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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비오 Dec 27. 2023

나의 따스함이 누군가의 온기로 남기를...

소설 보다 : 겨울 2023 - 김기태 外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기이자 이 계절의 한창으로 치닫는 지금 더 없이 따뜻함과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커져가고 있다. 누군가와 마음을 나누고, 나의 따스함이 다른 누군가에게 더 큰 온기로 전달될 수 있기를 희망하며, 올 해의 마지막을 ‘소설 보다’ 시리즈와 함께 해본다.


 ‘소설 보다’는 늘 젊은 작가들이 그들의 목소리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세상을 견뎌내는 그들의 마음과 그럼에도 희망을 품어보는 기대들을 전달해 주고 있어 뭔가 세대를 아우르는 공감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전 시리즈나 다른 수상작품집 등에서 여러 형태로 다양하게 접했던 세 작가의 작품이 그려내는 이 겨울의 모습을 함께 느끼고, 그 속에서 던져주는 은근한 따스함과 세상과 사람에 대한 묵직한 희망과 기대도 계속 품어본다.


특히 이번 시리즈는 ‘진짜’, ‘진실’에 대한 많은 고민을 해볼 수 있는 작품들이어서 그런지 나의 진짜 모습, 세상을 살아가는 진짜 이유, 진실된 나의 목소리 등에 대해 더욱 깊은 생각들을 해볼 수 있었다.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큰 애가 있어서인지,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입시제도의 틀 안에서 아이와 함께 겪고 견뎌 나가야할 막막한 두려움이 있어서인지 읽는 내내 깊게 몰입하게 했던 김기태 작가「보편 교양」.


 아무래도 핵심 입시 과목과는 조금 동떨어진 듯 인식되는 ‘고전 읽기’ 수업을 준비하는 선생님(곽)이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어떻게 조화를 이뤄 나가고, 그리고 애초에 생각했던 방식이 아닌 겪어 나가는 현실에서 자신의 이상이 어떻게 변형되고 수정되는지 보여주고 있다. 그 속에서 느끼게 되는 학생들에 대한 이해는 물론 학생들이 선생님을 대했던 방식과 마음까지도 폭넓게 담아내고 있다.


 역시 달콤했다. 경박한 단맛이 아니라 깊이가 있고 구조가 있는, 하지만 묘사해보려고 하면 이미 여운만 남기고 사라져서 어쩐지 조금 외로워지는 달콤함. 사람을 전혀 파괴하지 않고도 패배시킬 수 있는 달콤함. <책 본문 中>


 너무나도 이상적인 수업의 목표와 열성을 다한 준비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은 그저 입시 전략과목에서 조금은 거리가 있는 수업에서 힐링과 휴식과 다른 공부 등의 시간 등으로 나름의 ‘목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모습 등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특히 고전 읽기 수업에서 열성을 보이던 ‘은재’(원래도 공부를 잘하는)가 서울대에 합격하면서, 갑자기 주목을 받게 되는 과정 또한 아이러니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늘 자고 딴짓하며 수업에 열성을 보이지 않았던 아이들(셋으로 지칭)이 자신과 졸업사진을 남기려고 하는 모습은 나의 생각과 태도가 상대방에게 어떻게 가 닿는지를 다시 한번 깨달아 본다.


 곽은 셋의 이름을 정확히 불렀다. 셋은 놀라며 ‘대박’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곽은 세 학생 다 1년 내내 잠만 잤는데 왜 자신과 사진을 남기려는지 의아해하며 엉거주춤 움직였다. <책 본문 中>


 나의 진심이, 그것이 비록 현실에서는 실현하기 힘든 ‘매우’ 이상적일지라도, 그 과정에서 내가 준비하는, 그것을 대하는 진심은 상대방에게 어떻게든 전해진다는 결론. 이것이 바로 비록 현실에서의 숱한 어려움과 난관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끊임없이 생각하고, 고민하고, 나아가야 하는 힘일 것이다.


 “사회가 정말 무서운 건, ‘적응하기 어려워서’가 아니라 ‘어지간하면 적응시켜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매일 자도 (…) 학교는 그들에게 ‘자는 학생’이라는 역할을 마련해줍니다. 상대평가 체계는 그들이 ‘깔아줘야’ 가능한 것이니까요. 질서란 그 정도로 정교해서, 저는 탈주자를 안이하게 상상하고 싶지가 않습니다. 오히려 남부럽지 않게 적응한 인물들로부터 문제에 접근해보려고 했습니다.” <작가 인터뷰 中>


 신내림 받은 박수무당 ‘문수’가 갑자기 자신의 신들이 모두 떠나고, 그 신들이 새롭게 자리잡은 ‘신애기’와의 관계와 상황들을 보여주며, 그 속에서 진짜가 되어 가려는 마음의 변화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그려내고 있는 성해나 작가「혼모노」.


 대학시절 인류학 수업 中 신내림(어려서 죽은 시댁 도련님) 받은 무당의 굿을 참관했었다.

 뭔가 눈속임이나 현혹하는 마술 같은 것이라 생각했던 것과 달리, 실제 신이 들리면서 모든 행동과 말의 변화는 물론 심지어 칼날이 서 있는 작두를 아무렇지도 않게 타는 것을 보며 뭔가 모를 경외감을 느꼈던 적이 있다. 이후 그 무당 분과의 간담회를 진행하며, 자신의 인생사(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생활을 하던 지극히 평범하던 일반인의 삶에서 무속인의 삶으로의 전환)를 얘기하고, 신이 들어오는 경험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대화를 하며 ‘영적인 영역’에 대한 깊은 고민을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수상한 기미라도 있었다면, 어떤 조짐이라도 보였다면 납득이라도 할 텐데 그들은 그저 떠났다. 언질도 없이 홀연히. <책 본문 中>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 없이 그저 주어져 버린 상황에서, 현실을 벗어나고도 싶고 또한 거부하고도 싶었지만 결국에는 ‘그러한’ 삶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삶에 대해 생각해 본다.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삶이지만, 그에 맞춰 모든 생활을 맞춰가고 있고 적응한 지금 이 순간(심지어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지속해 오고 있는) 갑자기 ‘제로’의 상태로 되돌아 가버린 현실에서 느낄 참담함과 막막함은 이루 말할 수 없으리라.


 어쩔 수 없이 현실을 인지하고 받아들였음에도, 그럼에도 자신이 해왔던 30년 넘는 세월을 진짜처럼 ‘흉내’라도 내보려고 한 몸부림이 그저 우스꽝스럽거나, 구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게라도 할 수 밖에 없는 처절함, 그 처절함 속에 결국 자신의 삶을 진실하게 겪어 나가고자 하는 ‘진실된 마음’이 있기에 ‘문수’의 남은 삶 또한 응원을 보내게 된다.


 30년 박수 인생에 이런 순간이 있었던가. 누구를 위해 살을 풀고, 명을 비는 것은 이제 중요치 않다. 명예도, 젊음도, 시기도, 반복도, 진짜와 가짜까지도. 가벼워진다. 모든 것에서 놓여나듯. 이제야 진짜 가짜가 된 듯. <책 본문 中>


 아울러, 현실에서의 욕망까지도 모두 진실되게 인정하고, 그 속에서 진실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 자신의 소리로 ‘스스로’ 나아가고자 하는 마음 그 마음이 절절하게 다가온다.


 “문수는 신에게 의존해온 그런 삶이 익숙하고 경이로웠겠지만, 자립하고 싶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독자적으로 살아가고, 제 목소리를 내고, 자신의 템포로 걷고 싶었을 거예요. (…) 그가 진정 되고 싶었던 ‘진짜’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를 담고자 했지만, 사실 그건 중요치 않다고 생각해요. (…) 그가 흘리는 피, 생생히 느끼는 아픔, 광기 어린 작두춤, 기세 …… 그런 것들은 신이라는 필터를 거쳐 나온 굴절된 의식이 아닌 온전히 그 자신만이 겪고 느끼는 날 것 그대로의 고통이니까요.” <작가 인터뷰 中>


 마음이 가장 혼란스럽고 두렵고 시시각각 변하지만 뭔지 모를 희망도 자라고 있는 사춘기. 그 사춘기 시절의 비밀을 간직하며, 누군가의 마음에 들기 위해 처절하게 노력하는 두 친구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예소연 작가 「우리는 계절마다」.


 어린시절 많이 친하고 의지하기도 했던 친구(미정)가 이제는 자신이 어울리지 않는 그룹과 지내며 자신과 거리를 두자(무시하자) 희조는 미정의 그 마음에 들고 다시 가까워지기 위해 소위 모범생 범주에서 벗어나는 과감함까지 보여준다. 어른의 시각으로는 당연히 이해되지도 않고, 나쁜 길로 빠져드는 길이겠지만, 희조가 친구와 맞짱을 뜨거나 기꺼어 소위 ‘일진’ 그룹과의 친교도 마다하지 않는 모습을 보며 어린시절 그들이 함께 나눴던 마음의 깊이에 대해 생각해 본다.


  지금도 인생이 적당한 시점에서 최악의 결말로 끝나버릴 거라는 염세적인 기분이 종종 들곤 한다. 하지만 최악의 결말은 존재하지 않고, 늘 최악의 순간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책 본문 中>


 무엇이 그토록 지금 자신의 삶의 기반을 허물어버릴 만큼 절절하고 간절한 것인지.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어른의 시각으로는 그저 치기 어린 철부지 어린아이 같은 행동으로 보이지만, 아이들 또한 자신의 삶을 누구보다 걱정하고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임을 떠올려 본다. 그저 기다려주고, 믿어주고, 품어주고 혹여 잘못된 상황에서 방향을 다시 잡아 주는 수고를 기꺼이 하더라도, 아이들이 지금 이 순간 느끼는 감정, 자신에 대한 생각들을 존중해 주고 싶다.


 실제 내 아이들에게도 그렇게 대범하고 의연할 수 있도록, 모든 상황을 나의 시각이 아닌 아이의 시각으로 바라봐 주는 그런 여유로움과 관대함을 지켜나가고 싶다.


 작품 해설에도 급돼 있지만 그토록 희조가 미정에게 특별한 것은 미정과의 우정과 사랑을 넘어서는 누군가에게 의존하고 싶고 나에게는 ‘은총’과도 같은 존재로서 자리잡고 있어서 였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은총’ 같은 존재가 된다는 것의 의미와 그렇게 될 수 있는지를 올해를 마무리하는 이 시기에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한다.


 “때로는 어떤 ‘탓’이 유효할 때가 있지요. 하지만, 그들은 구체적인 대상을 정하는 것보다 불가해한 영역에 불행을 위탁하는 것이 더 나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불행이 구체적인 대상으로 말미암아 생겨난 것이라고 하면, 그들은 더 견딜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가 인터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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