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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온 Jan 26. 2022

대학 면접을 보다

뱃속에 꼬르륵이 사는 소녀(14)


피부가 뒤집어졌다. 일어나서 바로 피부과에 갔다. 온 얼굴이 붉은 뾰루지로 뒤덮였다. 알레르기라고 했다. 특정한 음식이나 접촉에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난 게 아니라 면역력이 떨어지거나 스트레스를 받아서 난 거라고 했다. 약을 처방받고 나왔다. 당장 내일이 면접이었다. 




버스에서 내렸다. 바로 캠퍼스 앞이었다. 안내해주는 분이 인문 면접이 있는 아담한 건물로 들어가라고 했다. 계단을 올라, 한 강의실에 들어갔다. 일찍 도착한 사람들이 많았다. 빈자리에 앉아, 수험표를 펼쳤다. 다른 사람들은 자기소개서를 읽고 있었다. 나는 공책을 펼쳐 오늘 면접 예상 질문 답변을 적었다. 무조건 3가지 경험은 말해야지, 마음먹었다. 



면접 진행관이 들어와 앞 강단에 섰다. 종이를 나눠주었다. 면접 전에 간단히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라고 했다. 수험자는 자소서를 작성한 종이를 들고 면접을 보러 들어간다. 다음 수험자는 기다리는 동안 면접 문제를 읽는다. 1시간 정도 대기하니, 내 수험번호가 불렸다. 면접 강의실에서 한 사람이 나오고, 의자에 앉아 기다리던 사람이 들어갔다. 의자에 앉았다. 면접 진행관이 종이를 주었다.      



[인공지능(AI) 기술의 발달로 향후 20년 이내에 현 직업의 47%가 사라진다고 한다. 미래에 사라질 직업으로 회계사, 판사, 운전기사, 계산원 등이 상위권에 들었다. 미래에 사라지는 직업의 이유를 서술하시오.]



다음 면접자는 나였고, 시간도 촉박하고, 답변도 생각해야 한다. 글씨가 자꾸 눈 밖으로 튀었다. 크게 숨을 들이켰다. 간신히 글자들을 모아 읽었다. 판사가 눈에 들어왔다. 소위 '사'자 직업 아닌가. AI가 판결을 내려준다. 수많은 법률과 판례를 빅데이터 자료로 활용한다. 방대한 자료를 기억할 수 있다. 논란이 된 판결 기사 댓글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국민들이 판사의 판결을 믿지 못하는 상황에서 AI가 보다 공정하리라 기대하는 심리가 있다. 판사라는 직업은 단순 반복 업무와 또 다른 차이가 있다. 신뢰도가 하락한 경우, 대체할 수 있다. 그리고 대체되지 못하는 직업으로 내가 하고 싶은 직업을 이야기해야 한다. 생각이 둥둥 떠다녔다. 그때 문이 열렸다. 가슴이 요동쳤다.

      

"안녕하십니까. 지원자 소녀입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총 3명의 면접관이 앉아있었다. 연기를 시작했다. 자신감이 가득하고, 긍정적이며, 학교에 애정이 충만한 지원자로 보여야 했다. 얼굴이 새빨간 건 잊어야 한다. 어필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이었다.  

"면접 답변부터 들어볼까요?"


"네. 인공지능 기술의 발달로 인해 미래에 사라질 직업은 반복되는 업무나 동작을 프로그램화하면 됩니다. 그러나 판사의 경우, 사람들의 기대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직업에 대한 신뢰가 낮은 경우엔 AI가 오히려 공정하다는 사람들의 심리가 작용합니다. 언론에 노출되는 판결은 이해할 수 없거나 불합리하다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어떤 기사에서 500억 넘게 횡령한 재벌은 3년 집행 유예, 라면을 훔친 노인은 3년 실형을 처한다는 판결을 비교한 적도 있습니다. 기사에 달린 댓글들만 보더라도 판사에 대한 여론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이 하는 판결이기에 완벽할 수 없습니다. 전관예우, 악습, 학연, 지연, 혈연 등의 조건들은 인간의 판단에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AI는 공법, 사법, 특별법 법률들과 판례를 빅데이터화할 수 있고, 확률과 통계에 의해 판단을 내리게 설정할 수 있습니다." 


두 면접관의 반응이 좋다. 표정도 온화하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한다. 다른 한 면접관이 물었다.

"그렇다면 AI 판사의 문제점은 없을까요?"

꼬리 질문이었다. 생각할 시간이 없다. 입부터 열었다.

"인간에 의해 편향된 자료만을 수집할 수 있다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판례도 법관이 결정한 판결이므로, 전원합의체로 기존의 판결을 뒤집는 새로운 판례가 나오지 않는 이상, 문제가 있는 판례를 배제하기 어렵습니다."

질문한 면접관의 표정이 의문스러웠다. 내 답변이 부족했나? 입천장이 건조했다. 

"꾸르르르"


꼬르였다. 면접 대기 시간 동안 아무것도 못 먹었다. 슬슬 배고플 시간이었다. 꼬르가 여기서 짖기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손바닥이 축축했다.

"저런, 면접 본다고 밥을 못 먹었나 보네요."

오히려 면접 분위기가 풀어졌다. 면접은 막바지였다. 

"하하, 긴장했습니다." 

"소녀씨가 자유전공학과에 진학하고 싶은 이유는 뭔가요?" 

드디어 예상 질문이 나왔다. 심호흡을 하고 세 명의 면접관을 차례로 쳐다보았다. 대망의 마지막 연기였다.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기존의 판례를 뒤집는 것도 새로운 판결입니다. 기존의 것을 부수고 새로운 가치를 제시하는 건 사람만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귀 대학의 상담학과와 법학과, 신문방송학과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자유전공학과를 선택한 이유도 진학하고 싶은 분야가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예전엔 한 가지에 깊게 관심을 가지지 못하는 게 단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제 특성을 살려 상담과 법을 연결 짓는 등 새로운 직업을 탄생시킬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AI 기술의 경제성은 이용하되, 대체될 수 없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수능을 봤다. 쉬는 시간에 먹으려고 무지개떡 한 박스를 들고 갔다. 고등학교 입구로 들어가는데, 경비 아저씨가 나를 붙잡았다. 

"이건 제(꼬르)가 혼자 다 먹을 떡입니다."

"앗, 간식 나눠주는 학생인 줄 알고... 수능 잘 보세요!"


얼떨결에 응원을 받고 교실에 들어왔다. 수능 보는 내내 꼬르를 달랬다. 긴 보온 통 2개 챙겨서 갔다. 유부초밥으로 가득 채웠다. 소풍에 온 것처럼 점심을 먹었다. 지문을 채 못 읽었는데 꼬르가 찡찡거렸다. 첫 번째 검정고시처럼 우울하진 않았다. 수능 2주 전의 일 때문이었다.

[수험번호]

[확인]


수험번호를 채웠다. 마음을 비웠다고 생각했는데 배가 살살 아팠다. 확인을 누르고 재빨리 오른손으로 화면을 가렸다. 


오른손을 천천히 내렸다. 빨간 글씨가 없다...! 

[축하합니다. 합격입니다.]


혹시 몰라 넣은 자유전공학과에 합격했다. 그날 밤 3시간 산책을 나갔다. 집에 있을수록 발이 무거웠다. 발이 무거워서 나갈 수 없었다. 발이 무거워서 일어날 수 없었다. 거미집에 잡힌 벌레처럼 달라붙어 움직일 수 없었다. 내 발로 들어간 거미집이었다. 도망친 나를 인정할 수 없었다. 자퇴라는 선택이 잘못된 선택이라고 확인받기 싫었다. 사람들이 무서워서 도망쳤다. 살고 싶어서 도망쳤다. 대학은 내 선택이 맞았다는 증거였다. 내가 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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