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묻는다면
이번 주 연재 글은 살면서 내가 얻은 답들에 대해 적고자 했다. 그런데 답이라는 게 분명 있었던 것 같은데 없어지기가 일쑤다. 그럴 때면, 일시 정지 상태가 되어 아무것도 하기가 어려운 상태가 되는데, 오늘은 딱. 그런 날이다. 이 나이쯤 되면 웬만한 일엔 잘 버텨낸다 생각했지만, 이런 게 자만인 건가. 시행착오와 이불킥 투성이인 20대를 보냈는데도 삶의 답을 모두 얻기에는 충분치 않은가 보다. 40대에도 여전히 멘탈이 붕괴되는 순간이 종종 찾아온다. 며칠 전 누가 봐도 답이라고 생각하고 준비했던 것들을, 한방에 격파당하고, 멘붕상태가 되었다. 밑도 끝도 없이 열심히 달리던 나는 동력을 상실하고 말았다. 몸까지 고장이 나서, 어디가 아픈지도 모른 채 온몸이 아프고 기력이 떨어져 침대와 한 몸이 된 상태로 주말을 보냈다. 정리되지 않은 글이지만, 그런 상태에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기록해 둔다.
인생에 답이 어디 있어.
종종 떠오르는 생각이다. 답이 없는 일들을 겪어내며 답을 얻기 위해 노력하다, 답답한 마음에 이 말이 튀어나온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항상 답을 얻기 위해 질문하고 고민한다. 답인지 알 수 없는 것들에 힘겨워한다. 생각을 지속하게 되면, 일종의 마감이라는 것이 다가온다. 더는 답을 내는 것을 미룰 수 없는 순간이 와서, 어쩔 수 없이 어떤 결론을 내리고, 그 결론을 바탕으로 등 떠밀려 실행하게 된다. 그러고 나면 어떤 결괏값이 나온다. 그 결과가 성공이건 실패이건, 이렇게 일련의 과정을 통해 나온 것들이 쌓여 결국 답이 된다. 같은 일이 여러 번 반복되면 답은 견고해진다.
답을 찾을 수 없는 것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 종류의 것도 있다. 주로 마감이 없는 것들이 그렇다. 행복에 대해서, 인생에 대해서, 삶의 이유에 대해서, 육아에 대해서, 사랑이란 무엇일지? 등에 대해서 답을 내리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싶다. 심지어 딱히 그에 대한 답이 없어도 삶은 충분히 우리에게 바쁜 과제를 안겨준다.
나 같은 경우 분명 인생의 어느 순간 답을 찾았던 것들도 있었다. (지난 연재글에도 썼듯) 20대의 어느 시점에서 결론 내린 것들이 있었다. 그 이후의 경험치를 통해 업데이트된 것도 있지만, 그대로 방치해 둔 것이 훨씬 많다. 수많은 정보, 해야 할 일들, 읽고 싶은 책들, 만나고 싶은 사람들, 꼭 해야만 하는 중요하지만 귀찮은 일들, 많은 것들에 둘러쌓인 일상이다. 기한이 임박한 일들을 겨우 쳐내다 보면, 답 없이도 살 수 있는 꽤나 중요한 것들에 대한 답을 깊이 우려낼 여유를 삶은 좀처럼 주지 않는다.
답이 없는 것들에 대해 답을 내려고 하다 보면 어느새 결론이 이렇게 나기도 한다. 답이 없으니 그저 사는 대로 살아보자. 행복이 뭔지 모르겠지만, 행복한 것 같기도 하고, 삶을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살아야 하니 행복하게 사는 것이고. 나쁘지 않다. 심플 이즈 베스트 아니겠는가. 그렇지만 왠지 살수록 공허해진다. 뭔가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있는 기분이 든다. 다른 사람이 적은 답을 그저 따라가다 의미없는 세월만 쌓이지 않을까 그건 좀 아닌데. 불안하다. 조금 쉬어갈 때가 된 걸까. 한다.
원하는 걸 알아야 한다.
좋은 질문이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된 건 어떤 계기가 있어서는 아니었던 것 같다. 삶 속에서 스멀스멀 알게 되었다. 내가 원하던 답을 얻으려면 질문을 잘해야 한다. 이게 답을 얻기 위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다시 말하면 답을 얻기 위해서는 내가 진정 원하는 게 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원하는 걸 얻기 위한 질문을 해야 한다.
어쩌면 가장 의미 있는 순간은 질문이 생겼을 때가 아닐까 싶다. 모르면 질문할 수 없다. 어렴풋이라도 아는 것이 있어야 궁금한 것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궁금하다는 것은, 그걸 질문으로 누군가에게 건네는 행위는 참 숭고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고민 없이 단순한 궁금증에서 던지는 질문들은 타인을 참 불편하게 한다. 미리 본인이 검색을 통해,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던 것들인데도 불구하고, 노력 없이 답을 구하려고 하는 사람은 반드시 피하게 된다. 결국 질문을 통해 그 사람의 인품까지도 우린 어렴풋이 느끼게 된다. 목소리 톤이나 한두마디 말투만으로도 느껴지기 마련인데 질문의 내용을 통해서 우린 질문하는 이의 머릿속 마음속을 들여다볼 수 있다. 좋은 질문을 자주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만 드는 까닭이다.
답이 있었는데 없어요.
인생의 나만의 답이 생겼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것만도 아니란 생각이 든다. 때론 답이 갖지 못한 사람이, 그래서 자신의 그 부족함을 인정한 사람이 훨씬 나은 것도 같다.
'꼰대'라는 단어는 소리로 나오기도 전에 그냥 접하는 순간 기피하고 싶은 단어가 아닐까 싶다. 나이와 관련이 있는 단어일 것 같지만, 나이와 상관없는 열린 태도의 유무가 꼰대를 가르는 기준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경험상 '꼰대'라고 불리는 이들은 많은 답을 안고 살아간다. 많은 답을 가지고 절대 그 답을 바꾸지 않은 사람들을 한 단어에 쑤셔 넣어 규정해 버린 것이 '꼰대'라는 단어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어떤 이야기를 건네봐도, 심지어 숫자로서 수치로서 설명할 수 있는 최대한 객관에 가까운 것조차도 이미 자신만의 답이 있는 그들에겐 들리지 않는다. 세월의 흐름과 함께 세상이 변했다고, 그러니 살아남으려면 젊은 세대들을 공부해야 한다고, 관련 기사를 읽고, 독서까지도 마다하지 않지만, 막상, 그들이 정답을 내린 것과 다른 이야기를 할 때 그들의 생각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에 종종 무기력함을 느낀다.
세월이 지나더라도, 그런 '꼰대'는 되지 않아야겠다 생각한다. 삶 속에서 얻은 많은 답이 생기더라도, 그 답은 결코 영원불멸한 것이 아니라 너무도 쉽게 부서질 수 있는 얄팍한 유리로 만들어진 것에 불과하다고. 그러니 언제든, 내가 잘 알던, 모르던, 지금을 살고 있는 이들이 내게 이야기할 때는 매우 쉽게 답을 바꿔버리자고. 다시 한번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