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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온 Jan 11. 2022

사회화 훈련, 공생을 위하여

뱃속에 꼬르륵이 사는 소녀(10)



꼬르는 사람을 참 좋아했다. 집 밖을 나가면 꼬르는 신나서 들썩였다. 위장이 꼬이는 듯 울렁거렸다. 외출이 어색해 어지러운 건지도 몰랐다. 교통사고 후, 집 밖에 잘 나가지 않았다. 엄마가 퇴근하고 나가던 밤 산책도 끊겼다. 2주가 넘도록 나가지 않기 일쑤였다. 이미 꼬르는 가족들이랑도 친해졌다.  

"간식 줄까? 간식?"

"컹!... 왕왕"

꼬르가 신나서 이리저리 굴렀다. 멀미가 심해졌다. 

"꼬, 꼬르 그만, "

꼬르가 그만이라는 말을 알아듣고 조용해졌다. 

"아유, 잘했어."

동생은 내 입에 육포를 넣어주었다. 

나는 똥 씹은 표정으로 육포를 질겅질겅 씹었다. 

꼬르가 또 달라고 왕왕 짖었다.  

동생은 내 턱을 살살 긁었다.

발로 동생의 정강이를 찼다.

"아아, 누나! 나는 꼬르한테 한 거라니까!"






꼬르가 제일 먼저 알아들은 단어는 '스읍'이었다. 다음은 밥, 그다음은 간식이었다. 요즘은 산책 갈까? 톤만 들어도 방방 뛰어다녔다. 가능성이 보였다. 꼬르를 훈련시킬 수 있겠다, 그것보다 구렁텅이에서 빠져나갈 방법이 있겠다. 


처음엔 엘리베이터만 탔다. 1층을 누르고 내렸다가 다시 10층을 누르길 수십 번, 다음은 집 앞까지 걸어갔다가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길 수신 번, 그리고 집 앞 횡단보도까지 나왔다가 집으로 들어가길 무한 반복했다. 꼬르가 짖으면 집에 들어왔다. 어젯밤 새벽까지 유튜브에서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를 시청한 결과였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경비 아저씨가 서계셨다.

"안녕하세요."

내가 인사를 했다.

"컹컹컹"

꼬르가 따라 인사를 했다. 

인사를 받아주시던 경비 아저씨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탔다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해가 저물어갔다.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 경비 아저씨를 또 마주쳤다. 아저씨는 오던 길로 급하게 되돌아갔다. 들어와서 저녁을 먹는데 엄마가 말했다. 

"우리 아파트에 미친개가 산다는데?"


아무래도 소문이 난 것 같다...


 





어제보다 꼬르는 확연히 덜 짖었다. 횡단보도는 혼자 건너지 못했지만, 공원길로 돌아서 갔다. 오늘은 집에서 10분 거리의 도서관에도 갈 수 있었다. 아직 도서관 열람실은 무리였지만, 매일 꾸준히 한다면 사회에서 같이 살 수 있다. 같이 살고 싶었다. 


몸 상태도 점점 꼬르에게 동화되었다. 삶이 조금 더 피곤해졌다. 이전에도 뱃소리가 안 나게 하려고 밥을 많이 먹었지만, 지금은 모든 종류를 많이 먹었다. 심지어 장판까지 씹었다. 뼈까지 통째로 삼켰다가, 소화가 안돼서 새벽까지 복통에 몸부림친 적도 있고, 뼈를 씹다가 피를 본 적도 있었다. 


잠? 더 못 잤다. 전방 10m의 소리가 귓가에 속삭였다. 처음엔 환청 같다가도 서서히 익숙해졌다. 복도뿐만 아니라 옆집 대화 소리도 바로 옆에서 말하는 것처럼 잘 들렸다. 옆집 빚이 얼마인지, 알고 싶지 않은 사생활을 들어버렸다. 심지어 꼬르가 짖는 소리에도 골이 울렸다. 


악취도 더 잘 맡게 됐다. 가족이 집에 들어오면 밖에서 김치찌개를 먹었는지, 치킨을 먹었는지 식사 메뉴를 알 수 있었다. 담배 냄새가 강하면 PC방에 들렸거나 담배를 피우다 왔다는 것, 왼손잡이의 왼쪽 손가락에서 담배 냄새가 나면 더 확실했다. 손가락에 코를 박지 않고도 사회적 체면을 지키면서 은은한 과거를 맡을 수 있었다. 피비린내도 말이다. 






열아홉이 되었다. 아침 일찍 세수를 했다. 수건에 얼굴을 묻고 물기를 닦았다. 문득 세면대 거울을 보니, 왼쪽 눈썹의 빈 곳이 눈에 뜨였다. 손가락으로 흉터를 살살 매만졌다. 다 나은 부위인데도 욱신거렸다. 왼쪽 눈썹 끝이 두 갈래로 갈라졌다. 눈썹을 실룩거렸다. 꼭 스크래치를 한 것 같았다. 검정고시가 얼마 남지 않았다. 나갈 준비를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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