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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은새 Jul 07. 2024

지우개를 든 사람

240707

"도와주세요!" 내가 일을 하며 가장 많이 마주하는 독백이다. 대부분의 현장에서 구조대상자는 말을 하지 못하지만 그 현장이, 공간이 대신 소리친다.

나는 내 손에 청소기가 들려 있다고 믿는다. 우린 그것으로 세상에 물감처럼 묻은 불행을 빨아들인다. 삶에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아픈 순간을 말끔히 지우는 것, 그래서 다음에 이 공간을 스칠 사람들이 이곳의 우울을 마주치지 않게 돕는 게 내 일이다. 이 행위는 대개 별일 없이 마무리되는데, 간혹 어떤 순간은 이에 붙은 엿가락처럼 끈적하게 기억에 붙어 기생하곤 한다.

재작년 여름이었을 거다. 후덥지근한 공기가 만연한 새벽이었으니. 엔진 소리와 장비를 착용하며 생긴 여러 잡음 사이로 또렷한 무전 소리가 퍼졌다. 아파트 18층에 불이 났다는 신고였다. 신변을 비관한 어떤 이가 자기 집에 방화했다는 내용이었다. 휑한 새벽 도로를 미끄러지듯 질주했다. 재빨리 현장으로 접근하여 밖을 보니 검은 연기가 하늘로 풀풀 피어오르고 있었다. 새까만 밤보다 더 짙은 연기가 어둠을 잡아먹고 있었다. 금세 현장은 시장바닥처럼 부산스러워졌다. 현장 진입을 준비하는 화재진압대원들, 혹시 모를 환자를 대비하는 구급대원들, 좁은 아파트 진입로에 가득 찬 소방차들이 새벽의 정적을 깼다. 사람들 몸 위엔 소방 차량의 빨간 불빛이 번쩍번쩍 내려앉았다.

썰물처럼 탈출하는 아파트 주민들을 지나 뚜벅뚜벅 계단을 올랐다. 화점층에 가까워질수록 연기가 자욱해졌다. 보이지 않는 저 어둠 안에서 먼저 도착한 동료들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발을 더듬거리며 신발장을 지나자, 거실로 보이는 넓은 공간이 나왔다. 손을 더듬어 기둥을 찾아 우측으로 돌았다. 빠지직거리는 유리와 건물 잔해를 밟는 소리가 두꺼운 장화 밑창을 타고 올라왔다. 그 순간 더듬거리는 손에 매끈한 무엇이 닿았다. 유리다. 손에 유리가 느껴졌다. 팀장님께서 손에 들고 있던 쇠지레로 유리를 깼다. 날카로운 파열음이 몇 차례 울린 뒤 깨진 유리 사이로 연기가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거대한 목구멍의 괴물이 유리 밖에 서서 연기를 삼키는 듯했다. 자욱한 연기로 숨 막힐 듯 어두웠던 실내가 조금씩 옅어지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누군가 사람을 발견했다고 소리쳤다. 이미 까맣게 그을린 구조대상자는 생사가 분명해 보였지만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구출했다. 구급대의 들것에 태워진 채 곧장 병원으로 이송됐다.

보통 현장의 일은 금세 잊히기 마련인데 가끔 이 기억이 난다. 그가 들것에 실려 가던 순간, 그리고 그가 발견됐던 장소. 특히 그가 열렬히 기어가고자 했던 방향. 그의 손끝은 베란다를 향하고 있었다. 죽을 각오로 불을 질렀음에도 생의 마지막 순간엔 삶을 택했다. 그 역설이 그가 향했던 몸의 방향으로 대변된 듯해서, 그 절절한 순간이 너무나도 적나라해서 내 기억 속에 꽤 오래 머무르는 것 같다. 그날 난 글을 썼다. 마지막 문장은 '살아달라'였다. 그토록 고통스러워 죽고 싶은 사람도 생의 마지막 순간엔 삶을 택하니, 어쩌면 그 끝은 해방이 아닐 수 있다고, 삶을 단절시킬 의지는 결코 살고자 하는 본능을 이기지 못한다는 글이었다.

이런 기억을 품고 살아간다는 게 한 줌의 부담인 한편 고마운 일이라 여긴다. 요즘 난 '사람은 살아온 시간보다 살아온 과정으로 평가된다'는 문장을 품고 살아간다. 우린 상비약처럼 존재해야 한다. 비상시에 서랍을 열어보면 그 자리를 묵묵히 지키는 상비약. 아프지 않게, 체하지 않게, 덧나지 않게 하는 것.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상비약이 없으면 몸은 고장 난다. 누군가의 마음이, 몸이 동하지 않게 사사로운 감정은 잠시 묶어둔다. "도와주세요!" 그 음성에 다시 몸을 일으킨다. 본래의 얼굴, 원래의 온도, 똑같은 감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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