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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X Apr 10. 2024

[가상 인터뷰] 당신이 그 조선 힙스터인가요?

: 지구별 여행자를 위한 가상인터뷰


월하정인(月下情人), 달빛아래 가장 매력적인 여인을 만나다.


워낙 유명한 여인입니다. 개인적으로 신윤복이 그린 역작 <미인도美人圖>의 미인보다, 저는 월하정인의 이 여.인.을 더 사랑합니다. 그녀와 함께 있는 사내에게는 솔직히 눈곱만큼의 관심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어딘지 모르게 이 한 쌍의 남녀가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야심한 밤, 그윽한 달빛 때문일까요? 아니면 타인의 눈을 피해 만나는 젊은 청춘남녀를 몰래 바라보는 제 못된 버릇 때문일까요, 그것도 아니면 처마 아래, 드리워진 작고 아스라한 나뭇잎의 어슬피 푸르스름한 그림자의 잔상 때문일까요. 이제 그녀를 만나기 위해, 조선 시대로 떠납니다.


인터뷰를 잡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습니다. 당시 시대 분위기가 야심한 밤에 남녀가 달라 서로 사맛디 아니할진데 아무리 인터뷰가 목적이라지만 절대 곱지 않은 시선과 눈치 때문입니다. 함께 집안에 기거하는 어린 동자에게 어렵사리 기별을 넣어, 겨우 겨우 자리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장소는 월하정인의 바로 그 장소, 눈높이 담당 아래에서 이뤄졌습니다.


그녀를 기다립니다. 시간은 삼경이 되지 않았습니다. 낮은 눈높이 담장 너머 보이는 사릿지붕이 고풍스럽습니다. 다행히 여름 한낮의 더위는 밤의 그림자에 그 사나웠던 위력을 잠시 거두고 선선한 바람이 그 자리를 대신합니다. 담장 너머 어둠에 부끄럽게 고개를 내민 아스라한 푸르른 나뭇가지, 그리고 그 언저리일까요, 알 수 없는 지척에서 아련히 들려오는 단조로운 귀뚜라미 소리가 여름밤을 더없이 고즈넉하게 만들어줍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봅니다. 푸르슴 하늘, 낮게 드리운 구름 사이로 살포시 눈.썹.달.이 그 예쁘디예쁜 얼굴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사그락’, ‘사그락’ 담벼락에 붙어 가녀린 몸매의 한 여인이 다가옵니다. 옥빛이 감도는 푸른색 쓰개치마로 달진 얼굴과 상채를 가리고 있군요. 하지만 살포시 드러난 옥색치마, 올려진 치마 사이로 보이는 속바지, 진자줏빛 작은 가죽신이 맵시 고운 그녀를 대변해 줍니다. 한마디로 스타일이 아주 끝내줍니다.  



우리 두 사람의 마음은 우리만이 알기에...




만나서 반갑습니다. 야심한 시각에 어렵게 이런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당신을 위해 백목련을 준비했습니다.

어머, 고마워요~. 피는 시기가 아닌데 어찌 이런 꽃을… 백목련의 꽃말이 ‘고귀함, 자연애, 숭고한 사랑, 그리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란 의미죠? (웃음)


21세기에도 당신이 꽤 유명한 사람이라는 거 혹시 아시나요?

아! 그런가요? 200년도 더 전의 사람인 제게 그런 관심을 가져준다니 고맙긴 하지만 제가 그런 유명한 사람인지는 모르겠네요.


네, 당신을 바라보고 있으면 신비한 느낌이 들거든요..

제 외모 때문일까요? 쌍꺼풀 없는 무쌍과 작은 입술, 백옥 피부로 제법 인기가 있긴 하죠. 아마 당신이 사는 21세기의 미인상과는 차이가 있다 보니 더 신비하게 보일 거예요. 그러고 보니 김고은, 전여빈, 안소희, 조이현 같은 배우들도 저와 같은 부류겠군요.


당신이 만나는 남자도 아주 힙해 보입니다. 뭐랄까.. 조선 힙스터랄까요?

후훗... 프라이버시가 있으니 자세히는 전해드리지 못하지만 대단한 세도가의 자제 정도로만 말씀드릴게요.. 워낙 도포자락 제법 휘날리는 패션 리더다 보니 저와 썸이 타게 된 거랍니다.


조선시대, 이렇게 야심한 시각 남녀가 만날 수 있었나요? 로맨틱한 장면이지만 이런 시각에 데이트를 즐긴다는 것은 애틋이 사랑하거나, 남들의 눈의 피해 만날 수밖에 없는 부적절한 사이가 아녔을까 생각되는데

우리를 바라보는 독자들의 상상에 맡길게요. 생각에 따라서는 우리가 연인일 수도 불륜으로 볼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당신이 이야기한 것처럼, 사람들은 가장 로맨틱하고 아름다운 연인으로 우리를 바라봐주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리고 뭐 불륜이면 어때요? 사랑하는 게 죄는 아니잖아요?!!! 당시 불륜으로 이혼도 제법 있었거든요.


의외군요?

그럼요... 이혼합의서도 쓰곤 했어요. 외도한 아내에게 돈을 받고 이혼에 합의해 준 문서도 존재하죠.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세상은 모두 같으니까요 (웃음)


사실 조선시대 하면 그리 자유롭진 않았을 거 같거든요...

천만에요... 사실 우리 시대도 파티 문화가 있어요. 파티 플래너도 있고 카페도 있죠. 파티 플래너는 별감이라 부르는데 저잣거리에서 기녀를 섭외해서 사람을 불러 모아 춤도 추고, 술도 마시는 일종의 클럽 파티나 라운지 파티를 열곤 합니다. 디제이로 한양에서 제일 잘 나가는 풍물패를 부르기도 하고요.. 특히 광통교 인근이 가장 힙한 장소였죠.


우리가 어떤 민족인가? 힙스터의 민족입니다.  
광통교 라운지바는 당시 최고의 핫플입니다


당신을 그린 신윤복에 대해 드라마틱한 가설들이 많습니다. 여성였다고도 하고요

워낙 여성을 섬세하고 심리묘사가 뛰어나게 그려서인지 그런 풍부한(?) 이야기가 많아요~ 미인도를 보아도 그렇죠. 그에 대한 역사적 기록이 많지 않으니 미스터리 한 인물로 남아 매력적인 판타지가 된 건 아닐까요?


그럼 당신이 본 신윤복은 어떤 화가였나요?

화려한 한양의 화가랄까요? 도시의 화가죠. 플라뇌르! 비밀의 화원, 부녀자와 기생의 이야기, 남성위주의 사회에서 존재감 없던 여인들을 주인공으로, 기녀의 이야기, 양반, 기녀, 기방의 세계, 남녀 간의 연애를 도시적 감각으로 그린 스타일리스트였어요.


그림에서 보면 눈썹달인가요? 달이 참 의문인데 저 달을 보면 당신과 남친의 데이트 시간을 알 수 있다고 하던데요?

달이 볼록한 면이 위쪽을 향해있죠? 그림처럼 되려면 달이 지구의 그림자에 가려지는 부분월식에서만 나타나죠. 승정원 기록에 다 나와 있는데.. 추정하면 1793년 8월 21일 밤에 데이트를 했죠.


끝으로 독자들에게 한 말씀하신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사랑하세요!(웃음) 남들이 우리 두 사람에 대해 대체 무슨 관계냐.. 어떤 상황이냐 묻곤 해요. 그래서 이렇게 대답할게요! '달빛이 침침한 한밤중에, 두 사람의 마음은 두 사람만이 안다'라고요..



인터뷰를 마치고 현대로 돌아오며 그녀를 생각합니다.

좀 놀 줄 아는 이들, 청춘은 청춘이다. 사랑은 사랑이다. 시대를 불문하고 그저 사랑은 아름다우니까…. 뭐 하나? 옷 갈아입고 밤에 사랑 속으로 나가지 않고! 렛스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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