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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은새 Jun 02. 2024

나는 다정해질 필요가 있다.

240602

요즘 난 과학 서적을 읽는다. 이것이 나에게 있어 얼마나 낯선 일인가 하면, 난 여태 글만 가까이하고 숫자를 멀리하던 문과형 인간이었으니 봄에 피는 꽃이 갑자기 차가운 겨울에 꽃봉오리를 터뜨린 격이랄까. 몇 년 전만 해도 내게 불모지였던 과학 분야는 요즘 내 세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지 않다. 과학 자체에 흥미를 느낀 이유도 있었으나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과학 지식처럼 명확한 정답을 원했던 까닭이 컸다. 세상엔 일 더 하기 일처럼 답이 정해진 질문보다 열린 결말의 물음이 더 많은데, 난 언젠가부터 그걸 파헤칠 의지도, 밝히고 싶은 욕구도 바닥났다. 그에 반해 다소 딱딱하더라도 질문에 대한 정확한 정답이 정해진 것이 반가워졌다. 울렁거리는 세상 속에서 난 총기를 잃었고, 다정함을 빼앗겼다.


몇 년 전 서울 강서구에서 벌어진 흉기 난동, 그 피해자를 치료한 주치의였던 작가의 글을 접했다. 작가이자 의사인 남궁인 씨의 글이었다. 글을 읽을수록 몰입되는 한편 어지러웠다. 글에서 비릿한 악취가 났다. 그의 문장을 따라 시선을 옮겨가다 보니 세상에 대한 환멸에 고개가 멈췄다. 속이 쓰리고, 아렸다. 세상엔 삼키지 못할 만큼 쓴 이야기가 많다. 친한 동생은 몇 년째 세월호가 일어난 날이면 글을 쓴다. 그렇게 홀로 추모식을 가진다, 별이 된 아이들을 생각하며.


난 어떤 현상이 벌어지면 그 까닭을 물어본다. 사회 현상과 사건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대체 왜 그 많은 별이 팽목항에서 하늘로 올라갈 수밖에 없었으며 강서구 피시방에서 참변을 행한 가해자의 저의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매스컴에선 선장의 무능함, 가해자의 조현병 때문이라 답변을 내놓지만 내 목구멍으론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난 캑캑거리며 그 허술한 답변을 뱉어낸다. 결국 그 자리는 메워지지 못한 채 공허한 마침표로 대충 덧대어 마무리된다.


가끔 답을 구하려는 일련의 과정들이 소모적으로 느껴질 때면 난 주머니를 뒤져 자동응답기 버튼을 누른다. 삑. "그냥 그렇답니다.", 삑. "그냥 그렇답니다." 난 피어나는 물음을 싸구려 답변으로 대충 메운다. 공허하게 뚫린 질문지를 지그시 바라본다. 답을 찾으려는 시도는 아프고, 무섭다.


난 따뜻함을 잃어가는 중이다. 마음엔 사시사철 장마처럼 비가 내린다. 비 온 뒤 땅이 굳는다는데 바닥은 여전히 질척거린다. 우리나라는 삼한사온, 예부터 사흘이 추웠으면 나흘은 따듯했다. 사람들의 온도도 마찬가지였으리라. 그런데 지금은 닷새, 엿새 동안 쌀쌀하다. 인정이 메마르고 관용이 어색한 사회가 됐다. 이 사회의 온도는 내 자화상이다. 난 그 앞에 서서 속으로 되뇐다. 잊으려 하면, 결국 잃을 것이라고. 난 잊으려 눈을 감는 대신 지그시 앞을 바라본다. 일어서서 답을 구하려 한다. 답이 정해진 책을 잠시 내려놓고 구태여 답을 찾으려 한다. 그리고 마음속에 한 문장을 꾹꾹 눌러쓴다. 난 다정해질 필요가 있고, 세상은 마땅히 다정함을 누릴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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