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속에 꼬르륵이 사는 소녀(11)
1년에 단 두 번, 4월과 8월에 검정고시 시험이 있다. 고등학교를 나온 지 6개월이 지난 시점부터 검정고시 접수가 가능했다. 4월 검정고시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꼬르와 사회화 특훈은 나름 성공적으로 지속되었다. 초반의 꼬르였다면, 카페, 가게, 도서관엔 들어가지도 못했을 것이다. 꼭 외출을 하고 돌아와선 어마어마한 양의 음식으로 보상을 주었다. 3kg가 쪘다. 누우면 음식물이 목구멍을 찔렀다. 일어나면 침을 삼키며 음식물을 밀어내야 했다. 꼬르는 먹어도 먹어도 배고파했고, 밤마다 사과를 찾아댔다. 우리 집 사과 박스가 비면 무섭게 새 박스가 들어왔다.
검정고시 학원을 다녔다. 교통사고 전에 다니던 곳이었다. 이번엔 최대한 버스를 탔다. 국어, 영어, 수학, 한국사, 사회, 과학 총 6과목은 필수로 봐야 했고, 고등학교 1학년 때 배운 내용들이었다. 학교 다닐 때 제일 좋아했던 과목이 윤리였기에 도덕을 선택했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학원에 다녔다. 학원엔 엄마 또래의 이모들도 계셨다. 또래 친구보다 이모가 편했다. 쉬는 시간마다 이모님들의 선생님이 되었다. 떡집을 하신다는 이모는 무지개떡을 가끔 싸오셨다. 나는(꼬르는) 무지개떡을 좋아했다. 나중엔 참 잘 먹는다며 한 박스로 가져오셨다. 꼬르가 순식간에 튀어나와, 한 박스에 들어간 떡을 다 먹었다. 이모님들은 박수를 치셨다. 멋쩍게 입 안에 남은 비닐을 꺼냈다.
합격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평균 60점만 넘으면 되고, 한 과목이라도 40점을 못 넘으면 안 된다. 난이도가 엄청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2월 검정고시를 접수하고, 학원에서 기출문제를 풀었다. 꼬르도 학원에서 얌전하게 있다 왔다.
방심했다. 검정고시 시험을 보러 갔다. 1교시 전부터 주먹밥과 볶음밥을 잔뜩 먹었다. 국어, 수학, 영어, 사회를 풀 때에도 조용했다. 쉬는 시간마다 꼬르가 좋아하는 사과와 무지개떡, 육포를 끊임없이 먹어댔다. 점심으로 싸온 죽 도시락을 먹으니 슬슬 긴장이 풀렸다. 이제 3과목밖에 안 남았다. 5교시는 과학시험이었다. 4번 문제를 풀 때였다.
"끼이잉"
꼬르가 울었다. 손이 덜덜 떨렸다. 주머니에 젤리가 하나 남았다. 주머니에 손을 넣어도 되나? 부정행위로 간주하면 끝난다. 점심 전에 가져온 간식을 거의 다 먹었다. 낭패다.
'꼬르야, 이 시간만 참으면 너 좋아하는 거 줄게, 제발...'
최대한 달랬다. 조금만 버티면 된다.
"으르르릉"
'안돼, 꼬르야 그만...!'
"컹컹!"
꼬르가 짖었다. 화장실을 간다 하고 교실을 나왔다. 종소리를 화장실 칸에서 들었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기어코 인생을 망치는구나. 남은 시험을 치르지 못하고 버스를 탔다. 과락이었다.
꼬르한테 벌을 줬다. 그렇게 좋아하던 산책을 안 나갔다. 어디에도 안 나갔다. 상담도 안 나갔다. 엄마가 퇴근할 무렵 일어나서, 동이 터야 잠을 잤다. 생활 패턴이 무너졌다. 우울감이 극에 달했다. 밥도 안 챙겨 먹었다. 꼬르가 처음엔 왕왕 짖다가, 나중엔 끼잉 끼잉 거렸다. 미운 놈. 뭘 잘했다고 낑낑거려. 잠을 자기 전에 유튜브로 '힘들 때'를 검색했다. 위로하는 영상들을 싹 다 봤다. 감동적인 영상들도 봤다. 댓글에는 저마다의 힘듦이 쓰여있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사람들을 피해 다녀야 할까? 그럼 어떻게 벌어먹고 살지?
'꼬르 벌주기'는 꼬르한테만 타격이 있는 게 아니었다. 누웠다 일어나면 번쩍하고 앞이 안 보였다. 5초를 주춤거리면 서서히 눈에 익었다. 인터넷에 검색하니 '기립성 저혈압'이라고 했다. 어떤 틈도 내어주지 않고 살았다. 그게 안전한 줄 알았다. 그러나 틈은 안전거리였다. 행동 하나하나를 검열했다. 피해받기 싫은 만큼 피해주기 싫은 성격이었다. 꼬르가 힘겨웠다. 꼬르가 짖고, 애교 피우고, 울어도 밥을 안 줬다. 밥을 계속 안 먹으면 나갈 줄 알았다. 내 배에서 나가. 나가줘.
밥을 안 먹기 시작한 지 4일이 지날 무렵, 가족들도 걱정이 됐는지 죽이랑 사과를 사 왔다. 사과를 베어 물었다. 이가 시렸다. 먹고 싶지 않았다. 꼬르가 짖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