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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행 Apr 19. 2024

엘리베이터 안에서 우린 사랑을 나눴지

: 쓸데없이 재미있게 살아볼게


어! 잠시만! 

닫히는 엘리베이터 틈새로 손을 집어넣습니다. 


잿빛 눈의 덥수룩한 수염, 곱슬한 갈색 머리, 중년의 낯선 외국인이 타 있습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어색함과 둘 대 없는 시선으로 한층 한층 내려가는 빨간 숫자만 멍하니 바라봅니다. 


‘굿모닝~ 안.냐.세.요.’


잿빛눈의 외국인이 혀 짧은 인사를 건넵니다. 

어색한 미소로 고개를 45° 모로 누여 말없이 답합니다. 처음 듣는 인사에 고개가 어깨 사이로 거북이처럼 움츠러듭니다. 


층층이 문이 열릴 때마다... 

쓰레기를 버리러 나온 아줌마에게

유치원에 가는 엄마와 꼬맹이에게

아파트 관리하시는 어르신에게

배달을 온 헬멧의 라이더에게도

자신의 이가 스물두 개 보이도록 환한 미소의 혀 짧은 인사를 합니다. 


모두가 고개를 어깨 사이로 움츠립니다. 라이더의 헬멧도 움츠러듭니다. 


그렇게 며칠… 잿빛눈 외국인의 어김없는 인사에 엘리베이터 안은 아침 인사의 작은 공간이자 거. 북. 이. 들의 서식지가 되었습니다. 그 사이 보이지 않던 아줌마의 슬리퍼와 꼬맹이의 초록색 유치원 가방, 아저씨와 배달 음식이 눈에 들어옵니다. 


작은 틈새...잿빛눈 외국인을 따라 서로의 아침이 조금 열리기 열흘이 지났을까… 잿빛눈 외국인이 보이지 않습니다. 사라졌습니다. 아마.. 에어비앤비였거나 누군가의 집을 잠시 숙소로 사용했던 모양입니다. 잿빛눈 외국인이 사라지고 엘리베이터는 다시 어색한 침묵의 공간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따스한 시선도…감미로운 눈빛의 인사도 아녔으니 또다시 서로는 층층이 내려가는 빨간 숫자만을 바라봅니다. 


혹시 이런 경험 있으신가요?

해외 출장이나 휴양지를 가면 의당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낯선 외국인의 친절한 미소가 있습니다. 덕분에 기분 좋은 하루를 시작하면서도 돌아오면 이웃에 무심합니다. 이유를 아직 모르겠습니다. 곰곰이 생각합니다. 


어쩌면 내 안에는 만주벌판을 달리고 타클라마칸 사막과 시베리아의 평원을 달리던 먼 옛날 내 조상의 호전적 유전자가 수 만년 동안 세포 어딘가에 흐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가만히 엘리베이터에 얼굴을 비춰봅니다. 양미간을 찡그리고… 누구라도 한 명 걸려라! 사정없이 물어뜯겠다는 사나운 얼굴의 직립보행인이 한 명 보입니다. 아! 그렇구나! 적이구나! 적! 잿빛눈 외국인 탓에 하마터면 친절할 뻔했습니다. 


잿빛눈 외국인이 사라지고 엘리베이터는 다시 평화를 찾았습니다.  


이제 나를 반겨주는 건…9층에 하얀 강아지만이 그르렁그르렁.. 이를 드러내고 코에 주름을 잡으며 그르렁그르렁 눈빛을 교환할 뿐입니다. 



P.S.

가끔… 광고회사 경쟁 PT에서 

경쟁회사와 엘리베이터를 탈 때가 있습니다. 


본능일까? 서로 호전적 눈빛으로 엘리베이터 안은 이미 전쟁터가 됩니다. 분명 인류애로 사랑할 수 없는 사이 이입니다. 





image : distractif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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