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책상 앞에만 앉으면 보람도 재미도 없는 일을 하느라 인생을 허비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오던 참에, 팀장과의 갈등이 깊어지면서 숨 막히는 사무실 공기마저 진저리가 나기 시작했다.
결국 중간 평가 시즌에 곪아온 것이 터져버렸다. 물론 내가 먼저 대들지는 않았다. 그의 말이 나를 건드린 것뿐.
"열심히 했는데 딱히 한 일이 없네요."
팀장으로서의 실망스러운 면모는 차치하더라도, 인간적으로 치밀어 오는 분노까지 참는 것은 힘들었다. 그가 팀원이었을 당시 팽개치고 간 일을 뒤치다꺼리하느라 야근에 주말 근무까지 불사했던 나에게, 팀장이 된 후에는 일을 물려받아 쓰레기와 똥을 치워준 나에게 할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날 밤, 남편에게 회사를 그만두겠노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당장 사직서를 낼 수는 없었다.
아직은 월급의 부재가 불안했다. 20년 가까이 당연하게 생각했던 소속이 없어지는 상황도 낯설었다. 주위에서 나약한 사람이라고 생각할까 봐 부담스러웠다.
무엇보다 가장 큰 걸림돌은 나 자신이었다. 속상하고 서러웠지만 "퇴사하고 뭐할 건데?"라는 자문으로 이어지자, 할 말이 없었다. 나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유일한 확신은 "감정 기반의 결정"은 (반드시) 후회를 낳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감정 소용돌이 속에서 섣불리 한 행동의 결말은 언제나 그랬으니까.
설령 무엇을 할지 정해졌다 해도 끝을 내주겠다는 독기와 오기만 안고 출발한다면, 고비가 왔을 때 또다시 도망가거나 숨을 생각부터 하게 될지도 몰랐다. 눈물이 핑 돌만큼 서러운 날들이었지만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는 말을 상기해야 할 이유였다. 도망쳐봤자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길이기에 타인의 질서와 법칙을 지키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내가 소외되는 삶을 수용하고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곳은 낙원 일리가 없었다. 그땐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떠올려보니 답이 나왔다.
나의길을 만들고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설 때까지 퇴사를 보류하자.
퇴사 자체는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 삶에 대한 각오 또는 계획이 없다거나 실천력을 갖추지 못했다면 길 가운데에 멈춰 설 수도 있는 것이다. 내 경우 퇴사의 목적은 이직이 아닌 쉼이었지만, 휴식을 위해 나를 보살피는 시간을 갖는 것 역시 방향이 없다면 후회의 씨앗이 될 수 있었다.
휴식의 과정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이토록 멋진 휴식]에서 인용한 "하나의 행위에 대한 최상의 쉼은 다른 행위다"라는 문장을 떠올렸다. 여유 시간을 왕성하게 활용하는 것이야 말로 자유 의지를 발휘할 수 있는 가슴 뛰는 시간들이겠구나! 여기까지 생각이 닿으니 퇴사는 환경이 변하는 지점은 될 수 있으나 이 자체가 내 인생을 바꿔주지는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삶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서는 나부터 변화해야 했다. 그 시작은 퇴사 이후가 아닌, 퇴사를 준비하는 지금부터였다.
조금씩 일상을 바꿔보자.
넋두리를 늘어놓을 시간에 뭐라도 해보는 거야.
물리적, 감정적으로 "시간을 도둑맞은 날"이라고 느낄 때면 퇴근 후에 단 10분이라도 사부작 거리를 찾기 시작했다. 독서, 글쓰기, 요가, 자전거, 그림, 공부(역사, 외국어) 등 흥미 느끼는 것들은 뭐라도 좋았다. 순간에 몰입하는 활동들은 머릿속 상념을 몰아내기에 충분했고, 회사 따위는 하얗게 지워버렸다.
물론 퇴사를 결심하고도 중간중간 마음이 약해지는 순간들은 있었다. 가끔은 일이 할만하다고 느껴지기도 했고, 동료와 수다 떠는 시간이 즐거웠으며, 성과급을 받을 때면 이 맛에 직장 생활하는 거라는 만족감도 생겼다. 하지만 이 행복들은 듬성듬성 가뭄에 콩나 듯 발견되었기에 그 빈도수를 높이기 위해서는 이 녀석을 진득하게 찾아 나서야 했다. 그러나 바삐 돌아가는 시간표 속에서 행복 찾아 삼만리를 떠날 만큼 느긋하게 여유를 부릴 틈은 없었다. 정신없이 휘몰아치다 보면 어느새 어둑어둑해졌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다.
"도둑맞은 날"이 쌓여갈수록, 재미 활동에 쏟아붓는 시간은 늘어갔다.통제할 수 있는 여건과 환경이라면 기를 쓰고 시간을 비워 재미로 채웠다. 1일 1 포스팅을 도중에 그만두고, 퍼스널 브랜딩에 기웃대다가 지레 포기하는 등 분명 시행착오는 겪었지만 조금씩 방향을 수정해하며 하루에 하나씩 점을 찍어 나갔다.
다양한 점들이 기존의 경험 및 성향과 조화를 이루며 계속 연결되고 있었다.
매일의 습관이 쌓이면서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졌고, 삶을 결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 어떤 유형의 일을 하고 싶은지 조금씩 가닥이 잡혀갔다. 누가 시킨 것도,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니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 잘할 수 있는 것들을 직접 해보면서 만들어지는 결과였다. 하루에 하나라도 점을 찍어가고 있는 내가 좋아졌다.
어떤 형태로 뻗어나가 어디에 도달하게 될지는 여전히 알 수 없으나, 스티브 잡스의 연설 내용대로 "점들은 미래에 어떤 식으로든 연결될 것"이라는 믿음을 갖기로 했다. 꾸준함과 능동적인 태도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고, 심지어 무엇이 되지 않아도 괜찮다고 여기게 되었다. 나로 산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로운 삶일 수 있었다. 삶을 바라보는 가치관이 변한 것이다.
그 와중에도 회사는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악화되는 쪽에 가까웠다. 일로서 보람과 재미를 느끼는 빈도수는 현저히 떨어졌다. 더 이상 퇴사 결심을 번복하지 않았다. 남은 건 시기를 결정하는 것뿐이었다. 내가 싫어지는 유일한 시간은, 회사에서 좋아하지도 않는 일에 아등바등 대고 있는 시간이란 걸 깨달았다. 회사에 대한 미련을 거두자 월급과 소속의 가치는 우선순위에서 내려왔다. 사직서를 제출했다. 퇴사 결심일로부터 약 1년 후였다.
40대의 퇴사는 하차, 포기, 도태, 낙오, 실패라는 표현으로 평가될 수도 있겠지만, 나답게 살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해왔기에 더 이상 부끄럽지 않다. 오히려 은퇴 후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자기 비하에 빠지거나 우울감에 젖는 중장년층의 이야기를 비켜갈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한 마음이다.
나에게 맞는 삶의 방향은 돈도 명예도 아닌 "내면의 진화, 외면의 간소화" 였으며, 그 동력은 균형과 재미였다. 퇴사는 이 길을 찾는 점들을 연결해주었고, 다채로운 삶을 향한 연결점이 되고 있다.
1년 전에 비해 확실히 단단해졌음을 느낀다.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삶을 추구하는지 알아보는 과정을 충분히 즐겼기에 그때보다 두렵지 않다. 나 자신을 이렇게나 좋아하게 된 건 살면서 처음이다. 나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면서는 외부에 의존하거나 요행을 바라지 않게 되었다. 간혹 실패하더라도 "망쳤지만 망하진 않았다"며 의연하게 일어서고 있다. 기껏해야 수 많은 점들 중 하나가 잘못된 것 뿐이니까.
앞으로도 계속 점을 찍어 나가려 한다. 그 과정을 오롯이 즐긴 오늘, 또 한 번의 행복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