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프레소는 못 마시지만 불편함은 견딜 수 있는 사람
여전히 성장 중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데. 지금도 이따금씩 자주 아픈 걸 보면 청춘의 범주를 40대까지 늘려줘야 할 것 같다. 여전히 부딪히고, 깎이고, 좌절하여 아파하며 성장하고 있다(아마도). 이 성장통은 언제나 끝날런지. 성장통이 아니라 관절통이 와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나이를 먹은 것 같은데. 이제 그만 좀 커도 되지 않을까. 이미 남들보다 한 뼘은 더 큰 키가 부담스러운데 말이다. 아직도 어른이라는 경지에 이르려면 갈 일이 멀었는지, 언제 어른이란 것이 되기는 하는 건지. 근데 그 어른, 꼭 되어야 하는 건지. 머릿속을 부유하는 생각들 때문에 잠은 완전히 달아나버렸다.
에스프레소 주세요
1. 내게 어른이란 '에스프레소를 즐기는 사람'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겨울을 맞아 남들처럼 수능을 봤다. 수능 때문에 12년을 고생했는데, 결국엔 아빠가 일 때문에 가게 된 일본 도쿄의 대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그동안 뭘 한 거지 싶었지만 어쨌든 입시가 끝났다는 게 더 좋았다. 덕분에 고등학교 졸업식은 가지 못했다. 그래도 학기 마지막날엔 함께 고생한 전우(친구)들과 인사하며, 후배들을 뒤로하고 고등학교 생활을 마쳤다. 교복을 벗고, 에헴. 우쭐했다. 나도 이제 다 컸구나. 했다. 얼마뒤 참석한 대학교 입학식에서 다시 아이로 원복 할 줄은 예상치 못한 채.
대학교라는 곳은 끝을 알 수 없는 우주 같았다. 큰 우주 속 한 은하를(아니 블랙홀을) 친구도 엄마도 없이 홀로 항해하는 우주인이 된 기분이었다. 한없이 넓은 캠퍼스의 익숙하지 않은 풍경들 속에 나는 점처럼 티끌처럼 작아졌다. '나 이제 학생 아니고 성인이야' 했던 우쭐했던 마음은 온데간데 없어졌다. 교내를 자연스럽게 거닐며 얘기 나누며 지나가는 선배들 앞에 나는 어리숙하게만 느껴졌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입학식날, 처음엔 신입생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지만, 점차 고등학생같이 보이지만 않으면 다행이겠다 하며 광활한 캠퍼스를 어색한데 안 어색한 것처럼 걸었다. 예상과는 달리 대학생스럽지(?) 않았던 입학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제 갓 고등학생이 된 동생의 얼굴을 보니, 정신이 좀 돌아왔다. 나는야 무려 12년 동안의 학창 시절을 거쳐 고3이라는 바다를 건너 드디어 성인이 되지 않았나. 그래그래, 새로운 섬을 탐험하는 것도 재미있을 거야. 잘할 수 있어. 고등 아가야 언니가 나중에 한수 알려줄게. 했다.
다음날 학교에 가니, 학부 캠퍼스의 중앙에 있던 학생식당에 1학년들이 어수선하게 꽉 차 있었다. 기억이 어렴풋 하지만 우리 학교 1학년은 개학한 뒤 며칠 동안 수강신청을 하게 했던 것 같다. 학부로 입학하여 무려 20개 정도 되는 세부 전공 수업을 1학년 내내 선택하여 듣고, 2학년 때 각자의 전공을 정하는 시스템이었다. 내가 듣고 싶은 수업을 직접 골라 시간표를 짠다는 것이 갓 졸업한 고등학생에겐 익숙치 않은 자유였다. 담임 선생님이 개학날 그해 시간표를 알려주면 그에 맞춰 생활루틴을 맞춰오던 내게 갑자기 주어진 이 '자유'는 한없이 어려운 숙제였다. 1학년 신입생들 모두 마찬가지였을 거다. 수강 신청을 위해 그곳에 있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저희들끼리 수업 정보를 교환하며 왁자지껄 시간표를 짜고 있었다. 다들 입시를 같이 치른 친구들끼리 고등 동문들끼리 뭉쳐있었지만, 유학생이었던 나는 어디 붙을 데가 없었다.
쭈글 쭈굴. 쭈뼛 쭈뼛 휴, 그냥 집에나 가버릴까. 막막해하며 부러운 마음에 애들을 눈치껏 살펴보니 보니 다들 같은 책을 보며 수강신청을 하고 있었다. 한 동아리에서 학부 전통으로 내려오는 책자를 만들어 200엔인가에 팔고 있었다. 모든 과목의 난이도, 성적은 잘 주는지, 교수는 어떤지 등급을 매긴 이른바 수강 과목 족보 같은 거였다. 동전을 꺼내 책자를 구매하다 한국사람이고 나보다 한참 언니인 동기와 우연히 말을 트게 되었다. 언니는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다 여기로 다시 유학을 오게 되어 1학년으로 입학했다고 한다. 나는 딱히 나에 대해 설명할 것도 없고, 뭐라 설명할 줄도 몰랐던 것 같다. '이번에 졸업해서 아빠 따라왔어요.‘ 했던 거 같다. 고등학생티를 벗지 못한 나와는 달리 언니는 이 시스템에 이미 오래전 적응한 사람처럼 침착하고 세련돼 보였다. 언니가 '여기 말고 학교 앞 카페에 갈래. '해서 따라나섰다.
당시만 해도 스벅 같은 커피체인점은 없었고, 카페는 대학생이상 어른들의 공간이었다. 커피는 알콜류처럼 어른들만 마시는 것이라 생각했다. '와 이 언니는 이런 곳에 자연스럽게 가는구나' 하며 언니 뒤를 따라 카페에 들어갔다. 언니가 커피를 주문하고 내 차례가 되었다. 어색한데 어색하지 않은 척하고 싶었다. 나도 대학생이지 않나. 근데 뭘 시켜야 하지. 메뉴판을 보는데 아는 단어가 없다. 아메리카노? 라테? 에스프레소는 또 뭐지? (당시 내가 아는 커피는 삼각 커피우유가 전부이자 최고의 일탈이었다.) 뚫어져라 봐도 내 눈엔 가격만 보인다. 에스프레소가 가장 저렴했다. 점원과 더 어색해지지 않으려면 뭐라도 빨리 주문해야 했다. 꼬박꼬박 타오던 용돈을 아껴 쓰는, 며칠 전까지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제일 싼 '에스프레소 주세요' 했다. 언니가 옆에서 듣더니, “어.. 그거 쓸 텐데. “ 한다. ‘쓰다고? 커피는 달달한 거 아님? ’ 생각하며 지갑을 닫아 가방에 집어넣고 자리를 맡아 앉았다. 여기까지 나쁘지 않았다.
“주문한 커피 나왔습니다.” 하여 커피를 가지러 갔는데, 아직 생생하다. 그때의 문화 충격. 코딱지만한 잔에 들어가 있는 시커먼 액체. 자리에 앉아, 처음 한 모금하고는 와..... 했다. 이거 왜 먹는 거지. 한 시간 정도 카페에 머물다 밖으로 나올 때까지 나는 더 이상 컵을 입에 대지 못했다. 처음 한 모금이 마지막 한 모금이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사람은 ‘어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여전히 나는 에스프레소를 마시지 못한다.
별들은 나이를 세지 않는다.
2. 나이를 '새다'가 맞는 건지 '세다'가 맞는 것인지 나이를 한참 먹었는데도 맞춤법이 헷갈려 검색을 하는데 '별들은 나이를 세지 않는다. ' 이 문장이 연관 검색어에 뜬다. 수필가 박소현 작가의 첫 번째 에세이 제목이라 한다. 와 얼마나 멋진 말인가. 언젠가 한번 읽어보고 싶어진다.
마흔이 넘은 어느 해인가부터 새해가 돼도 나이를 업데이트하는 행위를 하지 않게 되었다. 편의점에서 캔맥주를 사도, 아르바이트생은 내 신분증에 관심이 없다. 가끔 OTT에서 성인인증을 하라고 할 뿐이다. 그렇게 그즈음에 나이에 머물러 살고 있다가 새로 만난 누군가가 문득 “그래서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하면 생전 처음 듣는 질문인 양 한참의 로딩 타임이 걸린다. ‘아.. 그러게 내가 몇 살이더라.. ‘하다가 그 시간이 어색해지기 직전에 “저는 @@년생이에요. 하하하. ”하고 자연스럽게 나이를 또 세지 않고 넘어간다. 더 이상 나이 먹지 않는 재주가 생긴 것이다. 나이 듦에 대한 회피는 아니다. 알고 싶지 않을 뿐이다. (음 이게 회피인가요? ) 여하튼 나는 별은 아니지만 나이를 세지 않게 되었다.
견딜만한 불편함의 총량이 늘어
어른이란 생각이 들었다.
3. 자 그렇다면 나는 어른인가? 그럼 나는 어른이다. 어른이지. 암. 정확히 표현하자면 생물학적, 동물학적? 으로는 그렇다. 어딘가 다치거나 상처 나거나, 이따금 밤을 새우면 회복이 예전 같지 않은 몸과 함께 세월을 쌓아가고 있는 어른이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살아내고 있다. '살고 있다'가 아니라 '살아내고 있다'는 표현이 잘 적절한 것 같다. 이따금 즐겁고, 신도 나고, 진한 감동이 몰려오기도 하지만, 지난 삶 속에서 특히 언제나의 '지금'은 항상 ‘버티기 한판 승부’였다. 한판이 두판되고 세 판 네 판… 지금 한 500판째인 건가. 끝은 있는 건가. 나는 승부사로 태어난 건가. 싶어질 즈음이 되니 버텨온 나날들이 이제 나를 버틸 수 있게 해 주는 것 같기도 하다.
어렸을 적 상상 속의 마흔 즈음은, 모든 것들을 멋지게 이뤄내고, 턱턱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며, 삶에 큰 고민은 모두 답을 얻었기에 편안히 노년을 향해 가는 일상을 지내고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나의 오늘은 늘 그렇듯 녹록지가 않다. 지금도 여전히. 갓 대학생이 된 입학식 그날처럼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감정이 끓어올랐다, 지쳤다, 기뻤다, 웃었다, 울었다 하며 쉽게 상처받기도 하며, 별다를 것 없이 '살아내고' 있다.
다만 나도 조금은 어른이 된 건가 싶을 때가 있다. 감당할 수 있는 불편함의 총량이 점점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무슨 얘기냐면, 어린 시절에 나는 사람이던, 상황이던 불편함을 한시도 견디지 못해 즉각적으로 해결해야만 했다. 어색한 침묵이 불편해 안절부절못했고, 무슨 말이라도 해보려 꺼내본 말 때문에 더 어색해지곤 했다. 누군가와 작은 트러블이라도 생길 기미가 보이면 재빠르게 문자를 보내던 전화를 걸어 얼굴을 보자고 하던 바로 해결하고자 했다. 작던 크던 불편함을 견딜 수 없었다.
종종 예전과는 달라짐을 느낀다. 불편함은 매일의 일상에 공기처럼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때론 불편함이 나를 덮쳐와 견딜 수 없이 화가 나기도 한다. 정신적으로 느끼는 불편함이 육체적인 무기력함으로 연결돼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들기도 한다. 그렇지만 불편함을 걷어내기 위해 무엇이던 당장 해보려 하지는 않는다. 그냥 버텨본다. 견뎌본다. 공기처럼 대해 본다. 생각도 해본다. 이 불편함이 버텨야 하는 건지 해결해야 하는 종류의 것인지. 불편함을 없애도 또 다른 불편함이 그 자리를 채우리라는 것을 이제는 알기에.
이게 바로 버티기 한판 승부를 거듭하던 승부사가 알게 된 꿀팁일지도 모르겠다. 불편한 마음과 상황이 반가울 리는 없지만, 애써 보내려고 하지 않는 것. 직장생활을 20년 넘게 했는데도, 적응되지 않는 조직이라는 곳. 내 맘 같지 않은 사람들과의 일상들. 또 이렇게 버티다 보면 무뎌지겠지. 그러다 또 상황이 변하고 나도 변하고, 악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선이 되고, 선이 악이 되어 돌아오고. 그렇더라. 어색한 침묵이 불필요한 말보다 더 값질 수 있더라. 정말이지 세상은 알 수가 없는 요지경 같아서, 불편함을 견뎌본다. 무기력해지려는 나를 토닥여 본다.
드디어 벚꽃이 흐드러지게 필 것 같은 봄이 다가와 오늘 하루 또 나이를 먹는다. 하루씩 살아내다 보면 언젠가 나도 온전한 어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한껏 부풀어 오른 꽃망울처럼 나도 희망을 품어본다.
여전히 에스프레소는 못 마시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