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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행 Feb 14. 2024

[가상 인터뷰] 오대수, 군만두가 대체 어때서?

: 지구별 여행자를 위한 가상인터뷰


'누구냐, 너!’


영문도 모른 채 15년간 독방에 갇혀 있다가 세상에 풀려난 사람, 15년간 오직 삼시세끼 군만두만 먹으며, 자신을 가둔 범인을 찾아 질겅질겅 씹어서 복수하겠다던 그 남자가 세상에 나온 지 벌써 20년이 지났습니다. 


그의 입에서 품어져 나오는 거친 언어들, 야수처럼 꽹한 눈빛, 웃는 듯 우는 듯 알 수 없는 묘한 표정들, 가끔 물색없이 튀어나오는 갑분싸 문장들이 도저히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와의 인터뷰는 지중해라는 일식집에서 진행했습니다. TV프로그램에도 꽤 알려진 이름난 횟집입니다. 다찌바에 앉아 있군요. 멀리서도 단박에 눈에 띄는 폭탄 머리와 특이한 선글라스 때문인지 쉽게 그를 알아보았습니다. 


이 복수가 끝나고 나면, 오대수로 돌아갈 수 있을까?





반갑습니다. 사실 수년동안 수차례 인터뷰를 요청드렸습니다만...

아! 그러셨군요. 고백하자면 제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제 기억을 지웠습니다. 최면술사에게 부탁을 좀 했죠. 그러다 보니 가까운 지인이나 그밖에 사람들과 과거에 오고 간 내용을 잘 알지 못합니다. 이해해 주세요.



해외에서도 아주 유명하세요. 혹시 아시는지?

글쎄요... 제 어디가 좋아서 그런지 사실 좀 당황스럽네요. 그냥 대한민국의 평범한 중년남성일뿐 인걸요. 나이 든 소년인 '올드보이'인 거죠. 아... 뭐 졸업생, 동창생의 뜻도 되니... 음... 더는 이야기를 삼가겠습니다.  (사실 오대수가 지나치게 스포에 대해 눈치를 보는 것 같습니다. 뭐 아직 안 본 사람에 대한 당연한 배려일 테지만요.) 



당신의 삶이 정말 영화 같은데요..

네, 한때는 그냥 술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는 직장인였어요. 물론 제가 주사가 좀 있지만, 아내와 딸에게 남편 노릇, 아빠 노릇 열심히 해보려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가장입니다.  뭐 ‘오늘만 대충 수습하며 살자’라고 해서 오대수라고 남들이 말하더군요. 딸아이 생일날,  제가 술주정을 좀 과하게 부려 경찰서에 끌려갔다가 깨어나보니 독방에 갇혀버린 거죠. 누가? 왜? 무엇 때문에? 이유도 모르겠고, 얼마나 있어야 하는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살면서 딱히 누구에게 큰 잘못도 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요…그리고 갑자기 15년 만에 풀려났어요. 어떤 놈이 제 인생을 망쳐놨는지 꼭 복수하겠다 마음먹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15년의 감금 생활 이후 당신의 패션이 더 마음에 듭니다. 

아마 제 머리와 멋스러운 수염 때문이겠죠. 과거 고등학교 동창들도 제게 그런 말을 하더군요. 헤어스타일은 호일펌입니다. 쿠킹호일을 이용한 파마예요. 삐죽삐죽 부스스해 보이는 일명 폭탄머리인데, 관리가 좀 힘들지만 한때 제 머리 따라 하는 사람들 꽤 많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수트와 선글라스도 꽤 잘 어울립니다. 

그런가요? 사실 제가 패션감각이 있다기보다 상황이 저를 그렇게 만든 거라 생각합니다. 

검은 수트는 수면가스에서 깨어나 가방을 나올 때 바로 입혀져 있던 옷이라 제가 직접 선택한 옷은 아닙니다. 다행히 잘 어울린다니 기분 좋네요. 이 캣츠아이 선글라스도 엘리베이터에서 어떤 아줌마 것을 뺏어 쓴 겁니다. 생각해 보니 아줌마가 많이 놀라셨겠군요. 최고의 성형은 다이어트란 말이 있듯, 다행히 수트가 몸에 잘 맞았네요. 군만두로 15년간 원푸드 다이어트를 한 덕분이라 해야겠군요.



15년 감금은 그를 패셔니스타로 만들었습니다.



그럼 그 군만두가 입맛에 맞았던 모양이군요.

처음 한두 번이나 그렇겠죠. 하루 삼시세끼, 1년 365일 15년이니 16,425번이나 군만두를 먹었습니다. 제가 복수를 결심한 이유이기도 해요. 중국집에 얼마나 많은 음식들이 있는데, 하필이면 부추만 엄청나게 들어있는 군만두만 줬냐는 거죠. 저를 가둔 그놈을 찾아가서 꼭 밝히고 싶었습니다. 왜! 하필! 군만두냐!!!



‘누구냐, 너’ 일식집에서 한 당신의 명대사를 잊을 수 없는데요 

제가 워낙 말이 많다 보니… 잘 기억이…아! 이우진의 전화가 왔을 때를 말하는 거군요. 전화가 울리자마자 바로 범인인 줄 직감했습니다. 다만, 왜 나를 15년간 가둬놨는지, 그리고 왜 풀어줬는지 알 수가 없었죠. 사설감옥에 갇혀있는 동안 줄곧 나를 이곳에 가둔 놈이 누구일지, 내가 어떤 삶을 살았길래 나에게 이런 형벌을 가하는 것인지 복기하고 또 복기하며 일기를 쓰고 기록을 했습니다. 15년간 아무와 대화를 나눌 수도 없었기에 제 말투가 문어체 마냥 좀 특이하게 느껴질 겁니다. 



요즘 외국인들이 산낙지 체험을 해보고 싶어 해요. 먹방 한류의 인기가 이만저만 아닙니다. 당신 덕분 같아요.

당연히 잘라서 먹어야 하는데 제가 그만 그놈의 전화를 받고 흥분하고 말았어요. 사실 서양에서는 문어나 낙지류를 공포의 대상으로 여깁니다. <캐리비안의 해적>의 크라켄이나 <007>의 스펙터 같은 빌런을 생각해 보면 잘 아실 겁니다.  여기에 날것으로 먹는 장면을 충격적으로 받아들였을 텐데... 뭐 덕분에 해외에서 먹방 한류의 인기가 많아졌으니 나름 국위 선양했네요.



19:1 싸움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배 나온 아저씨였던 당신이 싸움꾼이 됐어요. 비결이 궁금합니다. 

사설감옥 복도에서 장도리로 싸운 거 말씀이죠? 순전히 15년 동안 TV에 나오는 섀도우 복싱, 격투기를 보며 배웠습니다. 8평 남짓한 방에서 머리와 몸으로 수없이 상상하며 싸움 훈련을 했습니다. 여러분도 군만두만 먹고 15년간 갇힌다면 그렇게 될 수 있어요. 이미지 트레이닝이 그만큼 중요합니다. 명심하세요!



개인적으로 올드보이는 커다란 복수의 복선이 여러 갈래라는 생각입니다. 오대수의 복수인가요? 이우진의 복수인가요? 

글쎄요... 제가 이야기하는 것보다, 직접 보고 느끼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복수에 대한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아마 이우진에 제게 말한 '모래알이든 바윗덩어리든 물에 가라앉기는 마찬가지'라는 말이 답이 아닐까요? 누가 원인이고, 그 원인에 대한 복수의 끝은 과연 무엇일지... 수수께끼 같지만 제 이야기를 다시 한번 보시면서 직접 느끼시길 바랄게요. 결말에 대한 해석도 여러분의 몫입니다. 제가 아닌 거죠.



15년의 감금에서 오는 트라우마인지, 16,425번에 군만두의 영향인지, 마치 최면에 걸린 듯 이 짧은 인터뷰조차 참지 못하고, 낙지를 통째 입에 집어넣습니다. 꿈틀거리는 낙지의 다리들이 그의 두 볼과 코에 착 달라붙습니다. 회를 뜨며 저와 함께 그 모습에 바라보던 낯익고도 아름다운 여인, 미도가 그의 손을 잡습니다. 


아쉽지만,

더 이상의 인터뷰는 불가능했습니다. 올드보이가 일순간 기절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복수가 끝나고 나면 그는 다시 평범했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이미지 출처 : old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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