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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온 Feb 03. 2022

나의 작은 귀염둥이, 꼬르

뱃속에 꼬르륵이 사는 소녀(完)



"선생님, 저 자퇴하고 싶어요."

  



고등학교를 안 다니고 집에서 1년 10개월을 보냈다. 오랜만에 가는 학교가 힘겨웠다. 다행히 수업은 흥미로웠다. 재밌어 보이는 제목의 교양과목을 선택해서 들었다. 악명 높은 수강신청을 듣고 PC방에서 했는데도 가장 듣고 싶은 심리학 과목은 못 들었다. 수요일은 3시간 수업을 연속으로 3개 들어야 했지만, 공강도 2일이나 만들었다. 분명히 고등학교 생활보다 나은 구석들이었다. 그런데도 몹시 힘들었다. 나도 내가 왜 힘든지 모르겠다. 새벽 3시까지 핸드폰을 하다 발라드를 들으며 새벽 감성에 젖었다. 눈물 흘리는 걸 가족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끄윽 대며 참았다. 다음 날이 공강이면 머리가 어지러워도 참고 동트는 걸 봐야 잠들었다. 상담이 필요했다. 물리적인 거리가 있는 전문상담 말이다. 학생상담센터를 찾았다. 예약이 밀려서 초기 상담을 받고 몇 달을 대기했다. 1학년 여름방학에 상담을 받을 수 있었다.

"생활 패턴의 변화가 있었기 때문에 적응 단계라고 보면 돼요."

"제가 또 자퇴할까 봐 무서워요."     

"집에 있다가 오랜만에 나왔는데 힘든 건 당연하죠."


자퇴하면 무엇이든 포기하는 사람으로 낙인찍힐까 봐 두려웠다. 사람이 무섭고, 사람과의 관계가 피곤하고, 소모적이었다. 일부러 동아리 활동을 안 하고 학교를 정을 안 붙였다. 학교를 싫어할 틈을 주지 않도록 했다. 아주 천천히 나는 회복되어갔다. 






침을 혀 아래에 뭉쳐두었다. 어깨는 거북목과 함께 앞으로 나와 상체가 솟아있었다. 명치에서 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꼬르, 

"꼬르야!" 


말소리가 튀어나왔다.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진 일이었다. 배를 홀쭉하게 접었다. 꼬르가 나오려다 바람 빠지듯 줄어들었다. 



1시간 30분 수업이 끝났다. 고등학생 때보다 수업이 길었다. 성인이 된 자유로운 캠퍼스 라이프라는 게 이런 건가? 오후 6시에 3시간 수업이 하나 남았다. 4시간 파워 공강 동안 할 게 많다. 일단 학교 앞 식당에서 불고기 덮밥을 먹고(점심때랑 겹치면 인기 많아서 오히려 못 먹는다), 단골 코인 노래방에서 노래 부르고, 학교 도서관에서 DVD 빌려보고, 수업 직전 불고기 덮밥, 집에서 싸온 사과 2개, 편의점에서 육포를 사 먹으면 수업시간에 딱 맞았다.






"우루룽"

사람들은 흔히들 착각한다. 소화가 안돼서 부글거리는 소리라고, 그런데 이건 화났을 때, 마음에 안 들어 짜증 부릴 때 꼬르가 내는 소리다. 꼬르는 말귀를 알아듣는 게 아니라 기분을 구분할 줄 안다. 간식은 찰떡같이 알아듣는다. 화난 목소리로 간식이라고 말해도 좋아한다. 빨리 달라고 난리를 친다. 

"꼬르 너, 자꾸 사람들 앞에서 낑낑댈래?"


라고 조곤조곤 이 악물고 말하면 못 알아듣는다. 뉘앙스로 알아챈다. 만약 꼬르가 나를 속이고자 하면 나도 알아들을 수 없을 것이다. 요즘은 배가 안 고파도 간식을 달라고 칭얼대는 연기가 늘었다. 나도 다른 사람을 냄새로 알아차리게 됐다. 고개를 안 들어도 내 뒷자리에 앉는 사람이 온 걸 알 수 있었고, 비릿한 냄새, 이상한 냄새는 위험을 감지하듯 잘 맡았다. 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가 늘었다. 



수업시간에 물을 들이켤 때도 목 근육을 느슨히 풀지 않았다. 빨대가 물을 쭉 빨아들이고 남은 찌꺼기 소리가 목에서 들렸다. 배에서 나는 소리를 다룰 수 있게 되었더니 다른 부위의 소리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그 자연스러운 소리가 부끄러운 내가 이상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나를 탓하려다가 관두었다. 그냥 나는 내 몸에서 나는 소리를 남이 듣는 걸 부끄러워한다. 꼬르가 있어도, 늘 행복하지 않고 늘 힘들지도 않았다. 몸은 꼬르에게도 적응했다. 꼬르가 없었을 때의 나와 꼬르가 생긴 뒤의 나는 다시 같아졌다. 같은 출발선이었다. 그래, 이제는 나의 작은 귀염둥이 꼬르가 없으면 허전하다. 기본값은 꼬르랑 있는 거니까.  


너의 뱃속에도 꼬르가 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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