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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온 Dec 28. 2021

뱃속에 사는 작은 악마와 만나기 전

뱃속에 꼬르륵이 사는 소녀(1) 



이 글을 쓰는 건 순전히 배에서 나는 소리 때문이다. 대게 사람들은 배에서 소리가 나는 이유가 배고파서, 위장이 수축되면서 나는 소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찾은 꼬르륵의 원인은 세상에 알려진 것과는 달랐다. 내 뱃속에는 강아지가 살고 있다. 






이 아이는 한국말을 못 한다. 여느 강아지들이 그렇듯, 열어달라고 낑낑거리고, 밥 달라고 컹컹대고, 놀자고 헤헤거린다. 다른 강아지들이 배 밖에 나와 산다면, 이 강아지는 뱃속에서 산다. 혹자는 의문을 던진다. 본 적도 없이 어떻게 강아지인지 아냐고?


내 배에선 사람의 배에서 나는 소리와 확연히 다른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정확히 말하면 생물체인데, 아는 동물 중 강아지가 낑낑거리는 소리와 가장 비슷하기 때문에 강아지라고 추측한다. 뱃속 강아지는 꼬르륵하고 운다. 이 아이의 이름은 꼬르다.


처음 꼬르와 조우한 열여덟로 돌아간다. 사춘기 내내 원망하던 실체와의 만남이기에 첫인상은 귀엽지 않았다. 지금은 내 하나뿐인 귀염둥이지만, 처음엔 소악마였다. 눈이 영롱하게 빛나는데 장난기가 넘치고 앳되고 몸집이 작았다. 꼬르에게 나는 어떤 인상이었을까, 어릴 적엔 팔다리가 빼빼 말라서, 별명이 젓가락이었다. 그런데 키는 크지 않아서 아무도 모델 권유는 하지 않았다. 작고 말랐다, 그게 내 첫인상이었을 것이다. 배에서 꼬르륵하는 소리가 나면 "성장기인가 봐, 말라서 더 자주 배고픈가 봐."라고 선생님과 친척 어른들이 말씀하시곤 했다. 어른들이 나한테 무슨 말을 해도 불쾌함을 못 느낄 때였고, 정말 성장기여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초등학교 5학년, 내 배에서 나는 꼬르륵 소리가 드디어 창피하다고 느낀 일이 있었다. 







미술시간이었다. 점심을 먹은 지 얼마 안 된 5교시였다. 미술시간이면 친구들이 내 책상에 몰려와서 "우와"하고 감탄사를 터트렸다. 선생님은 나중에도 그림을 그리라고 권유하셨다. 미술수업이 기다려졌다. 또 놀라게 해 줘야지, 그날도 크레파스로 왼손 날이 거뭇거뭇해지도록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저마다의 그림에 집중하고 있어 고요한 적막이었다. 초등학교 교실에선 흔치 않은 순간이었다. 


"꼬오르르륵"


배를 뚫고 나와 정적을 가르는 소리였다. 아이들은 와르르 나를 쳐다봤다.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다. 그렇게 자유롭던 시간이 온몸을 옥죄는 시간으로 돌변하는 건 한순간이었다. 얼굴이 달궈지고 있었다. 그림을 향한 눈들은 긍정으로 가득했는데, 뱃소리에 주목하는 눈동자들은 끔찍했다. 그때, 인터넷에서 나오는 말을 많이 알고 욕 많이 하는 맨 뒷자리 남자애가 말했다. 


"야 배에 거지가 들었냐?"



애들이 왁자지껄 웃었다. 눈가가 뜨끈했다. 손이 부르르 떨렸다. 배에서 소리 나는 게 내 잘못도 아닌데, 나를 향한 웃음소리가 내 잘못이라고 떠드는 듯했다. 그날 그린 그림을 칭찬받았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날 밤 머리맡에 휴지를 얼마나 많이 뭉쳐뒀는지 모른다. 더 이상 미술시간이 기다려지지 않았다. 정적을 못 견디게 되었다. 그때는 놀리는 남자애한테 화낼 생각도 못했다. 뱃소리를 막지 못한 나를 탓했다. 나에게로 돌리는 자책은 용기가 쓸모없었다. 자책이 가장 쉬운 선택이었다. 




배에서 소리가 나는 건 자연스럽다. 그런데 유독 심한 사람은 그게 스트레스다. 누군가의 시선보다는 상상의 시선으로 날 바라본다. 누가 들으면 어떡하지? 보다는 뱃소리가 났다는 자체에 창피함이 오른다. 뱃소리는 그냥 멋이 없다. 마르면 지방이 적어서 울림이 더 잘 전달된다는 소리도 있고, 위장에 문제가 있어서 유독 크게 들린다고도 한다. 그러나 나는 건강검진 결과로 위장질병이 나온 적도, 위장이 아파서 내과에 간 적도 없다. 왜 나는 유독 뱃소리가 크고 자주 나는 걸까? 다른 사람 뱃소리는 별로 들은 적도 없는데, (차라리 뱃소리가 들리면 반갑다.) 어릴 적엔 밤마다 기도했다. 내일 일어나면 배에서 소리 나지 않는 신약을 개발했길! 생일 케이크 촛불을 불기 전에는 '앞으로 제 배에서 어림없는 소리가 나오지 않게 해 주세요.'라고 빌었다. 

         



그런데 배에선 여전히 우렁찬 신음소리가 나왔다. 신은 내가 밉나? 엄마를 따라 동네에서 가장 큰 교회를 다니던 초등생은 생각했다. 일요일 아침마다 먹는 천 원짜리 미역국이 맛있어서 다니긴 했지만, 억울했다. 오히려 어렸을 때보다 더 크게 나는 것 같았다. 중학교부턴 교회를 다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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