연희는 잠시 멈춰서 그 말을 곱씹고는, 고개를 살짝 갸웃하며 웃었다.

“이상하다… 사실 저도 원래 원우 씨 같은 스타일을 좋아했어요.“


이어 그녀는 작업실 한쪽에 놓인 악보들을 바라보다가 작은 미소를 지었다.
“노래 잘하고, 음악에 진심이고, 결과와 상관없이 성실하게 자기 길 묵묵히 가는 사람, 되게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제가 상당히 얼빠인데.. 외모도 그렇고 원우 씨 같은 사람, 정말 제 취향이에요.“


두 사람은 눈을 마주치고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때 유원우가 소파에 등을 기대며 말했다.
“기자님은요.. 외면도 내면도 진짜 빛이 나는 사람 같아요. 기자님을 처음 보고 아름답고 곱다는 말을 비로소 이해하게 됐어요.“


나연희는 괜히 어색하고 부끄러워져 무릎 위에 손을 포개며 말했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얘기 나누게 된 것도.. 어쩌면 우리, 운명이었던 걸까요?”


유원우는 작업실 문쪽을 한번 바라보다가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필연이었나 봐요.”


작업실 안에는 잠시 고요한 따뜻함이 감돌았다.
그리고 그 순간, 두 사람의 눈빛에는 말보다 더 많은 약속이 담겨 있었다.


-


그때 마침, 그녀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알림은 기사 작성에 대한 요청이었다.
기자라는 직업은 언제나 그녀를 돌아보게 했다.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며, 다시 대화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럼, 기자님과 나는 정말…"

유원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네, 처음 만난 이후로 우리가 계속 마주하는 이 시간은 이제 하나의 시작일 뿐이에요."


나연희는 그의 말이 과연 진심인지를 알 수 없었지만, 그의 마음이 진심이라는 것만은 느낄 수 있었다. 또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유원우가 이제 더 이상 단순한 취재원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관계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는…
그녀 스스로도 모르는 일이었다.

keyword
월, 수, 금 연재
이전 08화o w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