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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라미 Feb 27. 2024

평생 40kg대 초반, 더 이상 자랑이 아닌 이유

나의 두 번째 백수 라이프 - 밥부터 잘 챙겨 먹자

결코 자랑글이 아님을 미리 말해둔다.


150대 중반의 작은 키에 유난히 좁은 어깨와 마른 몸으로 40여 년을 살았다.


평생 40kg대 초반의 몸무게를 유지하고 산다는 건 부러움을 살 수도 있는 부분이다. 그런데 말이다. 마흔이 넘도록 이 몸무게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에는 겪어본 자만이 알 수 있는 서러움이 깃들어 있다.


5분 거리의 마트에 가서 액상식품 몇 개에 고기 한근만 사들고 와도 어깨가 빠질 것 같아 도중에 몇 번씩 짐을 고쳐들거나 쉬어야 한다. 내 그럴 줄 알고 장바구니를 두 개 들고 가서 균형 있게 담아 왔는데도 말이다. 이 와중에 과일 가게에 들르는 건 사치다. 여기에 사과 한 봉지만 더해도 땅으로 꺼져버릴 것 같으니까.


어깨가 아파 정형외과에 갔더니 물리치료사 분이 중학생보다 몸이 작다며 안쓰럽다는 표정을 짓는다. 뭐 그렇다 해도 타격감은 별로 없다. 그런 말은 하도 많이 들어서 애 둘 낳고 잘살고 있다는 말로 웃으며 넘길 만큼의 여유는 붙었다.


하지만, 나이 들어도 작고 왜소한 이미지는 신경질적이고 예민한 사람일 것이라는 선입견을 줄 수 있다. 아니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런 사람치고 인간미는 있는 편인데... 생각이 여기 가지 닿으니 조금은 억울해진다. 애 낳고 키우다 보면, 그리고 나이 먹다 보면 저절로 살도 찐다는데 도대체 나는 어쩌다 여기까지 온 걸까.



30대엔 아이들의 에너지에 맞춰 몸을 쓰느라 살찔 틈이 없었다. 마른 몸에 콤플렉스를 느끼거나 크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엄마로서 응당 힘을 써야 할 때 힘을 못 써서 난감한 상황들이 있었다. 가끔 유모차를 끌고 언덕길에 오르거나 아이들이 안아달라 보챌 때면 성인같지 않은 몸뚱이가 원망스러웠다.


40대 이후엔 일일이 쫓아다니지 않아도 될 만큼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이제야 편히 쉬면서 튼튼한 몸을 가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다. 그러나 생활이 안정되어 윤택한 삶을 누리고 있을 것이라는 젊은 날의 기대와는 반대로, 여전히 일상은 버둥거림의 연속이었다. 아니 한층 더 심해진 기분이었다. 연로해지신 부모님은 하루가 다르게 몸과 마음이 연약해져 갔고, 10대의 한복판을 질주하는 아이들과 마찰을 빚는 날이 많아졌다. 직장에서는 시니어라는 꼬리표로 인해 실수나 실패는 엄격하게 금지되었으며, 몸을 갈아 넣어도 잔고가 쌓이지 않는 통장을 보며 아득한 노후 걱정에 한숨이 늘어갔다.


이제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은 내 손이 닿아야 해결될 수 있고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것으로 변해있었다. 어리광을 부리며 의지할 부모는 없었고 내 의지대로 컨트롤할 아이들도 없었다. 그 대신 마흔이라는 숫자와 그에 따르는 책임감이 어깨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만사가 신경 쓸 일 투성이라는 생각이 들자, 가뜩이나 예민한 기질은 더욱 뾰족해졌고 마음은 곧 몸으로 이어졌다. 소화가 안될 것 같다는 불안감에 끼니를 거르기 일쑤였고, 이러다 쓰러질 것 같아 폭식을 일삼기도 했다. 돌아온 건 만성 소화불량과 그로 인해 한층 더 예민해진 마음뿐이었다.


게다가 지난 10개월 동안 다시 일을 하게 되면서  11시, 1시, 3시로 짜인 리포트 발송 스케줄은 그나마 사수하고 있었던 점심시간을 앗아가 버렸다. 때로는 라면이나 빵, 떡이 밥상을 대신했다. 소화 불량 3 대장이라 불리는 이 놈들 때문에 소화가 안 되는 날은 당연히 많아졌다. 다시 죽부터 시작해야 했다.


그 사이 나의 소중한 2kg가 증발했다.


지난해 말, 간신히 앞자리 4를 붙들고 있는 체중계의 숫자를 보다가 불현듯 두려움에 휩싸이게 되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여기저기 고장 나는 일이 많아질 텐데 이 몸으로 1인분 몫을 제대로 할 수나 있겠냐는 생각이 스쳤기 때문이다. 그 순간 혹 회사에서 계약 연장을 제안해 와도 거절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다행스럽게도 회사 사정이 안 좋아져서 연장 옵션은 발동되지 않았지만).


그러나 회사를 그만둔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될리는 없었다. 바꾸자. 싹 다 갈아엎어버리자.


나에게 맞는 올바른 식습관을 세우기 위한 질문 몇 가지를 던졌다.


나는 무엇을 먹을 때 가장 행복한가?

나는 무엇을 먹고 나서 가장 불편한가?

평생 먹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은 음식은 무엇인가?

더부룩한 기분을 느끼지 않을 방법은 무엇인가?

식사가 즐겁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즉시 속 쓰림을 유발했던 커피를 끊었다. 빵과 면으로 대표되는 밀가루 음식도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그리고 나의 체질과 위장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한 정보들을 탐색해 12시간 공복, 3시간마다 주식과 간식을 반복하는 루틴을 만들기 시작했다. 속 편한 식사를 위해 양배추, 당근, 버섯, 단호박을 정성스럽게 손질하여 채소찜을 만들었고, 빠지지 않고 낫또를 식탁에 올렸다. 나를 기꺼이 돌보는 시간이라는 생각에 귀차니즘은 쉬이 물러갔다. 게다가 나는 채소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던가? 뷔페에 가면 샐러드부터 한 접시 해야 직성이 풀리는 양반이니까.


단, 내가 가장 행복한 시간은 가족들과 함께 하는 저녁이기에 이때만큼은 엄격한 식단 대신 평소대로 유연하게 먹기로 했다.


또 한 가지, 밥을 먹을 때 마음이 즐거워야 소화도 잘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혼밥이 주를 이루는 점심시간은 골치 아픈 시사프로그램이나 뉴스 대신 유쾌한 먹방 TV나 B급 예능을 보며 리프레시하는 시간으로 삼았다.


정해진 메일 발송 타임라인은 내가 마음대로 변경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조금 (많이) 서둘러 업무를 시작하는 방법으로 점심시간을 확보했다.


밥부터 잘 챙겨 먹는 습관이 붙자 식사가 즐거워졌다. 게다가 이제 회사를 그만두었으니 신경 쓸 일 하나가 소거되었으며 시간에 쫓길 일도 없다. 식사 시간이 한층 더 행복할 수 있는 이유다. 공중 분해되어 버린 2kg를 되찾아올 날이 머지않았기를.


열심히 챙겨먹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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