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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행 Jan 12. 2024

파리의 공동묘지로 떠나는 여행

: 쓸데없이 재미있게 살아볼게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는 라틴어입니다.


삶과 죽음이란 전혀 다른 세계, 우주의 끝과 끝이 아닌, 하나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생을 살아가며 언제나 죽음을 기억하고, 죽음이 늘 주변에 있기에 


카르페 디엠 carpe diem 

'현재의 삶을 소중히 하라' 말합니다. 



페흐라쉐즈, 몽파르나스, 몽마르뜨.  

파리에는 3대 공동묘지가 있습니다.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공동묘지는 삶을 살아가는 이 도시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산구석 어딘가 들구석 어딘가..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파리의 공동묘지들은 가장 사람이 많이 오가는 곳, 

삶과 죽음이 함께하는 도심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한 달, 이곳 파리에 머무는 동안, 시간을 두고 쉬엄쉬엄 찾아다녀야겠다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세 곳을 다 가볼 필요는 없겠지만 자신을 사랑하고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시간을 두고 한 곳쯤 방문해 보는 것은 어떨까 합니다. 메멘토 모리를 느끼고 카르페 디엠을 간직할 좋은 기회가 될 테니까요.


오늘 잠시 여유가 생겨 몽파르나스 묘지를 찾아갑니다. 몽파르나스 타워가 자리 잡은 바로 옆! 긴 나무 담장을 따라 걷다 입구에 들어섭니다. 


세르주 갱스브르, 쟈크 시락, 기드 모파상이 잠들어 있는 곳.


더없이 조용합니다. 전철을 타고 오는 사이 비가 내린 모양입니다. 그래서인지 인적이 드문 오후입니다. 무섭지 않을까? 좀 찜찜한 기분이 들지 않을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5년 전 겨울에도 이곳과 페흐라쉐즈 묘지를 찾은 적이 있습니다. 사색을 즐기는 여행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이곳에서의 산책을 추천합니다. 



모파상의 묘를 찾았습니다.

오늘 에펠탑에서 여정을 시작해서 인지 더 정감이 갑니다. 

에펠탑을 싫어한 그이지만, 모파상 역시 실은 그 탑을 무척이나 그리워했을 거라 믿습니다.


담장을 따라 잠들어 있는 무덤을 지나던 중, 꽃들과 메모가 놓여 있는 묘 하나를 발견합니다. 당신을 만나러 여기까지 우리가 왔다는 뜻인지 지하철 티켓도 놓여 있습니다.


누구의 무덤이지?


가까이 보니, 실존주의 철학자이자 소설가인 장 폴 사르트르의 무덤입니다. 시몬 드 보부아르가 함께 묻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보부아르의 <아주 편안한 죽음>이 인생 책 중 하나인지라 남다른 기분입니다.  세상에 모든 딸들과 엄마들은 무조건 읽어야 하는 책입니다. 보장합니다. 


두 사람 모두 편히 잠들어 있기를... 한참을 무덤 앞에 서서... 그들을 내려다봅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요?

그들을 뒤로하고 다시 무덤 사이를 걷습니다. 

이들도 한때는 삶을 살았을 겁니다. 


어린아이로...

소년, 소녀로...

청춘으로...


사랑을 하고...

자녀를 낳고...


때론 슬픔에

때론 기쁨에..

때론 노여워하고... 절망도 했을 겁니다. 


그렇게 인생을 살았을 것이고 이제는 삶을 떠나 영원한 잠에 빠지게 되었을 겁니다. 

문득... 지금 살아있는 이 순간이 더없이 소중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시 1월의 비가 내립니다.

비가 내렸다 그치기를 반복합니다. 파리는 겨울입니다. 오늘 같은 분위기에 더없이 좋은 비입니다. 


사실 오늘 이곳 몽파르나스 묘지에 온 이유는 꼭 이 사람을 만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파리...

멜랑꼴리...

댄디...

룸펜...

파리의 플라뇌르

도시의 산책자


샤를 보들레르 Charles Pierre Baudelaire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입니다.

파리의 산책자, 도시의 산책자 보들레르가 여기 잠들어 있습니다. 


지구 반대편에서 온 이방인을 그는 알아볼까요?

그렇게... 한참을 말없이 바라봅니다.


그의 시집을 한 권 챙겨 올 것을 그랬다 싶습니다.

그의 무덤 발치에 앉아 글귀 한 구절은 읽는다면 더없이 낭만적이지 않았을까요?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겠습니다.

뒤 돌아보니 1월 몽파르나스의 하늘, 햇살이 구름 사이로 비춰옵니다.


다음에 또 만날 수 있기를… 파리식으로 작별을 건넵니다.  오부아~


이곳을 거닐다 보니 묘비석들은 무거운 침묵으로 나에게 말을 걸어옵니다.


인생은 덧없고 짧다.

죽음은 언제나 가까이 있으니, 현재에 충실하라

과거와 미래를 살지 말고, 바로 지금을 살아가라!



몽파르나스 묘지를 빠져나와 발길 닿는 데로 걸어갑니다. 

오늘은 그냥 파리의 산책자가 되겠습니다.



P.S.

오늘은 광고 카피 말고, 시 한 편 써 볼까 합니다. 

흠… 

속물이라 안.. 안 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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