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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행 Feb 21. 2024

[가상 인터뷰] 비너스, 르네상스 최고 톱모델의 삶이란

: 지구별 여행자를 위한 가상인터뷰


시대불문 언제나 대중이 선호하는 탑모델이 있습니다. 전설의 책받침 스타부터 90년대 이영애, 김혜수, 2000년대 이효리, 전지현, 2010년대 김연아, 수지, 2020년대 블랙핑크까지 이른바 CF퀸들입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최고 탑모델은 누굴까? 궁금해졌습니다. 과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와 인터뷰를 기억해 냈습니다. 당시 모나리자는 르네상스 최고의 미녀가 자신이 아니라 다른 여인이라 말하며 기회가 된다면 제게 소개해주겠다 했습니다. 다행히 모나리자의 주선으로 오늘 그녀를 만납니다. 


이처럼 아름다운 도시가 또 있을까요?

석양이 물들면 이탈리아 토스카나 평원의 아름다운 도시, 피렌체는 오후의 붉은 기운으로 도시 전체가 꽃처럼 타오릅니다.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의 커다란 돔은 물론, 도시를 흐르는 아르노 강의 물결 역시 붉게 물듭니다. 


오늘 인터뷰는 아르노 강 옆에 자리한 우피치 미술관에서 진행되었습니다.  화가 보티첼리의 비너스! 르네상스 시대 최고의 미녀이자 <비너스의 탄생>의 주인공입니다. 그녀가 회랑 끝에서 저를 기다리며 서있습니다. 당황하고야 말았습니다. 누드인 까닭입니다.


왜 말을 못 해! 저 여자가 내 사람이다. 저 여자가 내 사랑이다. 왜 말을 못 하냐구!





흠흠... 반... 반갑습니다. 모나리자를 통해 당신에 대해 들었습니다. 간단히 자기소개를 해주시겠어요?

반가워요! 알다시피 저는 비너스예요. 아프로디테라고도 하죠. 땅의 신 가이아가 자신의 아들 크로노스를 설득해 하늘의 신인 아버지 우라노스를 제거하려 하죠. 가이아의 자식들을 지옥에 가뒀기 때문인데... 가이아의 뜻에 따라 아버지 우라노스의 성기를 낫으로 잘라 바다에 집어던지자 물거품이 일어 제가 태어나게 돼요. '아프로디테'는 거품이라는 단어 'aphros’와 유래를 나타내는 여성 접미사 'dite’가 합쳐져 '거품에서 태어난 여자'라는 뜻이랍니다. . 사랑과 미를 상징하며 로마에서는 베누스 Venus, 영어로 비너스가 된 거죠. 


당신을 그린 화가가 그 유명한 보티첼리인데..

네! 바다 한가운데 태어나 커다란 조개껍데기를 타고 키프로스 해안에 막 다다른 순간의 제 모습을 그린 거예요. 산드로 보티첼리 Sandro Botticelli는 이탈리아 초기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 화가였어요. 원래 이름은  알레산드로 디 마리아노 필리페피 Alessandro di Mariano Fillipepi 지만  술을 워낙 좋아해 ‘작은 술통’을 뜻하는 ‘보티첼리’라는 별명으로 알려졌죠. 한마디로 주정뱅이였어요... 숙취 때문에 함께 작업하기 여간 힘들지 않았답니다.


그녀의 모습에 인터뷰 내내 당황했습니다


사실 보티첼리가 그린 그림 대부분 모델이 당신입니다.

네.. 저는 피렌체 최고의 미인이었는데... 어찌 보면 보티첼리가 나를 발굴한 거나 마찬가지였죠. 모든 그림에 주인공으로 그렸을 정도니까요.


아! 그렇군요! 그 부분은 잘 몰랐네요.

그러실 테죠. 시모네타 베스푸치 Simonetta Vespucci 1453-1476가 바로 저 비너스랍니다. 보티첼리의 그 모델! 그의 뮤즈랍니다. 저는 원래 제노바의 명망가인 카타네오 가문 출신이랍니다. 16세에 피렌체의 마르코 베스푸치와 결혼하고 이곳 피렌체로 시집을 와서 살게 됐죠.


베스푸치? 좀 익숙한데요? 왜일까요?

빙고! 잘 아시는군요. 바로 아메리카 대륙을 최초로  발견한 탐험가 아메리고 베스푸치가 그의 사촌였어요. 제 시아주머님예요. 대단한 집안이죠?  사람들은 저를 아름다운 여인이란 뜻의  '라 벨라 시모네타 La Bella Simonetta'라 불렀답니다.


보티첼리의 또 다른 그림인 <봄> <비너스와 마르스> <아테나와 켄타우르스> 등에도 모델이던데요?

제 입으로 말하기 좀 그렇지만... 그만큼 미인이니까요! 피렌체 최고의 미인인 데다 성격 좋고 집안 좋고 기품까지 있으니 모든 사람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어요.  피렌체 메디치 가문의 최고 권력자들도 예외가 아녔는데... 제 전설적인 미모에 메디치 가문의 로렌초와 줄리아노 형제도 반해버렸죠. 로렌초는 저와 베스푸치의  결혼식과 피로연을 자신의 궁전에서 직접 열어주기까지 했어요. 


그녀는 톱모델입니다... 보티첼리의 원픽였죠.


메디치 가문이라면, 르네상스 시대를 연 그 후원자 말인가요?

네 맞아요! 그 메디치 가문이죠. 당시 최고의 인기 스포츠는 마상 시합였어요. 로렌초의 동생 줄리아노는 보티첼리가 그린 제 초상화 깃발을 들고 대회에 참가해 우승을 하고 우승의 영광을 제게 바친답니다.  ‘유부녀면 어때? 내 사랑을 받아주오’ 사실 행복했어요. 피렌체 최고 권력자에게 사랑 고백을 받은 거잖아요. 그가 또 누구인가요? 그림밥 좀 먹는 미대생이라면 구토가 나도록 그렸을 줄리아노, 바로 줄리앙의 실재 모델이니까요... 당시 최고의 스캔들이자 최고의 셀럽 커플였답니다. 유부녀이자 최고 미인과 젊고 잘생긴 귀공자의 썸!   


미대생들은 줄리앙을 토나오도록 그렸을 겁니다.


이루지 못할 사랑였겠군요! 

네... 지금 말이지만 피렌체 최고의 셀럽였던 저는 폐결핵으로 갑작스럽게 죽게 됐어요. 제 나이 23살 때죠. 장례식을 성대하고 크게 열었는데 제 시신은 관 뚜껑이 열린 채 피렌체 거리를 관통해 운반됐고, 추모 시민들의 행렬은 끝이 없었습니다. 


음... 피렌체 시민 모두가 그럴 정도였다면 보티첼리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았을까요?

글쎄요... 저는 알 수 없죠. 다만 제가 죽은 후에도 그의 예술작품에서 모델로 부활한 것만 알고 있어요.  <비너스의 탄생><봄> <비너스와 마르스> <아테나와 켄타우르스> <성모자> 등 대부분이 제가 죽은 후 그려졌거든요.  



인터뷰를 마치며 보티첼리에 대해 생각합니다. 피렌체 최고 미인인 셀럽에 대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자신의 후원자인 로렌초 가문이 흠모한 여인을 숨죽이며 숨어서 몰래 사랑하지는 않았을까? 그녀에 대한 그리움이 그가 그린 그림의 모델로 부활한 것은 아닐까? ‘왜 말을 못 해! 저 여자가 내 사람이다. 저 여자가 내 사랑이다. 왜 말을 못 하냐구!’ ‘어떻게 그래요! 내가 어떻게 그래요!’


죽기 전 보티첼리는  ‘시모네타의 발아래 묻어달라’ 유언을 남깁니다. 그리고 그의 유언대로 피렌체 산 살바토레 오니산티 교회(San SalvatoreOgnissanti)의 시모네타 무덤 곁에 함께 묻혔습니다. 그녀가 죽은 지 34년 후의 일입니다. 


보티첼리는 단테 <신곡>의 지옥도와 삽화 작업을 필생의 일로 여겨 전념했지만 건강이 악화되어 끝내 꿈을 이루지 못합니다. 아마 그에게는 그녀가 없는 30년이 살아있는 지옥였는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이 죽일 놈의 사랑아!




 


모나리자와의 전격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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