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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천국

완전한 행복에 이은 영원한 천국

by Rumi Feb 04.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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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유정, 은행나무, 2024.


해상은 경주의 집에 초대된다. 폭설경보가 발령된 시골마을은 흡사 경보가 내려질 것을 예상한 듯, 텅 비어 있다. 아니 경주와 공달만 빼고... 해상을 맞은 건 홍금강앵무새인 공달이다. “네 주인을 만나러 왔는데.” “죽었어.” “여기 있습니다.” 이 책은 경주가 해상에게 롤라(가상세계)의 개인 전용극작인 드림시어터 제작을 의뢰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어린 시절부터 바보 같이 울면 안 되는 아이였던 경주는 감정은 묻어둔 채, 하루하루 째깍째깍 살아내고 있다. 그가 확신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몸을 움직여 생활을 꾸려내야 한다는 것. 그렇게 꾸역꾸역 살아내던 중, 숨은 감정이 분노가 되어 터져 나온 순간 경주는 동생 승주를 내친다. 승주는 집을 떠나고 이어 노숙자 쉼터 인근에서 주검으로 발견된다.   

   

경주가 살아 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생활을 꾸려가는 사람이란 점이다. 그렇게 경주는 서해 끝, 바다의 유빙이 몰려오는 암벽으로 둘러 쌓인 재활원 경비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역시 경비로 들어온 제이를 만나고, 가상 세계 진입을 위한 유심 쟁탈전에 끼어들게 된다.   

   

제이의 목숨과 바꾼 유심을 제이의 여자 친구이며 루게릭병으로 누워있는 해상에게 전한다. 해상은 롤라에 진입하여 홀로그램이지만 다시 걸어 다닐 수 있는 생을 이어가고, 경주는 재활원에서의 여러 사건과 사고를 뒤로하고 만경으로 돌아와 다시 생활을 이어간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고, 차량전복사고로 아내와 뱃속의 아이를 잃었지만, 살아남고 또다시 살아간다.

     

이제 폐허가 된 만경의 집은 곧 철거될 예정이고, 경주는 근방의 실버타운에 입주하지만 30여 년이 지나서까지, 롤라의 유심을 찾는 이들이 찾아온다. 경주는 이들과 숨 막히는 추격전을 벌인 끝에, 또 죽지 못하고 상대방을 처치하고 만다. 그렇게 경주는 삶을 견디고, 세상에 맞선다.

     

해상은 그녀가 제작한 경주의 드림시어터에서 칼잡이가 되어 그와 한판 대결을 펼치나, 칼잡이의 죽음으로 자신의 롤라 세계인 사막으로 돌아온다. 드림시어터에서의 생은 죽어야만 롤라로 돌아올 수 있으나, 경주는 재활원 이후의 삶 30여 페이지를 여백으로 제작할 것을 요구하여 결말을 설정하지 않음으로, 아직도 '의지' 혹은 '욕망'을 갖고 삶을 견디고, 맞서는 중이다.

   

책의 내용도 곱씹어 보아야 비로소 이해되지만, 무엇보다 책에 자주 나오는 작가의 쫄깃쫄깃한 뒷담화는 자칫 먼 나라이야기일 수도 있는 주제를 가까이 만질 수 있게 하는 장치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너 기다렸어,” “왜요?” “집에 죽통 두고 간 거, 돌려주려고.” 그녀는 고개를 슬쩍 기울이고 소리 없이 웃었다. 상대의 표정을 잘 읽는다고 자부하는 내 눈이 해석한바, 웃음의 의미는 이랬다. 나는 네게 죽통을 날리고 싶다. (p467)     


‘이 책은 ‘견디고 맞서고 이겨내려는 인간의 마지막 욕망’에 대한 이야기다. (중략) 이 욕망과 추구의 기질에 나는 “야성”이라는 이름을 붙였다‘(p523, 작가의 말 中). 나는 이 책을 읽고 이렇게 견디고 맞서는, 그리고 살아내는 멋진 인간 정유정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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