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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온 Jan 14. 2022

수능, 대학입시, 자퇴생

뱃속에 꼬르륵이 사는 소녀(13)


공부하기 더운 계절이었다. 그래도 꼬르와 나는 8월 검정고시를 무사히 치렀다. 요즘은 꼬르가 얼린 딸기에 빠져서 냉동 딸기를 플라스틱 통 안에 한가득 담아왔다. 쉬는 시간마다 딸기를 집어먹었다. 점심시간이 지난 5교시 과학 시간이었다. 손바닥이 젖었다. 남방 소매에 닦았다. 몇 달 전 검정고시가 떠올랐다. 꼬르는 잠을 자는지 얌전했고, 나는 5교시가 끝날 때까지 온몸이 곤두서 있었다. 무사히 7교시까지 마쳤다. 꼬르와 함께 이룬 결실이었다. 꼬르가 눈앞에 있다면 껴안고 코에 뽀뽀를 해주고 싶었다. 집으로 가는 내내 배를 쓰다듬었다. 꼬르야, 잘했어, 우리 이제 고졸이다! 기뻐할 새도 잠시, 수능 접수가 코앞이었다. 




<검정 고졸이 수능 원서 접수하는 법> 

1번, 관할 교육청을 방문한다. 

2번, 신분증을 지참한다. 응시원서와 검정고시 합격 증명서, 증명사진 2매, 수수료를 제출한다. 난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의 고등학교로 배정받았다. 3번, 예비소집일 날 배정받은 고등학교에 가서 수험표를 받으면 된다.  




하루 종일 전국의 대학입시 홈페이지를 들락거렸다. 일주일 내내 전국의 대학교를 검색했다. 

"크르르... 컹컹!" 

꼬르가 나가서 놀자고 칭얼거렸다.

냉동고에서 딸기를 꺼내 먹었다.

"꼬르야, 이것만 보고 산책 가자."

꼬르는 신나서 방방 거렸다. 어지러운 두근거림이 어느새 익었다. 



전국에 4년제, 전문대가 이렇게나 많다니, 손으로 일일이 정리했다. 가고 싶은 학과가 있는지, 커리큘럼을 찾아보았다. 마지막으로 내가 넣을 수 있는 전형을 찾아봤다. 전문대는 검정고시 성적을 학생부로 환산해주는 곳이 많았다. 그러나 4년제 대학교 중에는 검정 고졸 수시를 많이 뽑지 않았다. 대부분 정시로 가는 방법밖에 없었다. 수능(+논술) 혹은 적성시험이었다. 



심리학과를 지원하고 싶었다. 그동안 상담에 관심이 많았고, 범죄심리가 흥미로웠다.('그것이 알고 싶다'의 영향이 크다.) 그러나 4년제에도 많지 않고, 전문대에는 '심리' 앞에 다양한 이름이 붙었다. 상담 선생님한테 듣기로는 심리학으로 전공을 살리려면 최소 석사학위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 전문대를 나와도 4년제로 편입해야 가능하다. 패기롭게 전부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교만 지원했다. 그것도 한 학교에 2개의 전형으로, 2곳을 쓰고, 하나는 혹시 몰라 자유전공, 마지막으로 취업에 대한 걱정이 들어 간호학과까지 6개를 채웠다. 상향, 하향에 대한 기준이 아예 없었다. 가고 싶은 곳이 아니면 대학교를 갈 이유가 없었다. 앞으로 뭐해 먹고살지를 걱정하던 열두 살이 떠올랐다. 일찍부터 할 필요도 없는 고민이었다. 자본주의 현대사회에서 내 쓸모는 늘 시험을 당하고 있었다. 





자기소개서를 작성해야 했다. 또 일주일 넘게 컴퓨터 앞에 앉아있었다. 

"끼이잉 끼잉"

꼬르가 또 나가자고 칭얼거렸다. 

사과를 베어 물었다.

"커르르, 컹!"

대충 알 수 있다. 꼬르가 다른 걸 먹고 싶다는 걸,

육포를 씹었다. 비렸다. 꼬르는 비린 걸 좋아하는 것 같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만든 또래상담 동아리 활동과 인터넷으로 민간 상담 자격증 수업을 들었던 것, 또 청소년상담지원센터에서 받고 있는 상담 얘기를 풀었다. 저도 힘들 때 이렇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1500자 분량을 채우고, 맞춤법 검사기를 돌리고, 지원하기를 눌렀다. 한 학교 당 접수비가 6만 원은 기본이었다. 돈보다 중요한 건 하나라도 합격하지 못했을 때의 미래였다. 내게 남은 일은 기다리는 일뿐이었다.



심리학과로 지원한 대학교에 왔다. 증빙서류를 등기로 부치거나 직접 방문해서 전달해야 했다. 엄마와 같이 서울 구경하는 기분이었다. 여기가 대학가구나. 학교 시설이 넓고 고루했다. 행정관부터 찾았다. 거기엔 서류가 한가득 쌓여있었다. 서류를 받는 분이 내 서류를 꼼꼼히 확인했다. 검정고시 성적표를 보더니 물었다.

"해외 학교 재학증명서는 없나요?"

"네, 없는데요."


분위기가 싸해졌다. 돌아 나오며 느꼈다. 이 전형은 해외에서 학교를 다니다 한국에 들어온 사람을 위한 전형이구나. 증빙서류 예시로 논문 참여가 쓰여 있었다. 아, 접수료만 아깝게 됐다. 점심으로 대학가에서 바질 올리브 파스타를 먹었다. 처음 바질을 먹었다. 오묘한 향과 따뜻한 파스타 면발이 맛있었다. 그 대학을 떠올리면 바질 올리브 파스타가 떠오른다.    




심리학과를 지원했던 대학들이 광속으로 탈락하는 가운데, 마음이 그렇게 처참하진 않았다. 전문대를 넣을 기회가 있었다. 다음 날 마지막 한 곳에서 1차 합격이 됐다. 혹시 몰라 넣은 자유전공학과였다. 면접이 일주일 앞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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