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이의 노래를 좋아했다. ‘고마워, 오빤 너무 좋은 사람이야.’ 좋은 사람이란 곡에 나오는 가사이다. 분명 칭찬인 것 같지만, 내가 마음을 품고 있는 이성에게 나는 그저 좋은 사람일 뿐이라는 말이 마음을 후벼 판다. 남 얘기 같지만은 않기도 해서.
생각이 참 많았던 20대의 어느 날. 이 곡을 수도 없이 반복해 들으며, 좋은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 고민에 빠진 적이 있었다. 좋은 사람이라 하면, 항시 친절하고, 예의가 바르고,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자세가 올바르고, 단정하고, 성실하고, 남을 속이지 않고.. 흔한 이미지들이 금세 떠올랐지만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저 그런 느낌. 내가 되고 싶은 좋은 사람과는 거리가 좀 있었던 것 같다. 답을 찾아내지 못한 채로 시간은 하염없이 흘렀다.
비록 답은 찾지 못했지만 그 시절 나는 타인에게 늘 좋은 사람이고 싶었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나의 태도에 어떤 정답이 있는 것처럼, 시험을 통해 점수를 얻는 것에 익숙했던 학생이었던 습관 탓인지 늘 누군가의 기준에 부합하고, 정답을 맞혀,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내가 처음 타인을 마주할 때는 성선설을 믿는 타입인 것 같다. 그러니까 오늘 처음 본 이 사람이, 마냥 좋은 사람일 거란 생각이 절대적이다. 기본적으로 딱히 타인에 대해 의심하지 않고, 내가 좋은 사람이려고 한다면 상대방도 좋은 사람이 되어 줄거란 믿음이 깊게 깔려있는 것 같다. 나 또한 늘 상대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기에 상대도 나에게 그렇게 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그 사람이 분명 '좋은' 사람일지라도 나에게 있어 '좋은' 사람은 아닐 수 있다는 것. 그 두 가지 '좋은'은 같은 것이 아니라는 것. 이걸 깨닫기까지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던 것 같다. 곧잘 사람에게 감동도 상처도 잘 받는 (MBTI 대문자 F 인) 나는 앞서 말한, '좋은 사람(매너와 에티튜드가 완벽한 사람)'이 내게는 그다지 좋은 사람이지 못할 때, 대부분의 경우 자책으로 귀결되곤 했다. 단순히 나와 잘 맞지 않는 사람일 수도 있는데, '내가 너무 별로인 사람이라 저리 좋은 사람과 어울리지 못하는구나. ‘ 생각하곤 했다.
나를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사람
살다 보니 드디어 내게도 '좋은 사람'에 대한 정의가 내려지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어떤 행동 또는 말이 상처가 되고, 나 스스로 위축되고, 그런 것들이 극복되거나 잊히는 시간의 반복을 거듭하다 보니, '나를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사람. 나를 호인으로 만들어 주는 사람, 더 나아가서는 내가 좋아하는 내 모습으로 그를 대할 수 있게 판을 깔아주는(?) 사람이 내게는 좋은 사람‘ 이란 결론이 났다.
나를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사람들이 있다. 부족한 것 투성이인 나를 좋게 생각하여, 어떤 행동도 긍정적으로 봐주는 사람들. 나의 단점보다는 나의 장점을 보고 나를 좋은 사람이라 해주는 사람들이 있더라. 결국 그 기대에 부합하기 위해 조금 더 조심하고, 노력하고, 행동하고, 그런 시간을 통해 내가 또다시 성장하게 해주는 사람. 그런 내가 만족스러워서, 나도 꽤 괜찮은 사람이라며 스스로를 예쁘게 봐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사람. 좋은 사람이란 결국 그런 사람이라는 결론에 이윽고 이르게 되었다.
반면 나도 싫어하는 내 모습을 꺼내게 되는 사람이 있다. 어떤 행동도 안 좋은 면을 보고, 안 좋은 평가를 하는. 노력하는 내 모습까지 플러스 알파해서 희망적으로 봐주는 것이 아닌, 지금 현재 부족한 나와 내가 당장에 해내는 결과물만으로 나를 판단하여, 거기까지만 나를 대접하는 사람에겐 내가 가진 좋은 모습을 전혀 꺼내지 못하게 된다. 노력해보기도 했지만, 나 자신을 상처 내는 것뿐 관계가 개선되긴 어려웠다.
그런 사람 앞에서는 어색한 행동만을 반복하게 되니, 결국 더 비참해지게 된다. 나의 가능성을 열어두지 않고, 봐주려 하지 않는 사람. 이런 사람이 주변에 있을 경우, 특히 같은 팀이거나, 상사일 경우 좀처럼 직장생활이 쉽지 않다. (다만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라 하긴 어렵다. 내가 아닌 타인에겐 한없이 좋은 사람일 수도 있다. )
나에게 노력하지 마세요
난 당신이 좋은 사람인 걸 이미 알아요
이런 생각이 정리될 즈음부터인 것 같다. 누군가를 마주할 때면 항상 상대를 향해 크고 작은 칭찬을 건네왔던 것 같다. 머리를 조금 다듬었거나, 그날 색다른 스카프를 했다거나, 하는 작은 변화를 감지해 칭찬을 보태거나, 나를 향해 찻잔을 돌려준다거나, 살포시 냅킨을 내 앞에 놓아준다거나 하는 작은 배려에 대해 캐치하고 감사를 곧잘 표하고자 한다.
여기서 포인트는 20대 그 시절 처럼 그저 상대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그런 건 아니라는 점이다. 그 사람에게 내가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보다는 그런 나의 한마디 말로 인해 그 사람이 스스로를 좋은 사람이라 느꼈으면 하는 바램 때문이다. 그로인해 나와 함께 있는 이 시간이 편안해길 바라는 게 큰 것 같다. 나는 당신이 이미 좋은 사람인걸 알고 있으니, 행여나 내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자 어색한 노력 따윈 절대로 하지 말길 바란다는 무언의 메시지를 건네 왔던 것 같다.
한편으론 이런 것이 리더의 덕목과도 연결이 되는 것 같단 생각도 든다. 나의 작은 가능성도 놓치지 않고 들여다 봐주는 사람, 내가 가진 밤톨 같은 좋은 면을 세상밖으로 끌어내 주는 사람, 내가 좋은 사람일 수 있게 해주는 사람. 그런 사람을 따르지 않을 이유는 없다. 머리보다도 마음이 먼저 가서 조건 없이 따르게 되는 사람. 그런 사람이 내게는 리더인 것 같다.
지나는 길에 아무 이유도 존재감도 없이 놓여진 조약돌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예쁜 점이 있다. 좋다고 말하면 그 돌은 보석의 원석이 된다는 것을 많이도 경험해 왔다. 좋은 점만을 봐도 아까운 나날이다. 좋다는 말만 해도 시간이 부족하다. 누구든 장점만 있을 수는 없겠지만,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아니어도, 그 사람의 단점을 이야기해 줄 사람은 수두룩 할 테니. 적어도 아무 이유 없이 자신을 지지해 주는 한 명의 타인이 되고 싶다. 그런 관계로 인해 그의 삶이, 그리고 나의 삶도, 건조한 사막처럼 허무해지는 결말은 없을 테니.
긴 글이 되어버렸지만, 결론은, 나의 좋은 사람과 함께 나도 좋은 사람이 되어 오래오래 그들과 함께이고 싶다는 거다.
고마워
그댄 너무 '좋은' 사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