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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그레고리 마스 개인전 "파라노이아 파라다이스"

아뜰리에 에르메스, 2024. 11. 22. – 2025. 2. 2.

전시 포스터 © 아뜰리에 에르메스




서울 청담동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한국과 독일이라는 서로 다른 출신지를 지닌 아티스트 듀오 김나영과 그레고리 마스(이하 김&마스)의 개인전이 개최되었다. 1991년 프랑스 파리 국립 미술학교에서 만나 2004년 이래로 공동 작업을 지속해 온 이들은 이번 전시에서 미술사의 방법론을 비롯해 키티, 팩맨 등 친숙한 캐릭터에서 일상용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티브와 오브제를 활용한 작품 60점을 선보였다.




전시 전경 © 아뜰리에 에르메스




이 모든 요소들은 한때 자신이 가지고 있던 기억과 맥락을 모두 내려둔 채 김&마스의 손을 거쳐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게 된다. 마치 소설 프랑켄슈타인에 등장하는 박사가 시체 조각을 모아 붙이고 전기를 가해 새 생명을 탄생시켰듯, 김&마스는 서로 일면식도 없을 온갖 요소들을 결합시킨다.




<헤비 스모커 Heavy Smoker>, Pottery, metal, plastic, cigarette 28 × 28 × 100 cm, 2024



일례로 <헤비 스모커 Heavy Smoker>(2024)는 전통 향로와 담배라는 다소 동떨어진 조합을 보인다. 작가는 이 두 오브제의 상반된 조각적 특질에 주목했다. 1200도 이상의 고열에서 완성된 도자기는 매끈한 흙덩이에서 단단한 도기가 되는 과정을 거친다. 물리적 상태를 유지하며 치밀화 되는 이 변화와 달리 담배는 열을 가하면 형태를 잃고 재와 연기만 남긴 채 사라진다. 이 조각적 특질을 쫓다 보니 지독한 담배 냄새를 풍기는 향로가 탄생했다.



<작업실에서 힘든하루> 1~5, 코니숑이라 불린 케서방(2024) © 아뜰리에 에르메스



김&마스의 작품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방법론의 전면화’다. 클라이브 벨(Clive Bell)의 ‘유의미한 형식(significant form)’, 아서 단토(Arthur C. Danto)의 ‘체현된 의미(embodied meaning)’라는 개념을 필두로 하여 예술 작품의 핵심 요소로 여겨졌던 형식과 의도가 후퇴하고, 대신 창작의 방법 자체가 작품의 중심을 차지한다.



<쩔었어> 1-5 (2024) © 아뜰리에 에르메스




<쩔었어 I Nailed it>(2024)에서 우리는 피카소(Pablo Picasso), 귄터 외커(Günther Uecker), 말레비치(Kazimir Malevich)의 방식이 차용되는 과정 자체를 목도하게 된다. 이 작업은 일정한 간격으로 못을 박는 단순한 행위를 통해 피카소의 드로잉을 재현하는 방식으로 생성된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완성된 작품의 형태나 그것이 함의하는 메시지가 아니다. 이 단순하고 고된 행위를 통해 김&마스는 창작 과정과 그 방법 자체를 작품의 중심에 위치시킨다. 일정한 간격으로 못을 박는 고된 행위로 얻은 “내가 해냈다(I nailed it)”는 성취감은 차용된 방법론과 함께 캔버스 위에 부유한다.




<쩔었어> 5 부분 확대 © 아뜰리에 에르메스




동시에 김&마스의 작품에서는 앞서 설명한 ‘프랑켄슈타인화’라는 전략 하에 니콜라 부리오(Nicolas Bourriaud)의 ‘포스트프로덕션(postproduction)’ 개념이 체현된다. 부리오는 “편집이나 합성과 같은 방식을 사용하는 동시대 작가들의 작업 방식을 설명하고 그들이 사용하는 일련의 제작 방식들을 분석하여 어떤 공통성을 찾기 위하여” 포스트프로덕션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반야(般若) 키티>(2024) Resin, jesmonite, lightbulb, varnish, acrylic color, marble, metal




포스트모더니즘의 차용(appropriation)은 기존 작품의 비판적 계승과 맥락적 전유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포스트프로덕션은 기존 자료를 무한한 자원으로 보고 이를 유희적으로 재구성하는 데 중점을 둔다는 점에서 차이를 지닌다. 김&마스는 후자의 방식처럼 미술사와 대중문화 요소를 샘플링하고 리믹스(remix)한다. 전시 전반에서 과거 미술사의 위대한 유산은 그저 풍부한 정보의 집합으로써 존재한다.





이러한 전략에는 단순한 재배열에 그쳐 '텅 빈 기표'로 남을 수 있다는 위험이 뒤따른다. 그러나 김&마스 특유의 유머러스한 표현은 전시를 열린 결말로 만들어 관람객으로 하여금 자신의 지식과 경험에 따라 작품을 다층적으로 해석할 여지를 남긴다. 사물에 담긴 관람객 개별의 향수를 자극하는 이들의 방식이 보다 심화된 담론으로 이어지고, 기표와 기의의 균형을 모색하는 논의로 확장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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