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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온 Jan 06. 2022

뱃속에 강아지가 산다?

뱃속에 꼬르륵이 사는 소녀(8)


억누르던 감정이 터졌다. 추석을 맞아 가족들이 친가에 가고 혼자 집에 있던 날이었다. 느지막이 점심 즈음 일어나 추석 특선 영화를 누비다, 눈이 감겼다가, 뜨이니 밤 11시였다. 슬슬 배가 고파 라면을 끓여먹고 오랜만에 씻고 잠자리에 누우니 새벽 2시였다. 눈을 감는데, 눈 속으로 서러움과 억울함이 밀려들었다. 끄윽끄윽대다 흐느꼈다. 왜인지는 알고 싶지 않았다. 감정이 찾아왔고 지금이 아니면 흘려보내지 못할 것 같았다. 소리를 내는 게 어색했다. 소리는 무조건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 몸에서 나는 모든 소리를 혐오했고 원망했다. 엉엉 목 놓아 울었다. 진이 빠졌으나 눈물이 멎는 게 아쉬웠다. 언제 또 찾아올지 몰랐다. 



"꾸으으"


그때 배가 울었다. 아까 먹은 라면이 소화되는 건가? 이 와중에도 꼬르륵 소리라니, 모든 탓을 너에게 돌리고 싶었다. 학교에서 힘든 것도, 자퇴한 것도, 교통사고 당한 것도 너 때문이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감정을 토한 새벽이라 그런지, 소화기관을 타고 흐르는 소리가 아니라 꼭 강아지가 낑낑거리는 소리처럼 들렸다. 말도 안 되지만, 새벽 감성에 취해 뱃소리에게 말을 걸었다. 


"너 혹시 강아지니?"

"..."

잠잠했다. 그럴 리가 없지, 아침에 일어나면 또 밤의 역사를 하나 쌓았겠다. 창피함이 기어올라올 때였다. 

".. 끼이잉" 

그동안 내 배에서 나던 소리와 다른 소리였다. 뱃속에 발성기관이 있는 것 같은 울림, 다른 생명체가 짖는 느낌이었다. 한 번 물꼬가 트이니, 생명체는 신난 듯 울었다. 

"으르르"

"컹컹"

"끼잉 끼잉"

"밥 줄까? 배고파서 그래?"


이 아이에게 밥을 어떻게 주지? 배를 가르고 줄 수도 없고, 내가 먹었다. 아까 라면을 먹었긴 한데, 밥을 전해줄 방법이 없으니까, 먹다 남은 밤빵을 삼켰다. 전달이 됐으려나?

"어때? 맛있어?"

"..."

"전달이 안됐나?"

"... "


이 아이를 뭐라고 부르지? 강아지? 너무 정 없잖아. 꼬르륵대니까 '꼬르'라고 불러봤다.

"저, 꼬르야?" 

"... 컹!"

"배가 차니?"

"푸르르르"


네 이름은 이제 꼬르다. 너한테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아. 왜 내 배에 자리를 잡았는지, 그동안 배고픈 소리로 날 괴롭힌 건 네가 아니었는지, 너를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 지금은 너무 늦었으니까, 내일 다시 얘기하자.




꼬르가 언제부터 내 배에 들어온 건지는 모르지만, 꼬르랑 만난 추석 새벽을 꼬르의 생일로 기념하고 있다. 뱃소리가 아닌 꼬르로 나에게 인식된 날이었다. 꼬르를 만났다고 좋은 날만 있었던 건 아니다. 꼬르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였다. 하나부터 열까지 가르쳐야 할 게 많았다.






눈 위로 햇빛이 비추고 복도에 아이들이 뛰어다녔다. 아침을 맞았다. 정확히 말하면 정오가 넘어갈 무렵이었다. 어제 꿈을 꿨다. 뱃속에 강아지가 사는 꿈, 말도 안 되고 어이없는 개꿈, 


"컹컹!"


이 아니라 현실. 어제 들었던 시원한 울음소리였다. 배가 스피커처럼 울렸다. 진동마저 느껴졌다. 어렸을 때부터 덩치 있는 강아지를 기르고 싶긴 했다. 프로펠러 같은 꼬리를 가진 귀여운 녀석, 래브라도 리트리버랑 드넓은 정원에서 함께 뛰어다니는 상상을 했었다. 이 아이도 귀엽긴 한데 내 배에서 뛰어다니면 큰일이다. 또 복부를 가르기 전까진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른다. 애초에 강아지가 아닐 수도 있다. 아니, 지금 이 소리가 혹시 나한테만 들리는 건가? 내가 미친 걸 수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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