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온 Dec 30. 2021

근무조건: 음악이 있는 곳

뱃속에 꼬르륵이 사는 소녀(3)


사람들 많은 곳을 가면 속이 울렁거렸다. 정말 위가 축소되는 것 같았다. 발표 직전엔 배가 살살 아팠으며, 선생님께 질문을 하고 싶어도 목소리가 안 나왔다. 선생님이 물어보는 질문엔 답을 속으로 말했다.

'혹시 틀리면 어쩌지? 애들이 날 비웃으면 어쩌지? 나한테 집중했을 때 배에서 소리가 나면?'

입은 열리지 않고 머릿속은 시끄러웠다. 선생님이 기다리다 답을 말하시면,

'말했으면 맞췄을 텐데'하고 아쉬웠다. 그래도 뱃소리에 해방되는 순간이 있었는데 바로 집중하는 순간이었다. 잠시지만 배에서 나는 소리를 잊을 수 있었다. '이 순간이 영원하길'이라고 생각한 순간 바로 집중력이 깨져버렸지만.


버스가 좋았다. 정거장 알림 방송이 나오고, 기사님이 듣는 라디오 소리가 나오고, 디제이가 음악 트는 곳. 조용한 공간에선 이어폰 속 음악이 크게 나오면 나만 들리니까 방심하기 쉬웠다. 언제 배에서 소리 날까 두려웠다. 이건 느낌도 안 온다. 음악을 뚫고 들어오는 뱃고동 소리, 조용한 공간에서 노래 듣기는 절대 금물이었다. 그러나 버스에선 뱃소리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엔진 소리와 배기가스 소리에 뱃소리는 언제든 묻힐 준비가 되었고 음악이 음악으로 다가왔다. 버스 밖 탁 트인 도로를 바라보며 이어폰을 꽂았다. 모두가 어두운 밤, 가수의 포근한 허밍이 잘 어울렸다. 겨울이어도 춥지 않았다. 음악이 있는 공간에서 일하고 싶다. 남몰래 마음을 품었다.






고등학교를 진학하고 싶지 않았다. 중학교 3학년, 36명이 모인 반이 숨 막혔다. 교실을 수없이 박차고 나갔다. 머릿속에서는, 그러나 수업을 안 들을 용기는 없었고, 보건실에 가서 튀고 싶지도 않았다. 고등학교에서도 나가고 싶으면 어떡하지, 9시부터 4시 반까지도 고통스러운데, 9시부터 10시 야자까지 있는 고등학교에서 내가 숨 쉴 수 있을까. 대안학교를 검색했다. 집 근처 대안학교는 없고 돈을 많이 내는 먼 거리의 비인가 대안학교만 인터넷에 나왔다. 예고를 검색했다가 실용음악학원에 다니는 애들이 떠올랐다. 돈은 없는데... 집 근처 특성화고를 검색했다. 한 공간에 수십 명이 들어가는 건 똑같지 않은가. 과를 검색하다가 잠에 들었다. 고등학교 지망 신청서를 써야 하는 시간이 왔다. 학교를 가지 않는다. 검정고시를 준비한다. 더 빨리 대학에 진학할 수도 있다. 부모님을 설득하는 게 우선이었다.


"그래도 다녀보고 결정하는 게 낫지 않아?"

엄마부터 반려당했다.  

"다녀보지도 않고 안 맞는 지 어떻게 알아?"

"...사실 배에서 나는 소리 때문에 한 공간에 있는 게 힘들어요."

"그럼 뭘 해도 힘들지 않겠어? 나중에 일할 때도 신경 쓰일 거고, 그럼 아무것도 할 수 없잖아."

그동안 고민해온 문제를 찔렸다.   

"그럼 다녀봤는데도 안 맞으면 그땐 그만둘 거예요."

엄마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입학시험을 보러 고등학교를 갔다. 집 근처 도보 10분 거리에 1 지망 일반고가 되었다. 친구는 집 앞 고등학교를 1 지망으로 넣었는데 버스 타고 30분 가야 하는 거리의 3 지망이 되었다고 하소연했다. 운이 좋았다. 첫 시작이 좋았다. 나 같이 고민하는 친구가 있다면 상담을 해주고 싶었다. 처음으로 또래상담 동아리도 만들었다. 순탄하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엄마 말을 듣길 잘했다. 중학교랑 다를 수도 있으니까.






배를 홀쭉하게 말았다. 소리가 새어나가다 작아졌다. 50분의 수업시간 동안 복근 운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는 못 산다. 씻을 때 보니까, 배에 선이 간 것도 같고, 뱃소리가 나서 좋은 점을 찾았다. 복근 모양을 만들 수 있는 것! 중식, 석식, 심지어 쉬는 시간까지, 배에서 소리가 최대한 안 나기 위해 먹었다. 빵, 음료수, 젤리, 햄버거를 끊임없이 먹으니 선은 점차 희미해져 갔다. 태초의 한 대륙처럼 통합이 되었다. 장점 취소! 고등학교에 들어오고부터 다시 고민이 시작됐다. 45분 수업보다 5분 더 길어졌다고 이렇게 힘들 줄이야. 오늘 수업도 어찌어찌 지나갔다. 내일은 또 어떻게 버틸까... 학교 쉬었으면 좋겠다, 이불속에서 눈물을 훔쳤다.

  

이전 02화 도서관에서 공부하기 난이도 上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