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라리라도 애들은 다 착해

풀메이크업에 짤치라도 예의는 바르다니까

by 소소라미

만화카페는 자연스럽게 동네 중고등학생의 아지트가 되었다. 아이들은 주로 스케줄과 스케줄 사이에 잠시 머물다 가거나, 보드게임을 하러 온다. 일반 카페보다 좀 더 프라이빗한 공간 '소굴방'이 제공되니, 맘 편히 수다떨면서 발 뻗고 쉬다 갈 수 있는 곳인 것 같다.


다양한 캐릭터의 학생 손님 중에는 일명 날라리 비중도 꽤 된다. 화장품 냄새가 마스크를 뚫고 나와 코를 찌르는 풀메이크업에 내가 느그 엄마라면 등짝 스매싱 한번 시원하게 날릴만한 길이의 치마를 입고, "나 좀 노는 아이로소이다"라는 몸짓과 표정을 하고 카운터로 다가온다.


"저기 아이폰 충전기 있나요?"

어랏? 생각보다 예의 바르다. 충전기를 빌려주자 세상 해맑은 목소리로 인사한다.

"감사합니다!"

(착한 아이로 보이니, 제발 학교에서 일진 놀이는 하지 말아라. 친구 괴롭히지도 말고.)


그 에너지, 이젠 돈으로도 못 사는 거죠?


평일인데 휴일이라 주말처럼 바빴던 추석 이후 사장(남편)과 알바(나) 사이의 평일과 주말 경계는 허물어졌다. 주변 학교들의 시험 기간이 끝나는 날, 12시부터 몰려들 학생 손님들을 대비해 일찍 퇴근하고 곧장 매장으로 왔다. 나의 작고 소중한 연차를 사용해 가며.


딸랑딸랑 문을 여는 소리와 함께 왁자지껄한 공기가 들어온다. 까르르 까르르 이용 시간 등록 하나 하는 데도 쉴 새 없이 웃어댄다.

"보드 게임하고 나서 라면도 먹고 가자."

"그래그래 너무 좋다."


아이들의 행복에 동화되어 나도 모르게 물어본다.

"시험 끝났어요?"

"네 오늘 끝났어요! 너무 좋아요! 오늘 하루 종일 놀 거예요."


"귀여워." 나도 모르게 내뱉는다.


남학생 세 이 들어온다.

"시간은 한 시간씩, 음료는 아이스티 통일이요"

한 친구가 알아서(?) 메뉴를 주문해버린다.

"야, 니 맘대로 왜 다 정해." 다른 한 명이 말한다.

"야야 시끄러워 들어가 들어가." 또 다른 한 명이 중재하며 제일 큰 방으로 들어간다.


아이들만 보면 왜 그렇게 웃음이 나고 즐거운지, 회사에서 곧장 와서 짜증이 날 법도 한데 오히려 뭔가 채워지는 느낌이 든다. 나도 저런 밝은 에너지를 가졌던 시절이 있는데, 이제는 에너지를 갖기 위해 애를 써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 비타민을 꼬박꼬박 챙겨 먹어야 하고 며칠 안 먹으면 힘이 달리는 느낌마저 드니 서글퍼졌다.


안락하고 평화로운 만화카페 분위기를 꿈꿨던 나는 오픈 초기, 예상보다 많은 학생 손님들로 인해 정신 없는 분위기로 정착되는 것 같아 실망감이 들기도 했었다. 학생 손님들은 아무래도 좀 시끌시끌하고, 현금 계산도 많으며 각자 계산을 선호하기 때문에 번거로운 측면이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이 든 자리에서 어른들이 잃어버린 생기를, 난 자리에서 어른들이 잊어버린 순수를 느끼게 되면서 이런 하찮은 어른에게 에너지를 주는 학생 손님들을 좋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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