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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온 Jan 07. 2022

뱃속에 거지가 들었다

뱃속에 꼬르륵이 사는 소녀(9)


가족은 친가를 들렀다. 차례를 지내고, 산소에 들렸다가, 할머니 댁에서 커피 한 잔 마시고 집으로 돌아왔다. 차로 3시간 달려서 오후 5시 언저리에 도착했다. 그동안 나는 무얼 했느냐... 하면,



"꼬르야. 안녕?"

"컹컹컹!"

"너 언제부터 거기서 살기 시작했니?"

"프르르"

"저기, 꼬르야? 우리 한 번 훈련해볼까?"

"카아악 칵..."

말이 안 통한다. 서로 할 말만 하는 불통의 시대, 나는 몸주인, 꼬르는 무단점거견(?),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배부르다. 맛도 없다. 몸으로 다양한 실험을 했고 알아낸 사실이 있다. 일단 꼬르와 나는 위장을 공유하고 있는 듯하다. 내가 먹으면 꼬르에게도 포만감이 전해지나 보다. 다만, 재촉하거나 낑낑거리지 않는 수준까지 먹는 게 힘들다... 단 맛을 좋아했다. 사과에 환장했다. 집에 있던 사과를 먹어봤다. 난 사과를 씹으면 이가 시려서 사과를 좋아하지 않는다. 근데 이 녀석이 사과의 단 맛을 보더니 계속 달라고 졸랐다. 씨까지 통째로 3개는 먹었다. 내 의지가 아니었다. 꼬르의 강력한 식욕이 사과를 먹게 했다. 또 청각, 후각이 발달한 느낌에 더 예민해졌다. 복도뿐만 아니라 엘리베이터 타는 소리도 들렸다. 다른 집 배달 냄새가 1층부터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배변 기관을 함께 공유하니까 다행히 대참사가 일어나는 일은 없었다. 몸을 뚫고 나오거나 뛰어다니지 못한다. 울렁거리는 느낌은 들어서 속이 안 좋거나 멀미를 한다. 꼬르는 신체가 없는지도 모른다. 꼬르가 실제로 존재하느냐, 이건 가족이 오면 확인될 문제다. 환청이 들리는 걸 수도 있다. 가족이 돌아오기만을 간절히 기다렸다.






"제 배에 뭐가 살고 있는 것 같아요."

"...?"

동생이 날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다. 뭐, 인마.

"꼬르야, 배 안 고파?" 

배에다 대고 말을 걸자, 얘가 드디어 미쳤냐 눈빛인데, 아무도 말로 꺼내진 않았다. 교통사고 후, 가족들은 나에게 친절하게 대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

배에선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꼬르, 자니? 

부모님은 다시 짐 정리를 했다. 엄마는 친가에서 가져온 반찬거리를 냉장고에 넣고, 아빠는 쌀포대를 베란다에 옮겼다. 

"진짜예요! 나중에 소리 나면 들려드릴게요."

다음에 꼬르 나오면 녹화를 해야지, 뼈저리게 느끼는 증거주의였다. 

"누나, 내 배에도 뭐가 살고 있어."

"뭔데?"

"거지"


가족들은 노력하고 있었다. 






뱃속에 거지가 들었다.

누군가도 나처럼 꼬르가 찾아온 적이 있었구나. 비유가 아니라 진짜였을 수도 있다. 사과 귀신 꼬르를 위해, 연휴 내내 사과를 먹었다. 엄마가 의아해했다. 

"원래 사과 안 좋아하지 않았어?"

"네, 그럼요. 먹기 싫어요..."

그리고 맛있게 통째로 사과를 잡아먹었다. 

엄마가 놀란 눈으로 보았다. 쓴웃음을 지었다. 



 



추석 연휴 마지막 날, 저녁으로 치킨을 시켜먹었다. 1층에 치킨 배달이 도착한 시점부터 벌써 드릉드릉 시동을 걸었다. 닭다리를 뜯자, 꼬르의 의지가 튀어나왔다. 닭다리를 뼈까지 삼켜버렸다. 가족들이 먹다 말고, 놀란 눈으로 바라봤다. 혼자 치킨 두 마리를 다 먹어버렸다. 치킨 박스엔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꼬르는 계속 짖어댔다.

"크엉컹"

더 없냐는 물음표의 울음이었다. 가족의 반응을 보니 나만 들은 건 아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꼬르는 가상의 캐릭터가 아니었다. 손을 닦으며 가족들에게 말했다. 

"제 말 맞죠?"

가족들은 라면을 끓여먹었다. 나도 옆에서 라면 봉지를 뜯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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