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속에 꼬르륵이 사는 소녀(7)
막 출발하려던 차여서 속도가 높지 않았다. 차가 서서히 출발했지만, 피할 수는 없었다. 아프다는 느낌보다 넘어졌을 때의 창피함이 앞섰다. 서둘러 횡단보도를 빠져나왔다. 어지럽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왼쪽 눈으로 피가 흘러내려 눈을 뜰 수 없었다. 근데 운전자는 어디 갔지? 차들이 쌩쌩 지나가는 횡단보도를 돌아보았다. 나를 친 승용차는 횡단보도를 빠져나갔고, 주변 사람들, 근처의 버스기사님이 승용차를 불렀다.
"저기요, 멈춰봐요!"
사고를 목격한 어른들이 다가왔다. 힘이 빠져 주저앉았다. 친 걸 봤으니 혹시 목격자가 필요하면 연락을 달라며 번호도 주셨다. 승용차 운전자가 달려왔다. 나만한 아들이 있다, 정말 못 봤다며 미안하다고 나를 껴안았다. 몸이 욱신욱신 거려 안기는 것도 힘들었다.
"애 아파하는 거 몰라요?"
운전자는 황급히 팔을 풀었다. 구급자를 불렀고, 구급대원이 들 것에 나를 눕혔다. 의식이 있는지, 이름, 나이를 묻고 상처부위를 사진으로 찍었다. 근처 종합병원에 간다고 했다. 피가 눈덩이를 덮어 눈을 뜰 수 없었고, 목도리도 피가 배어 축축했고, 바지는 터져있었다. 부모님한테 전화하라며 번호를 물어봤다. 사고가 났으니 병원으로 오라고 말하는데 목소리가 달달 떨렸다. 엄마 목소리를 듣자, 울음이 나올 것 같았다.
병원에 도착해 CT를 찍고, 엑스레이도 찍었다. 다행히 뼈에는 문제가 없었다. 응급실로 돌아가자 엄마, 아빠가 와있었다. 안심도 되고 머쓱하기도 했다. 피를 닦자, 눈썹이 찢어져 있었다. 다행이었다. 충격부위가 눈을 아슬아슬하게 벗어나 있었다. 무릎뼈는 부러지지 않았으나 놀랐을 수도 있으니 정형외과에 다시 오라고 했다. 국소 마취를 하고 성형외과 의사 선생님이 예쁘게 꿰매 준다고 했다. 유치원 다닐 때도 이마가 찢어진 적이 있다. 그때도 예쁘게 꿰매 준다고 했는데 하얀 흉터가 남았다. 새 살은 티가 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화장실을 다녀오니 승용차 운전자와 모르는 아저씨가 서있었다. 옆에는 아들인가? 아까 나만한 아들이 있다고 했는데? 아저씨는 음료수 선물 세트를 주었다.
"아유, 얼굴에 흉터가..."
그 아저씨는 보험사 직원이었다. 아빠랑 나가서 얘기를 하고 왔다. 그 사이 운전자는 자기 번호를 찍어주며 말했다.
"학교 갈 때 불편하면 불러."
'저 학교 안 다녀요.'
속으로만 삼켰다.
통원치료를 하기로 했다. 입원은 싫었다.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아빠 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내내 오늘 하루가 얼떨떨했고, 후회되었다. 횡단보도를 무리해서 건너지 말 걸, 오늘 그냥 나오질 말 걸부터 자퇴하지 말 걸까지 연결됐다. 아빠가 운전석에서 말했다.
"거 내일 퇴원하지."
"뭐 더 치료받을 것도 없는데 집에 오는 게 낫죠."
"하루 입원하면 보험비가 더 나오는 건데... 당신이 더 입원시켰어야지."
오늘 나를 친 운전자보다 아빠가 더 미웠다. 그날 밤 숨죽여 울었다. 아빠는 아픈 나보다 보험비가 더 중요한 것 같아서 서글펐다. 꿰맨 실을 풀러 성형외과로 통원했다. 무릎 때문에 약을 받으러 정형외과도 갔다. 눈이 보라색이 되고, 노란색이 되고, 알록달록 온몸에 멍이 들었다. 서러웠다. 내가 왜 사고까지 당해야 하지? 이게 다 자퇴해서 그런가?
부모님이 일 나가고, 동생이 학교를 가면, 점심 즈음 느지막이 일어나 핸드폰으로 웹툰, 영화, 드라마만 봤다. 매일 누워있었다. 밥도 먹기 귀찮았다. 뱃소리가 마음껏 울어도 듣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이 얼굴로 밖에 나가기도 싫었다. 엄마가 퇴근하면 밤에 산책을 나가는 게 유일한 외출이었다. 주인을 기다리는 개가 된 것 같았다.
영영 이렇게 살아가면 어떡하지, 왜 나한테 이 모든 불행이 온 거지,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모든 일상이 죽었다. 밤낮이 바뀌어, 실질적으로 잠자는 시간은 많은데 피곤했다. 잠을 잘수록 잠이 잠을 불렀다. 거울을 보기 싫었다. 방치한 모습을 목격할 수 없었다. 방조범이라는 걸 인정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