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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온 Dec 29. 2021

도서관에서 공부하기 난이도 上

뱃속에 꼬르륵이 사는 소녀(2)


배를 움켜쥐었다. 잘하자. 응? 주먹으로 배를 퍽퍽 때리기도 했다. 돌아오는 주먹이 아팠다. 학교 가기 전 아침엔 입맛이 없어도 억지로 밥을 두 공기씩 퍼먹고 나갔다. 그래도 여전히 3교시가 끝나면 배가 울렸고, 어쩔 땐 2교시만 되어도 슬슬 시동을 걸었다. 배를 바꾸는 것보다 환경을 바꾸는 게 더 쉬웠다. 독서실이나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건 꿈도 못 꿨다. 중학교 2학년 친구를 따라 버스를 타고 처음 시립 도서관을 갔다. 아침 일찍 가서 열람실 좌석표를 받았다. 친구는 건넛편 안쪽 좌석을 잡았고, 나는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통로 바로 옆 좌석을 잡았다. 일찍 와서 앉았다.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좌우 좌석이 차기 시작하니,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또 배에서 소리가 나면 어떡하지? 배가 살살 아픈 느낌이 왔다. 가방엔 영어, 수학, 국사 교과서와 국사 문제집, 영어 문제집 총 5권과 필기노트 2권을 넣었고, 각진 책무덤이 가방 천 아래로 존재감을 뽐냈다. 가방을 풀고 문제집과 필기노트를 각 맞춰 책상에 올려놓았다. 그래 나도 공부를 해보는 거야. 앉기 시작한 지 1시간 20분 만에 위기가 찾아왔다.   






부산스레 필통을 뒤적거렸다. 촤르르거리며 샤프와 형광펜이 뒤엉켰다. 15초 이상 볼펜을 찾는 척하는 것도 눈치가 보였다. 양쪽 사람들이 불편하지 않는 정도로, 배에서 나는 소리를 감출만큼만 시끄럽고 싶다. 새 학기가 된 지 얼마 안 된 3월이라 패딩을 입고 있었다. 맨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뺐다. 바스락 소리도 14초 이상은 힘들었다. 최후의 방법이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화장실로 갔다. 울고 싶었다. 공부에 집중하기는커녕 뱃소리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쪼금 눈물이 나와서 대형 두루마기 휴지 한쪽으로 찍었다. 어쩌지, 돌아가서 집중이 될까. 친구한테 점심 일찍 먹으면 안 되냐고 물어볼까? 근데 아까 저녁까지 하고 간다고 했는데, 점심 먹은 다음엔 또 뭘 먹자고 하지, 아프다고 하고 집에 갈까?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친구한테 전화가 왔다. 화장실에서 나오며 전화를 받았다. 

"어, 나 화장실에서 방금 나왔어." 

"그래? 자리에 없길래, 난 휴게실"

열람실 옆 휴게실에 친구가 앉아있었다. 

친구가 물었다. 

"오늘 사람 많다. 처음 도서관 와서 공부하니까 힘들지?"

"응. 힘드네.."(여러 의미로)

"뭐 마시고 들어갈래? 내가 사줄게"

친구는 능숙하게 휴게실 자판기에 천 원 지폐를 넣었다.

친구는 커피를 눌렀다. 

"벌써 커피 마셔? 엄마가 뭐라고 안 하셔?"

 "응 공부할 때만 한 잔, 많이 마시는 건 싫어하시지."

커피를 마시고, 익숙하게 열람실 좌석을 잡는 친구가 어른 같았다.

무엇보다 배에서 나는 소리를 신경 쓰는 내가 한심했다.

"난 율무차, 고마워"







율무차를 괜히 마셨다. 배가 부글부글거렸다. 배가 고파서 나는 소리와 확연히 달랐다. 오른손으로 배를 꾹 눌렀다. 인터넷에서 본 건데 배를 홀쭉하게 만들거나 숨을 참으면 일시적인 효과가 있다고 했다. 영어 문제집을 펼친 채 3장도 채 풀지 못했다.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 8시부터 줄 서고, 열람실 좌석에 앉아 3시간째 3장을 풀었다니, 배가 아프지만 공중화장실에서 큰일을 보는 건 너무 어렵다. 바람과 함께 나오는 소리는 예측 불가하다. 또 변이 변기에 떨어지는 소리도 민망했다. 이 지극한 생리현상을 처음 겪는 아기처럼 어려웠다. 사람들은 다들 어떻게 이 당연한 생명활동을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할 수 있는 거지? 기본적인 행위도 못하는데 앞으로 어떻게 살 수 있을지. 머리 위에 안개가 끼었다. 속방귀를 계속 참으며 문제를 보는데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발가락을 말아 쥐었다. 신체가 경직되고 민감하게 느껴졌다. 체력소모가 심했는지 왼쪽 뺨을 타고 문제집 위로 땀이 떨어졌다. 그때 친구한테 문자가 왔다. 

"점심 먹으러 갈래?"  

고개를 틀어 친구의 좌석을 보았다. 눈이 마주쳤다.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 자리부터 탈출하고 싶었다. 






도서관 지하엔 분식점이 있다. 평일에는 사람들이 적어서 운영하지 않고 토요일, 일요일 주말 점심과 저녁에만 연다. 난 라면과 참치김밥을 시키고, 친구는 라볶이와 주먹밥을 시켰다. 


배가 그렇게 부글거렸는데도 잘만 들어갔다. 많이 먹는 게 습관이 됐는지, 참치김밥 한 조각이 남았을 땐 양이 부족하진 않을까 더 시킬지 고민했다. 밥 먹고 친구랑 수다 좀 떨다가 도서관 좌석으로 돌아갔다. 아까까진 그렇게 편안했는데 몸이 통나무같이 굳기 시작했다. 앉은 지 40분쯤 지나자 소화되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꾸루룽" 



글로 쓰니까 의태어같이 귀엽게 느껴지지, 소리로 들으면 하나도 안 귀여웠다. 양 옆 좌석이 나에게 더 다가오고, 양팔을 짓누르다, 팡 터트려버릴 것 같았다. 차라리 침대의 유혹이 반가웠다. 점심을 먹으니 슬슬 잠이 쏟아졌다. 잠든 사이 배에서 소리가 날까 봐 20분을 채 자지 못하고 졸았다. 결국 오후 3시에 열람실을 나와, 자료실을 뒤적거리다, 화장실을 갔다가, 휴게실에서 알로에도 뽑아먹고, 정신산만 하게 돌아다녔다. 어떻게든 친구가 가는 시간까지 채워야 했다. 좌석에 돌아오니 5시가 지나고 있었다. 펼쳐놓은 국사 문제집 위엔 쪽지가 앉아있었다. 


[어딜 그렇게 쏘다님? 집중 안되면 갈까?]


재빨리 가방을 쌌다. 가방이 두둑했다. 마음도 무거웠으나 간다니 또 가벼웠다. 


오늘 한 일: 화장실 가기, 율무차, 알로에 마시기, 라면, 참치김밥 먹기, 아침 일찍 일어나서 도서관 가기,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영어 문제집 3장, 국사 문제집 2장 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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