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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셋, 혼자가 된 날

by 류이람

3월이다.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새 학기의 시작이다. 크리스탈 월드에 첫 출근을 한 지 이 주가 지난 시점이기도 하다. 젤라는 내 생각보다 더 이상한 사람이었고, 예상보다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첫 출근을 한 날, 젤라는 내게 간단한 인수인계를 해주었고 잘할 수 있겠죠?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그대로 쌩 나가버렸다. 그리고 내 예측은 틀리지 않았다. 정말 할 것이 없었다.


젤라가 지시한 업무는 딱 세 가지. 첫 번째, 출근하면 센터 전체적으로 쓸고 닦기. 두 번째, 틈틈이 오픈카톡과 SNS로 들어오는 예약 문의 확인하기. 세 번째, 손님이 오면 커피 내리고 2층 상담실에서 손님 얘기 들어주기. 사실상 할 일은 2번까지였다. 손님이 아예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래도 나름 해방촌이고, 언덕을 올라야 하긴 하지만 마을버스를 타면 금방 가는 거리고, 근처에 경리단길도 있고 아파트랑 학교도 있는데 종일 파리만 날렸다. 젤라는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는 듯했다. 이따금씩 센터 안으로 들어와서 “오늘 손님 왔어요?”라고 물었고 나는 없었다고 답한다. 그러면 젤라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문 밖으로 사라진다. 이렇게 매출이 안 나오는데, 센터 유지는 어떻게 할까. 따로 직업이 있는 것 같지도 않았는데, 상담센터, 아니 크리스탈 월드에 있는 시간은 하루에 1분 남짓이었다. 내 입장에서는 잘된 일이지만, 이런 일상이 반복되니 어쩐지 지루해졌다.


엄마에게는 문자로 통보했다. 약소하게나마 자기 밥벌이를 시작한 딸에게 엄마는 짧은 한마디로 답했다. 「축하해.」 이것이 엄마가 원했던 결말일까. 엄마의 압박 같기도, 조언 같기도 한 말에 떠밀리듯이 시작한 반강제적 구직이었지만, 어쨌거나 매일 아침 9시 30분에 일어나 씻고, 몇 벌 없는 옷가지 중에 그나마 단정한 옷으로 갈아입고, 달랑 지갑과 충전기만 들어있는 크로스백을 매고 아무도 없는 집을 나오니 이제야, 뭔가 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주말 아침 일찍 일어난다거나 퇴근 후에 거실 소파에서 TV를 보고 있는 엄마와 담소를 나눈다거나 하는 기적 같은 이야기는 벌어지지 않았다. 그냥, 아무 색깔도 무늬도 없는 내 삶에 해방촌 꼭대기 심리상담센터에서 웹툰을 보는 일상이 조금 추가된 것뿐이다. 그 사람이 오기 전까지는 그랬다. 잘 다져진 평지를 뛰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 전까지는, 모든 것이 평범했다.


그날도 똑같았다. 나는 푹신한 쿠션을 깐 하얀색 의자에 앉아, 어젯밤 열두 시에 미처 열람하지 못한 새로운 웹툰 회차를 집중해서 보고 있었다. 그리고 센터 휴대폰 뒤편에 자리해 있는, 사실상 무용지물인 큰 모니터에 띠링, 경쾌한 소리가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포털 사이트에 등록해 놓은 예약 채팅창으로 하나의 메시지가 들어왔다. 2주 만에 처음 들어오는 문의가 신기해 나는 보던 웹툰을 뒤로하고 채팅창을 클릭했다.


예약하려고 하는데요.


화면 너머에 있는 그 사람은 연달아 메시지를 보내왔다.


당일 예약도 되나요?


나는 서둘러 젤라가 한 말을 떠올려보았다. 당일은 안된다, 이런 매뉴얼은 없었던 것 같았다. 허둥지둥 자판을 두드렸다. 이곳에 와서 처음 써보는 키보드였다.


네. 가능하세요.


상대방은 오늘 저녁 7시에 방문하겠다며, 감사하다는 말을 끝으로 채팅방을 나가버렸다. 급격하게 불안감이 닥쳐왔다. 내담자가 온다. 사람이 온다. 그것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온다. 그리고 난 그 사람과 마주 앉아야 한다. 무려 50분 동안이나 말이다. 젤라는 기본 상담 시간이 50분이라 일러주었다. 내담자가 원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절대 먼저 일어나지 말라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50분이라는 시간을 채우라 했다. 그 이상은 내 선택이고, 내담자가 요구하더라도 원하지 않으면 정중히 거절해도 된다고 설명했다. 내 어깨를 두드리면서, 걱정 말라고. 그냥 가만히 들어주는 것, 그 하나로 충분할 거라고.


은둔 생활을 시작한 지 오 년. 가끔씩 화장실 갈 때만 마주치는 엄마를 제한 외부인과 면대면으로 대화해 본 건 일 년 전. 자신이 없었다. 젤라는 잘 들어주기만 해도 된다고 했지만 그 잘 들어준다는 것을 어떻게 할지 몰랐다. 상대방의 까만 동공만 마주하면 저절로 고개가 푹 숙여졌다. 잘못한 것이 없는 데도 그랬다. 어쩌면 내 존재 자체가 타인에게 잘못일지도 몰랐다. 그래서 불가피하게 상대방을 마주 보고 말해야 할 때는,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갖은 핑계를 대며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그런데 5시간 뒤에 올 이 사람은, 내가 피할 수가 없는 사람이다. 고개를 빳빳이 들고, 친절한 미소로, 상냥한 목소리로 맞이해야 한다. 어찌 듣고만 있겠는가. 적절한 순간에 고개도 끄덕이고, 미간을 구겼다가 폈다가 하면서 여러 가지 표정도 지어야 할 것이다. 더 생각하다간 금방이라도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아서 나는 일곱 시의 일은 일곱 시에 걱정하기로 했다.


정각이 되어도 철문은 묵묵부답이었다. 정확히 10분 전부터 불안감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나는 머리로 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를 그렸다. 만약에 문이 열리고 만취한 거구의 남자가 들어와서 여기, 소주는 없어요?라고 말한다면? 그리고 2층의 반짝반짝한 방에 나를 앉혀놓고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꺼낸다면? 내 반응이 마음에 안 들어서 말하다 말고 책상을 쾅 내려친다면? 언젠가 친구가 ‘하유람, 너는 생각이 너무 많아서 문제야’라고 한 적이 있었다. 일어나지도 않을 일 그만 좀 생각하라고 핀잔을 줬었는데, 나는 세상에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는 건 없다 생각한다. 이건 내 일상일대의 위기다. 울고 싶은 표정으로 애꿎은 담요만 쥐어짜고 있는데 문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시계를 보니 7시 10분이었다.


손바닥에 땀이 흥건하게 맺혀서 손잡이가 잘 열리지 않았다. 급한 대로 담요에 쓱 문댄 후 문을 여니 거구의 남성 대신 회색 트레이닝복 세트를 입은 여자가 서 있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일이 생각보다 늦게 끝나서요.”


여자가 미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정말로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르는 낯빛이라 내가 도리어 손사래를 치며 어, 어 괜찮습니다,라고 답했다. 도무지 눈을 마주칠 자신이 없어 그녀의 콧잔등을 바라보기로 했다.


여자가 하얀색 의자를 가리키며 앉아도 되냐고 정중하게 물었다. 어쩔 줄 몰라 여자의 반질반질한 고동색 숄더백만 바라보고 있다가 황급하게 의자를 뒤로 빼주었다. 예의 바른 그녀는 나의 사소한 배려에도 꼬박꼬박 감사의 인사를 덧붙이며 의자에 앉았다.


내가 펼친 상상의 나래 속 최악의 시나리오와는 달리 훨씬 유하고, 편안해 보이는 그녀의 모습에 한시름 놓았다. 첫 내담자가 이런 사람이라 다행이었다. 나는 서둘러 젤라가 알려준 내담자 응대 매뉴얼을 복기했다. 일 번, 마실 음료수 물어보기.


“호, 혹시, 무슨 음료수 원하실까요?”


책장 사이에 꽂혀있는 코팅된 종이를 내밀었다. 여자는 흥미로운 눈빛으로 메뉴판을 천천히 살펴보더니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겠다고 했다.


“제가 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라서요.”


그렇게 말하며 여자가 멋쩍게 웃었다. 나도 뭐라 반응해야 할지 몰라 덩달아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샷을 내렸다. 얼음 냉장고에서 얼음을 크게 한 스쿱 퍼내어 유리컵에 넘칠 정도로 얼음을 담았다. 빨대로 커피를 한번 쪽 들이킨 여자가 만족스럽다는 듯이 웃으며 시선을 내 얼굴로 향했다. 그 시선이 부담스러워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그러면 안 됐는데.


이 번, 결제하기. 여자에게서 카드를 받아 단말기에 꽂고 음료수를 포함한 상담 비용을 입력했다. 여자에게 영수증과 함께 카드를 도로 건네주니 감탄사를 연발했다.


“여기, 되게 싸네요. 다른 상담센터는 이 가격의 두 세배쯤 하던데.”


삼 번. 사전 질문지 작성과, 크리스탈 월드 규칙 안내하기. 파일철에 수북이 쌓여있는 질문지 중 한 장과 젤라가 나에게 주었던 종이를 여자에게 똑같이 내밀었다. 여자가 거침없이 질문지 빈칸을 채웠다. 그러고는 종이에 적힌 글자를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그녀는 이해할 듯 말 듯, 알쏭달쏭하다는 얼굴로 세 개의 규칙을 정독한 후 말을 꺼냈다.


“투명해지라는 게, 거짓말하지 말고, 솔직하게 다 말해라. 이런 말씀인가요?”


나는 대충 그렇다고 얼버무렸다. 사실 나도 무슨 뜻인지 모른다. 이곳에 면접을 보러 온 첫날, 젤라가 나에게 알 수 없는 규칙들을 알려줬을 때부터 쭈욱 그 의미에 대해 고심해 보았다. 센터 이름이 크리스탈, 2층에 있는 방도 온통 유리. 그렇다면 유리처럼 가감 없이 속내를 다 드러내라, 그래야 상담을 원활하게 할 수 있다. 이런 소리인지, 아니면 거짓말을 끔찍이도 싫어하고 유리 마니아인 사장의 개인 취향이 반영된, 구색 맞추기식 규범인지. 혹시 내 첫인상처럼 심리상담센터를 가장한 사이비 종교의 온상일지도. 직접 물어보기에는 젤라는 항상 나와 긴 대화를 피했고, 설령 물어본다 해도 그저 ‘말 그대로, 투명해지시면 되는 거예요.’라는 말로 일관할 것 같았다. 나는 그냥 조항의 해석을 전적으로 상대방에게 맡기기로 했다. 어느 쪽이든지 간에, 마음속 응어리들을 내어 놓는다는 게 중요하겠지.


질문지에 적힌 여자의 이름은 서른세 살, 안수연이었다. 그녀를 2층의 유리방으로 안내했다. 내 예상대로 수연도 놀란 눈치였다. 심리상담센터라고 해놓고 사방이 투명한 유리로 도배된 방으로 이끌면 나라도 이게 상담인지, 취조인지 의심할 것이다. 동그란 유리 테이블을 사이에 둔 채 수연과 마주 앉았다. 관자놀이서부터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 책상 위 휴지를 뽑아 닦았다. 내담자가 울면 건네주라고 있는 티슈인데, 오늘은 내가 더 많이 쓸 것 같았다.


남아 있는 한 톨의 용기마저 그러모아 말문을 열었다.


“음, 그게, 그러니까, 무슨 고민이 있으신가요.”


이렇게 하는 거 맞나? 젤라는 어떻게 상담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았다. 첫 출근 전날 걱정을 한 아름 안고 인터넷에서 상담의 기술, 내담자 중심의 상담 기법, 상담 시작 방법 따위를 검색해 보았지만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알아들을 수 없는 심리학 용어에, 내담자를 우선으로 생각하라, 이런 뻔하디 뻔한 설명뿐이었다. 젤라의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어차피 상대방 눈도 못 쳐다보고, 무슨 반응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거, 잘 듣기만 하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이다.


“친구가 없어서요.”


수연이 뜸을 들이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나는 그제야 뒤집어놓은 질문지를 펼쳐 하단의 상담 주제 항목을 확인했다. 빈칸에는, ‘친구’ 두 글자가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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