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쓸데없이 재미있게 살아볼게
강경극장 손자!
기억 속 사람들이 부르던 첫 호칭입니다. 운 좋게도 그런 집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전라도 김제극장, 서울 답십리 극장도 할아버지, 아버지가 했으니 뭐… 당시 나름 멀티플렉스입니다.
1,2층으로 되어 있던 단관 극장은 회전무대가 있을 정도로 제법 컸습니다. 극장은 어린 아이에게 집이자 놀이터입니다.
극장에서도 가장 높은 곳, 영화를 틀어주는 영사실은 언제나 뜨거운 열기와 아주 특별한 냄새로 기억되는 장소입니다. 커다란 영사기에서 필름이 돌아가면 영사기 안에서는 전등이 켜 집니다. 전등은 커다란 극장 스크린에 필름을 비추기 위해 엄청한 빛을 품어냅니다. 전등이 품어내는 빛과 열기 그리고 필름 타는 냄새… 바닥에 버려진 필름 조각들… 지금은 볼 수 없는 극장의 풍경입니다.
영사실을 내려와, 페인트 냄새가 가득한 공간으로 들어갑니다. 새로 상영할 외화 간판 그리는 아저씨와 작업실의 페인트 냄새… 그곳에서 어린 나는 처음으로 인디아나 존스를 만나고 주윤발을 만납니다. 간판을 그리는 아저씨는 나에게 미켈란젤로이자 고흐입니다. 너그러운 아저씨 덕분에 존스 박사의 모자에 직접 색을 넣어보기도 합니다.
티켓을 파는 사무실은 극장 정면에 작은 창을 내어 영화표를 내어줍니다. 이곳이 '영화'하면 떠오르는 아주 근사한 이름의 '박.스. 오.피.스.'라는 것을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 영화는 간판과 포스터, 그리고 스틸 사진으로 관객에게 이야기를 전합니다. 거리의 벽보에 영화 포스터 붙이는 아저씨들을 따라 이 동네 저 동네 쫓아다니기도 하고, 소피 마르소의 스틸 사진을 따로 빼서 소중히 간직하기도 합니다.
더 어린 나이... 스크린 맨 앞, 좌석에 앉아 영화를 보다 스르르 잠이 들어 깨어보면 마법처럼 방 안 엄마 옆에 누워있었던 아련한 기억... 겨울이면 극장을 덥히던 커다란 난방기와 난로의 소음들… 극장에 은은히 배어있는 팝콘 냄새...
이제는 가물 가물한 자잘한 기억의 편린들.
사람들이 대도시로 떠나고, TV와 멀티플렉스 극장에 밀려 극장은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집에는 영화 필름이 담겨있던 커다란 은색 필름통들과 학교나 관공서 그리고... 그 누군가에게 주려 했던 수만 장의 초대권만이 남았습니다.
이사를 하고 또 이사를 하며, 둘 곳 없던 커다란 필름통들도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수십 년이 지나 이제는 커다란 극장의 자리도, 아저씨들도, 소피마르소도 사라졌습니다.
다 사라지고... 없어졌지만 아직 초대권이 하나 남았습니다. 다행입니다. 기억의 서랍 한 자리, 나를 추억으로 초대해 주는 초대권입니다. 영화관엔 특유의 냄새가 있습니다. 메가박스든…CGV든…그 냄새가 있습니다. 추억으로 초대하는 냄새입니다.
P.S
사업을 하면 언제나 목에 칼을 차야 합니다. 월급을 받으며 마음 편히 회사를 다니고 싶어 집니다.
이럴 때는 영화 한 편 그립습니다.
광고회사 사장도 때론 힘들 때가 있습니다. 뭐 … 그냥 그렇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