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말하자면, 가까운 친구가 없어요. 단 한 명도요.”
수연의 콧잔등이 유리에 반사된 빛발에 환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나는 이것이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결론지었다. 난 가까운 친구, 머나먼 친구, 돈이 필요할 때만 연락 오는 친구, 청첩장을 주려고 메시지를 보내는 친구마저 한 명도 없기 때문이다. 내게 친구라는 존재는 고독에 몸부림치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허상이다. 어쩌면 상담을 받아야 할 사람은 수연이 아니고 나일지도 모르겠다.
“중학교 때부터 친했던 친구 무리가 있어요. 저를 포함해서 여섯 명인데, 이젠 친구라고 하기도 뭐 한, 그런 서먹서먹한 사이라서 혼자가 됐어요. 깊은 얘기를 할 사람이 없어서, 이런 데서라도 털어놓으면 후련해질 것 같아서 오게 됐네요.”
수연이 씁쓸한 표정으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가만히 듣고만 있으라 했지만 무슨 말이라도 건네야 할 것 같았다. 내 앞의 이 우울한 여자가 상처받지 않을 만한 위로를 생각해 보았다. 고르고 골라도, 수연에게는 허울뿐인 위로 같을 것 같아, 그냥 그녀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들을 수 있는 질문을 했다.
“어… 어쩌다가 서먹해지게 되신 건가요?”
수연이 허탈하게 웃었다.
“별 것 아니었어요.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멀리 통학하는 친구도 있고, 기숙사에 살기도 하고, 자취도 하면서 자연스레 연락이 뜸해졌죠. 그래도 반년에 한 번 정도는 만났던 것 같아요. 주로 제가 약속을 잡았어요. 말 안 하면 아무도 안 모이더라고요. 다들 대학 친구랑 노느라 바빠서 그런지. 그래도 만나자고 하면 냉큼 나와줬어요. 그러다가 이 날은 바쁘고, 저 날은 약속이 있어서 안된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아는 그 친구는 집에만 있는 걸 좋아하는데 말이죠.”
내심 수연이 부러웠다. 가끔 안부 인사 정도는 건넬 수 있는 사이의 친구가 무려, 5명이나 있다니. 내가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관계의 타인과 만난 건 2020년. 코로나가 이제야 막 기승을 부릴 때쯤 두꺼운 마스크를 쓰고 밖에서 대학교 과 동기를 만났었다. 동기는 조기취업을 했다며 내게 밥을 사주겠다고 했다. 그녀가 얼마나 열심히 자소서를 썼는지, 얼마나 철저하게 면접 스터디를 했는지, 최종 합격 통보를 받았을 때 얼마나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는지에 대해 들으면서 밥을 먹었다. 입에 넣은 스테이크 덩어리가 유달리 더 질기게 느껴졌다. 그날 나는 집에 와서 동기의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게시물 숨기기를 눌렀다.
“제일 얼굴을 안 비추던 친구 한 명이 스물여덟 살 때 결혼을 했어요. 저희 중에 제일 먼저 결혼하는 친구라 다들 브라이덜 샤워를 해주재요. 뭔지 잘 몰라서 찾아보니 신부랑 친구들끼리 모여서 먹고, 사진도 찍고, 선물도 주고 그러면서 노는 거더라고요. 하필 그날이 회사 송년회였어요. 불참하면 기피부서로 전출시켜 버린대요. 어떻게 안 갈 수가 있겠어요. 친구한테 미안하다고, 결혼식은 꼭 가겠다고 했죠. 그러니까 다음 날부터 단체 채팅방 업데이트가 안 됐어요.”
수연은 휴대폰을 꺼내 텅 비어버린 카카오톡 채팅방 화면을 보여주었다. 오른쪽 스크롤이 2019년 4월 15일이라는 이미 빛바랜 날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 이후로 친구분들이랑은 안 만나셨나요?”
“결혼식은 갔어요. 브라이덜 샤워에 못 간 게 마음에 걸려서 누구보다 열렬히 축하해 주고 축의금도 넉넉히 넣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이만하면 최선을 다했다고 확신했는데, 그 친구는 아닌 것 같았어요.”
여기까지 말하고 수연은 잠시 말을 멈추고 숨을 골랐다. 슬퍼서 그런 건지, 억울해서 그런 건지, 화가 나서 그런 건지. 몰아치는 감정을 잠재우는 중인 것 같아서, 나는 지금이 휴지를 줘야 할 적기가 맞을지 고민했다.
“그런 친구 한 명씩은 다 있지 않나요? 아예 절연한 건 아닌데 그렇다고 해서 명목상으로 친구라고 하기도 어려운 사이. 저에겐 그 무리가 딱 그 정도였어요. 차라리 매몰차게 손절하면 시원했을 텐데.”
은둔 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는 수연이 말하는 친구 같으면서도 친구가 아닌 관계,는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글을 중심으로 옹기종기 모여든 사람들뿐이었다. 듣다 보니 어쩐지 비참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바깥세상 사람들의 태산 같은 고민은 나에게는 티끌 내지 미진에도 못 미치겠구나. 수연은 말을 이었다.
“그날 밤 친구 SNS에 결혼식 사진이 올라와서 축하한다고, 예쁘게 잘 살라고 메시지를 보냈어요. 답장은 한 두 달 뒤에 왔나 몰라요. 메시지가 많이 쌓여서 몰랐다면서 나중에 밥 같이 먹자고 했어요. 언제 시간 되냐고 약속을 잡으려는데 또 안 읽음 표시는 사라지지 않고, 친구 스토리는 계속 올라와요. 신혼여행이 끝날 때쯤 한 번 더 보내니까, 그제야 보더라고요. 미안하다고. 밥 꼭 먹자고.”
수연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얼마 뒤에 친구들이 저 빼고 모여서 영화를 보러 간 걸 알게 됐어요. 저는 모르는 일이었죠. 그리고 자꾸 저한테는 밥 한번 먹자, 언제 꼭 식사 한번 하자, 나중에 한번 맛있는 거 먹자라면서 다양하게 포장한 방식으로 저를 피하더라고요. 나중에는 더 이상 밥 타령하는 답장도 돌아오지 않았지만요.”
나는 무어라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할지 몰라서 애꿎은 휴지조각만 주먹 안에서 움켜쥐었다. 이렇게까지 가감 없는 타인의 속내를 들여다본 적은 처음이었다.
“그 무리 외 다른 친구분들은요?”
“절친까지는 아니었지만 분기마다 한 번씩은 만나는 친구들도 있었어요. 나이를 먹으면서 다들 결혼도 하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되기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연락이 뜸해졌어요. 싸우지도 않고 아무 일도 없었는데도 그랬죠.”
얼마 전에 인터넷 속을 활보하다가 인간관계에 관한 글을 본 적이 있다. 그 자는 본인을 ‘불혹의 나이를 넘긴 지 한참 오래된 사람’이라고 칭하며 장문으로 친구에 관한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는 생각보다 무 자르듯 단칼에 끊어지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고.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로, 지나가던 개가 웃을 만큼 사소한 것으로 조금씩 1센티씩 멀어지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문득 떠오르는 친구 하나가 있었다. 생감새도 가물가물한 그 친구와 학창 시절 붙어 다녔는데, 가까워지는 건 일 년이 걸렸지만 멀어지는 건 한 순간이었다.
“나이 먹을수록 친구 사귀기 어려운 거 같아요.”
수연이 한탄하듯 말했다.
“그런 말이 있잖아요. 고등학교 친구가 진짜 친구다. 사회에서 만난 친구는 비즈니스 관계다. 전 그 말에 동의 못해요. 진짜 친구는 그 어디에도 없어요. 고등학교 친구도 별 거 없더라고요.”
그리고 나 또한 수연의 말에 공감하지 못했다. 사회에서 친구가 생긴다는 전제부터가 이해되지 않았다. 사회는 나와는 너무나 먼 세계였다. 진짜 어른들만 입성하는 세계. 선택받은 자들만이 회사라는 공통된 공간에 모여 경제활동을 하는 저 너머의 차원. 그곳에서 겉으로라도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 전혀 와닿지 않았다.
“상담사님도 믿었던 친한 친구에게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적이 있나요?”
갑작스럽게 수연이 질문했다. 당황해서 얼버무리면서 어, 음, 잘 모르겠어요,라고 답했다. 내 인생에서 친한 친구라는 존재를 찾으려면 머릿속을 샅샅이 파헤쳐야 한다. 오랜 히키코모리 생활이 학창 시절 모든 기억을 덮어 버렸다.
“저도 처음엔 고등학교 친구가 평생 간다는 말을 믿었어요. 둘도 없는 친구였는데. 점심도 석식도 같이 먹고, 야자도 같이 하고, 주말에 독서실도 같이 가는 사이였는데. 저희끼리 우스갯소리로 그랬어요. 야, 이 정도면 우리는 운명 아니야? 왜냐하면 고등학교부터 대학교, 직장까지 같이 입사했거든요. 전공과 부서는 달랐지만요. 그런데 그거 아세요? 운명을 갈라놓는 건 오명이에요. 그걸 멍청하게도 몰랐어요. 그래서 제 치부까지 가감 없이 내놓았죠. 둘도 없는 사이면 하나밖에 없는 비밀까지 털어놔야 한다고 믿었었거든요.”
나는 오른쪽 벽에 걸려있는 시계를 흘끔 쳐다보았다. 원래 상담 시간인 50분은 이미 지나있었다. 원칙대로라면 여기서 끊어야 하는데, 울 듯 말 듯 감정에 북받친 수연의 얼굴을 보니 쉽사리 시간이 다 되었다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입사 동기 모임에서 지나가듯이 털어놓은 이야기가 어느 날 부서 회식 자리에서 안줏거리로 씹히고 뜯기고 볶아지는 기분이 상상이 가시나요? 소문은 또 제 몸을 어찌나 빠르게 불리던지, 입에서 입으로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사실이 아닌 말들이 하나둘씩 얹어지고, 제 귀에 다시 들어올 때는 감당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눈덩이가 되어 있었어요. 우울증이 있어서 약을 먹고 있다는 말이 정신병동에서 장기입원 후 퇴원해서 매일 밤 유서를 쓴다는 말로 와전되어 있더라고요. 누가 말한 건지는 모르겠어요. 입사 초기부터 동고동락하며 상사 뒷담 인생 푸념 다 늘어놓았던 사이였는데. 이 계기로 모임도 와해됐어요. 사측에선 신입사원 극단적 선택, 이런 꼬리표를 달고 언론에 등장하기 싫으니까 선택한 방식은 회사에서 저를 철저하게 배제시키는 것이었어요. 아무 일도 주지 마라. 그리고 아무도 건들지 마라. 하루 종일 회사에서 하는 것도 없이, 말 걸어주는 사람도 없이 9시간을 내리 앉아 있었어요. 차라리 잘라버리지. 그러면 제가 부당해고니 뭐니 하면서 목에 칼 대고 난동이라도 부릴까 봐 무서운 걸까요? 잔인해요. 사람들이 저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슬금슬금 눈동자를 돌리는 그 시선이 잔인해요. 사회를 너무 아름답게 바라본 제 탓이죠. 세상은 솔직한 사람의 손을 들어주지 않고, 스스로 약점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은 타인의 시선에는 언제든 나를 끌어내릴 수 있는 급소였고, 어렵게 꺼낸 진실은 자주 저를 공격했으니까요.”
수연의 눈가가 벌게졌다. 나는 탁자 위 티슈를 손에 집히는 대로 최대한 많이 뽑아 건넸다. 수연이 잔뜩 물기를 머금은 목소리로 감사하다며 눈가를 꾹꾹 눌러 닦았다.
“그래도 회사에서 아는 척만 안 할 뿐이지, 친구랑은 카톡으로 연락했어요. 고마웠죠. 유일하게 나의 안부를 물어봐 주는 회사 사람이자 내 오랜 친구니까요. 친구가 저희 부서 대리와 사귀게 되었다고 했을 때도 진심으로 축하해 줬어요. 그 친구는 정말로 괜찮은 남자였거든요. 둘이 사귀게 된 과정을 알기 전까지는요.”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난 슬그머니 수연의 눈치를 봤다. 아까 휴지 더미로 꾹 눌러놓았던 것이 무색할 만큼 수연의 눈에선 자꾸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 남자가 저한테 고맙다고 커피 기프티콘을 보내는 거예요. 난 아무것도 해준 게 없는데.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이.”
여기까지 말하면서 수연이 핸드폰을 내밀었다. 액정 한 구석을 꽉 채운, 꽤나 장문의 카톡이었다.
안 대리님, 오랜만에 이렇게 연락드리네요. 잘 지내시죠? 힘든 건 괜찮으시고요? 다름이 아니라 감사하단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요. 이미 아시겠지만 지혜랑 제가 만나고 있는데, 예전에 지혜가 안 대리님 이야기를 했어요. 친구가 요즘 많이 힘들어하는데, 자기가 해줄 수 있는 게 뭐 없을까 묻더라고요. 안 대리님이랑 제가 같은 부서니까 잘 알 것 같아서 연락했다면서요. 들어보니 많이 힘드셨을 것 같아요. 어쨌거나 그 일로 지혜랑 제가 가까워지게 되었고, 결국 여기까지 오게 되었네요. 말만 안 할 뿐이지, 지혜가 안 대리님 걱정을 아주 많이 하고 있답니다. 저에 대해서 좋은 말 해주신 것도 감사해요. 약소한 선물이지만 커피 드시면서 힘내셨으면 좋겠어요. 안 대리님, 좋은 날은 반드시 올 거예요!
나도 모르게 강하게 미간을 찌푸렸다.
“웃기는 사람들이네요.”
수연이 분통을 터뜨렸다.
“우울증 얘기만 한 게 아니고 더 나아가서 제 가정사까지 들먹였더라고요. 어떻게 이럴 수가 있죠? 이런 게 진짜 친구라고요? 한 달 사귄 남자친구가 십 삼 년 친구인 저보다 중요하대요. 그 이후로 얼굴도 보기 힘들어서 카카오톡, 인스타그램, 전화번호 모든 연락 수단은 죄다 차단했어요. 제 슬픔으로 행복을 얻은 사람의 추악한 근황을 보면 제 자신이 견디지 못할 것 같아서요. 좋은 날이 오긴 개뿔, 걔 때문에 저는 그 이후로 아무 색깔도 냄새도 없는 하루하루를 견뎌냈어요. 저를 동정하는 눈빛, 안타깝게 바라보는 시선, 원하지도 않는 시혜적인 관심들에 잠식해 버릴 것 같아요. 이제 아무도 못 믿겠어요. 세상에 영원한 우정이라는 건 전부 허상이에요.”
수연은 끝내 참아왔던 눈물을 터뜨리며 오열했다. 남아 있던 휴지를 깡그리 뽑아 건네준 뒤 내가 개인적으로 갖고 있던 여행용 물티슈까지 뽑아주었다. 수연의 눈물이 그치길 가만히 기다렸다. 믿었던 친한 친구에게 뒤통수를 얻어맞은 적이라. 불현듯 그 아이가 떠올랐다.
“그런데 웃기는 건요, 이렇게 사람을 싫어하면서도 사람을 갈구하고 있다는 거예요. 인생은 혼자라는데, 언제쯤 혼자가 되는 것에 익숙해질지 모르겠어요. 퇴근하고 집에 오면 원룸이 텅 비다 못해 한기가 느껴져요. 지긋지긋한 시절 인연 다 털어버려서 처음엔 후련했어요. 이제 새로운 사람으로 채워가야지, 하면서 퇴사하고 프리랜서 개발자로 일하기 시작했어요. 동호회도 나가보고 동네 모임도 나가봤는데 마음 맞는 친구를 찾기가 어려웠어요. 그나마 잘 맞는다 싶으면, 그 이상으로 친해지기 힘든 느낌? 힘들게 친해졌는데 먼저 연락은 잘 안 오고, 시시콜콜한 이야기 몇 마디 나누면 또다시 대화는 뚝 끊기고, 그런 희미한 시절 인연마저 이제는 다 끊긴 지 오래예요. 인간관계가 왜 이리 힘들까요.”
수연은 말을 다 마쳤는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고 휴지로 연신 코를 풀어댔다. 적막이 가득한 방 속에 수연의 킁, 킁 소리만 울려 퍼졌다. 그녀를 부러워하며 처지를 연민했던 방금 전의 내가 갑자기 부끄러워져 고개를 푹 숙였다. 수연은 정말이지, 실로, 너무나 고통스러워 보였고 동시에 후련해 보이기도 했다. 마음속에 남모르게 품던 거대한 덩어리를 어렵게 세상에 꺼내놓은 개운함. 처음엔 그냥 시간을 때우다가 갈 심산이었다. 그런데 수연이, 내가 동경하던 사회 속 멋진 안 대리가, 집에서 은둔하던 내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펑펑 우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쓰려왔다. 세상만사 걱정 없는 무엇이든 척척 해낼 것 같은 커리어우먼 같았는데, 그녀가 이 시간을 견뎌오기까지 그리고 이곳에 찾아오기까지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했는지 감히 헤아릴 수 없었다. 듣고만 있어서는 안 됐다. 뭐라도, 내가 어떻게든 도움이 되어야 했다. 그런데 어떡하지? 해결책을 제시해야 하나? 수연보다도 더 철저하게 혼자인 내가 어떻게?
“아, 죄송해요. 시간이 벌써…”
그제야 수연이 벽시계를 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그 잠시만요!”
나도 모르게 수연을 불러 세웠다. 그녀가 가려다 말고 나를 보았다.
아직까지도 내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모르겠다. 상담 시간 내내 수연의 두 눈동자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던 내가 무슨 연유로 그런 말을 꺼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어쨌거나 나는 충동적으로 제안했다.
“괜, 괜찮으시면, 그, 손 좀 잡아드릴까요? 아니면, 음, 무례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어, 안아드릴 수도 있어요. 그게, 어디서 봤는데, 뇌과학적으로 힘들 때 안고, 손잡으면, 무슨 호, 호르몬이 나와서 긴장이 풀린다는, 그런 얘기가 있던데, 기, 기분 나쁘셨으면 죄송해요. 어, 음, 당연히 거절하셔도 되고요.”
수연이 신고 온 운동화 앞코를 바라보며 떠오르는 말들을 와다닥 뱉어냈다. 역시 그런 말은 하지 말아야 했다. 전문 상담사처럼 수연에게 뭐라도 말해주고 싶었는데, 말주변도 없는 데다가, 괜스레 꺼낸 한마디가 그녀에게는 아무것도 모르는 초면의 상담사가 건네는 동정으로 비춰질까봐 그만두기로 했다. 대신 언젠가 인터넷에서 얼핏 본 기사를 떠올렸다. 얼굴을 맞댄 지 불과 두 시간 남짓한 타인의 손을 잡는다는 것이 평소의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수연에게 손을 내밀었다.
수연이 잠시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더니 이내 내가 내민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조심스럽게 포개었다. 그러고는 두 팔로 내 몸을 가두어 확 끌어당겼다. 온몸이 으스러질 만큼 더 꽉 안았다. 방금 펑펑 울고 난 여자의 화끈화끈한 살갗이 느껴졌다. 갈 길 잃은 내 두 손이 허공에서 헤맸다. 짧은 포옹 끝에 수연이 팔을 풀어주었고,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는 듯 허리를 연거푸 숙이며 사과의 인사를 전했다.
“아, 정말 죄송해요. 저도 모르게 이게, 여쭤보고 해야 한다는 게, 그냥 안아버렸네요. 죄송해요….”
계속해서 머리를 조아리는 수연 앞에서 나는 멍하니 허공만을 바라보았다. 미처 마르지 못한 수연의 눈물이 어깨에 닿아 동그란 자국을 남겼다.
투명했다. 사방이 온통 맑았다.
내 눈에 담기는 모든 것들이, 깨끗하게 투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