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곡> 우리의 이야기 - 멜로망스
*소설 속 모티브와 콘셉트 외의 인물, 단체, 장소, 사건 등은 모두 실제와 관계없음을 알려드립니다*
며칠 뒤, 나연희는 퇴근길에 유원우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연희야, 퇴근 중이지? 저녁 먹었어?“
그의 목소리는 오늘도 부드러웠다. 나연희는 횡단보도 앞에 멈춰 선채로 가방을 고쳐 들었다.
“아직. 이제 막 먹으려던 참이었어. 왜요?”
“그럼 오늘 같이 먹을래? 좋은 곳 알아뒀어.”
나연희는 잠시 망설였다. 휴대폰을 내려놓고 앞에 멈춰있던 버스 창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봤다. 피곤에 절은 얼굴, 생기 없이 풀린 눈, 한눈에 봐도 피곤해 보였다. 그녀는 한숨을 쉬며 가방에서 쿠션 팩트를 꺼내 들고는 서둘러 화장을 고쳤다. 처음 만난 날로부터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여전히 그에게 예뻐 보이고 싶었다.
쿠션을 두드려 어두워진 피부를 정리하고, 회색빛 입술에 생기를 더했다. 이마에 붙은 잔머리를 쓸어 넘기고, 옷매무새도 정리했다. 그래도 여전히 피곤해 보이는 얼굴. 한숨을 들이쉬고는 거울을 보며 혼잣말을 했다.
“뭐 어때. 나 원래 이 정도 얼굴이었잖아.”
그러면서도 이미 그녀의 발걸음은 그를 향해 가고 있었다.
“좋아. 어디로 가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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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이 보이는 작은 이탈리안 레스토랑.
창가 자리에는 은은한 촛불이 놓여 있었다.
“와인 괜찮아? 여기 무알콜 샴페인도 있대.“ 유원우가 물었다.
“응, 좋아.”
그녀의 대답에 유원우가 살짝 미소 지었다. 그는 오늘을 위해 신경 써서 가게를 골랐다. 한우 오마카세, 파인다이닝, 양식 레스토랑 등 여러 곳을 비교하며 고민한 끝에 사람도 없고 조용한 곳, 둘만의 시간을 오롯이 즐길 수 있는 곳을 택했다.
와인이 따라지고, 은은한 음악이 흐르는 사이 두 사람은 서로를 빤히 바라보았다.
“오늘 하루는 어땠어?” 유원우가 먼저 물었다.
“뭐, 정신없이 지나갔지. 마감해야 하는 기사도 있었고.”
“고생 많았어.”
그 한마디에 나연희는 그제야 긴장이 탁 풀리는 기분이었다. 그와 있으면 언제나 그랬다. 하루 종일 쌓였던 무언가가 조용히 사그라드는 느낌.
“자기는?” 나연희가 커다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물었다.
“나도 정신없었지. 컴백 준비하면서 인터뷰도 하고, 이것저것 스케줄 소화하느라.”
유원우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서도 피곤함이 가득 묻어났다. 하지만 동시에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열망과 열정이 느껴졌다. 데뷔한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꿈을 꾸고 미래를 떠올리면 가슴이 뛴다는 그가 참 좋았다.
“우리 둘 다 정말 바쁜 삶이다.“ 나연희가 손가락으로 와인 잔을 살짝 돌리며 말했다. ”인터뷰는 어땠어?“
유원우는 잠시 생각하더니,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오랜만이라 그런가 생각보다 어렵더라고. 뭘 대답해야 할지 고민되기도 하고. 괜히 말 한번 잘못했다가 의도와 다르게 이상하게 기사 날까 봐 신경 쓰게 되더라고.“
“우리 인터뷰하는 모습이랑은 좀 다른 것 같네.“ 나연희가 재밌다는 듯 웃었다. ”내 앞에선 잘했잖아? 그렇게 본인 얘기도 막 술술 하고?“
“아니야. 나 처음엔 엄청 긴장했었어. 기자님도 잘 아시면서?” 유원우는 고개를 돌려 나연희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의 눈에 묻어난 농담은 여전히 따뜻했다.
“그렇긴 해. 나도 처음에 당신 보고 처음으로 긴장이란 걸 했었으니까. 그래도 결국 입이 풀리는 거 보고 좀 웃기긴 했다.” 나연희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연희는 항상 좋은 질문들을 던져주니까, 나도 진지하게 답하려고 애쓰게 되더라.” 유원우가 살짝 입꼬리를 올리며 말을 이었다. “자긴 어때? 다른 연예인들 인터뷰할 때?”
나연희가 미소를 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난 사실 인터뷰를 할 때마다 고민해. 내가 말하고 싶은 것보다는, 상대가 듣고 싶어 하는 걸 찾아서 물어보려고 하니까.“
“맞아. 상대의 이야기를 끌어내는 데 그런 방식이 필요하기도 하지.” 유원우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인터뷰이의 이야기를 잘 끌어내려면, 그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감각도 필요하고.“ 나연희가 말했다. 그도 어쩐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앞으로의 인터뷰에서도 나랑 했을 때처럼 그냥 하고 싶은 말 편하게 하면 돼.” 나연희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유원우는 살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직도 기자들 앞에 서면 두려움이 든다니까. 그래도 예전보다는 덜하긴 해.” 어깨를 으쓱하며 말하면서도, 그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약간의 불안이 묻어 있었다.
나연희는 그의 말을 듣고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점점 더 나아질 거야. 처음부터 완벽할 수는 없잖아.”
유원우는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사실 너랑 이야기를 나누면서, 기자분들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 것 같아. 너를 통해 그들의 삶을 잘 이해하게 됐어. 그동안은 단지 기사를 통해서만 기자들을 봤었는데, 그래서 이해가 안 되는 순간도 있었는데, 이제는 기자분들 고충이나 노력도 조금은 알 것 같아.”
나연희는 그 말을 들으며 잠시 말없이 그를 바라봤다. 그의 눈빛 속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그가 겪었던 두려움과, 기자들에 대한 이해가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했다.
“그렇게 생각해 줘서 고마워. 왠지 모르게 뿌듯하네.” 나연희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래도, 기자들도 결국 사람마다 다르니까, 너도 그냥 너답게 말하는 게 제일 좋을 거야. 사람들이 뭐라 해도, 자신감을 갖고, 네가 하고 싶은 말을 자연스럽게 하면 돼. 내가 아는 넌 좋은 사람이니까 괜한 걱정할 필요 없어.“
유원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제는 나도 조금 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아. 그리고, 너를 보면서 나도 더 열심히 곡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어. 내가 만든 곡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힘을 주고 싶고.”
나연희는 그의 말을 듣고 다시 한번 웃었다. “그럼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진심을 담은 노래로 이야기해. 나도 늘 설레는 마음으로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두 사람은 그 순간, 따뜻한 미소를 주고받았다. 잠시 창밖을 바라보던 유원우가 그녀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나도 네가 어떤 이야기를 하든 다 듣고 싶어.”
나연희는 순간적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와인을 한 모금 마시며 눈길을 창밖으로 돌렸다. 저녁 하늘이 어둑어둑해지고, 가로등 불빛이 살짝 흔들리고 있었다.
잠시 대화가 멈추고, 창 밖의 노을을 함께 바라보던 그때, 나연희가 조용히 침묵을 깼다. “어떻게 보면 나랑 당신은 다른 길을 가고 있었지만, 이렇게 만나서 결국 비슷한 방식으로 서로를 더 잘 알게 되는 것 같아.”
유원우는 그 말을 듣고 천천히 미소 지으며 말했다. “맞아. 우린 각자의 방식으로 서로를 잘 알아가고 있지.”
두 사람은 또 한 번 서로의 눈을 마주치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많은 감정들을 나눴다.
“우리.. 이렇게 같이 저녁을 먹을 수 있다는 게, 새삼 신기하다.” 나연희가 나지막이 말했다.
“그러게 말야.“
“처음엔 이렇게까지 될 거라고 생각 못 했는데.”
유원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처음엔 기자와 가수였으니까.”
“그랬지.“
그런데 이제는.
유원우는 조용히 손을 내밀었다. 테이블 위에서 자연스럽게 그녀의 손을 감싸 쥐었다.
”서로를 모르고 산 시간이 길었던 우리가 결국 이렇게 만나게 됐네.”
“지금 이 순간이 참 좋아.” 나연희는 따뜻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나도.“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던 유원우가 속삭였다.
두 사람은 그렇게 오래도록 서로를 바라보았다.
와인이 줄어들고, 저녁은 깊어갔다. 그들의 이야기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