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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껌딱지 Sep 06. 2023

[직업상담이야기] case.3 그냥 대학원 갔어요

직업상담을 하면서 참 아까운(?) 경우가 몇 차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그냥 졸업했다.'라고 말하는 청년들이었다.


재수 및 다른 이유가 있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대다수 20살에 대학(교)에 입학해 빠르면 23살, 늦으면 27살쯤에 졸업을 하는데  그 긴 시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세상을 아주, 조금, 일찍 살아온 사람으로서, 약간 꼰대로서 너무 아쉽고, 아깝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물론 각자만의 이유는 있을 것이고  타인이 아무리 납득할 수 없는 이유라 해도 아니 설령 이유가 없다 해도 그 사람의 삶을 감히 누가 뭐라 하고 재단할 수 있을까. 다만 스스로를 갑갑해 하며 취업관련 센터를 찾아올 때면 내담자가 지나온 과거의 시간들이 조금 많이 아깝다. 아마 내가 이렇게까지 아까워하는 이유는 나조차 그런 대학시절을 보냈고 뒤늦게 후회했던 한 사람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청년 일자리 **즈는 만 19세~34세 미만의 청년들을 대상으로 취업관련(알선 제외) 모든 것을 제공하는 기관이다. 취업교육, 스터디룸 제공, 취업 및 진로, 적성(MBTI) 상담 등을 무료로 제공했다. 보통 3월~5월까지는 실제로 취업을 하고자 하는 청년들의  취업 관련 -자기소개서와 같은, 상담의 비중이 높았고 6월~8월까지는 진로, 성격유형 검사 상담의 비중이 높았는데 대다수 취업시즌이 끝나고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평가 당한 충격(?)으로 상담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에 만난 청년은 대학교 4년, 휴학 1년. 대학원 휴학 중인 취준생으로 첫 상담에서 그녀가 나에게 건넨 첫 마디는 '이렇게까지 취업이 안될 줄 몰랐어요.'였다. 그녀의 스펙은 대학교 4 년제 졸업, 대학원 진학 및 휴학으로 매우 간단한 편에 속했다. 그녀는 4년제 음대생으로 4년 내내 학교생활에 충실했고, 당장 하고 싶은 것이 없어서 대학원을 진학했으나 이 길이 맞는지 의문이 들어 현재 휴학했다고 했다. 


휴학 중 그냥 취업이 필요한 것 같아 작게는 학원부터 크게는 공기업, 재단 등으로 취업서류를 냈으나 번번이 서류에서 탈락했고 '이건 아니다' 싶어 재점검 및 자기 객관화를 위해 진로 상담을 신청했다.  


'당장 하고 싶은 것은 없지만, 취업은 해야 할 것 같다.'라는 포괄적인 상담 신청 이유에 직업 및 진로상담의 방향성을 잡는데 꽤 고심을 했던 거 같다. 취업의 목적성이 정확한 것도 아니고, 직업 선호도가 분명한 것도 아니었기에  '취업'을 하는 게 과연 그녀의 현시점에 맞는 것일까?라는 의문도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현재 제일 답답한 것은 여기까지 찾아온 내담자 자신 일 것이기에  나는 매우 디테일하게 초기상담을 진행했다.


그리고  내담자와 초기 상담을 토대로 진로 방향과 취업 목적의식 찾기를 위한 순차적 계획을 세웠다.


1. 대학(원) 생활에서 가장 즐거웠던 순간, 힘들었던 순간 마인드 맵 하기

2. MBTI 성향검사를 통해 개인 성향 파악 및 성향별 직업, 진로 사례 자료 조사하기

3. 직업가치관 파악하기

4. 경상남도 체험형 인턴, 인력양성과정 사업 확인하기


우선 내담자는 금전적인 이유로 '지금 당장' 취업이 필요한 상황은 아니었다. 충분히 시간을 가지고 여러 가지를 '경험' 할 수 있는 여유가 충분했기에 당장의 취업을 권유하기보단 스스로를 알아볼 수 있는 '경험'을 추천했다.  


내가 직업상담사로 일하며 생긴 지론이 있는데  그것은  '경험을 해봐야 안다.'이다. 경험해 보지 않고 진로가, 직업이 본인과 맞는지는 알 수 없기에 '경험'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또 많은 내담자들에 권유하는 편이다. 물론 내담자의 상황에 따라 단순 경험과 월급이 나오는 경험, 관심사와 관련된 경험, 일반 경험 등으로 나뉘긴 하지만 그 기본 베이스는 무조건 '경험'이다.


대학(원) 생활에서 가장 즐거웠던 순간, 힘들었던 순간을 글로 적고 왜 좋았고, 왜 힘들었는지를 파악했다.


그리고 내담자가  즐겁고. 힘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MBTI 성격유형검사를 통해서 타당하고 객관적인 이유를 찾아보았다.  내담자의 유형은 ENFP로 외향적, 직관적, 공감적. 즉흥적(인식형) 이었다. 해당 유형의 장점은 열정적이고 새로운 관계에 두려움이 없다. 또한 즉흥적이며 문제해결능력이 뛰어나고 사람이든, 공간이든 성장 가능성을 잘 파악하  는 사람이다. 반면 반복되는 일에 대한 인내심이 부족하고 시작은 많으나 끝이 잘 없는 유형이다. 선호도가 꽤 분명한 편이었기에 가장 즐거웠던 순간과 힘들었던 순간과 해당 유형의 사례들과 매우 비슷했다.


 내담자가 대학생활 중 ① 가장 즐거웠던 일은 대학교 친구들과 함께 낙후지역의 문화봉사활동을 떠난 일이었다. 그중에서도 해당 지역의 전통문화, 주(主) 류 문화를 이용해 프로그램을 제작, 홍보하고 마을 사람들과 함께 소통하며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일로 다시 한 번 해보고 싶어 했다.  내담자가 가장 즐거워했던 봉사활동은 한마디로 표현하면 '기획'과 비슷했다.  '기획'은  주변을 탐색하는 시각, 정보를 얻기 위한 소통, 발로 뛰는 활동력, 아이디어 등이 필요한 일로 보편적으로 설명하는  ENFP의 성향 및 직업군과 유사했다.  (물론 누누이 말하지만 MBTI 성격유형 검사는 참고 자료일 뿐 100% 정답은 아니다.) 이를 토대로 내담자가 생각하는 직업 및 진로 선택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를 30개 이상 적고 여러 가지 질문을 통해 지워나가는 시간을 가졌다. 이 작업은 ③ 직업을 선택할 때 개인이 가장 깊게 생각하는 한 가지를 찾기 위한 과정으로 직업가치관을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이다. 약 1시간 동안의 질문을 통해 남게 된 한 개의 단어는 '덕업 일치(자기가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분야의 일을 직업으로 삼음-네이버 국어사전)였다.   


 그렇다면 그녀가 활동적이고, 타인과의 소통은 필수이며, 아이디어가 필요한 '기획'이란 일을 업으로 삼을 수 있는지를 파악하려면 '기획'을 일로 할 수 있는 간접적인 경험이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상담을 통해 근무 가능 지역 범위를 확인한 후 경상남도 내 체험형 인턴, 뉴딜 일자리 사업. 문화 관련 인력양성사업을 리스트 업했다. 


체험형 인턴은 주로 중앙 공사(중앙정부에 의해 설립되었거나 지분의 대부분이 정부에 있는 기업) 진행하며 일정 수준 이상의 스펙을 필요했기에 제외하고 경남 내 뉴딜 일자리 사업과 문화인력양성사업을 안내했다. 


뉴딜 일자리는 사업은 '돈'도 벌 수 있고 직업체험도 가능했으며 기업에서 열심히 일한다면 정규직 전환의 가능성도 있었기에 충분히 매력 있는 사업이었다.④ 문화인력양성사업 경우 당시 관내 진흥원과 도시지원센터에서 진행 중에 있었고 모두 특별한 자격조건을 요하는 것이 아니었기에 충분히 지원이 가능했다.


내담자는 일자리 사업보다는 양성사업에 더 관심을 보였고 피아노 전공생으로 해당 이점을 활용한 지원서를 작성하여 제출했다. 그리고 지원서 제출을 마지막으로 상담은 종료되었다. 


이후 내담자는 양성과정 교육 중 재 상담을 신청했다. 재 상담 알람을 보고 긴장했었는데 환한 얼굴로 '너무 행복한 시간이다.' 말하는 그녀를 보고 뿌듯하기도 했고 감사하기도 했다.  상담 첫날 '그냥'졸업했다고 한숨만 쉬던 모습에서 이제는 '미소'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냥'졸업했다고 말하는 청년들과 시간을 두고 천천히, 깊게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느 누구도 '그냥' 졸업한 사람은 없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생각하며 후회로 가득한 그날들 중 다만 그 순간이 '취업 및 진로'와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생각해 스스로를 믿지 못하고 더 나아가 브랜딩 하지 못한다.


결국 취업도 나를 이력서와 자기소개서상 얼마나 잘 브랜딩 해서 기업이란 소비자에 나를 판매하느냐이다. 그리고 그 브랜딩의 소재는 내가 지나온 모든 시간이며, 그 시간들 중 나를 '나답게' 만든 시간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러니 절대로 '그냥 졸업했어요.'라고 생각하지 않길 바란다. 당신의 모든 시간에  '그냥' 없으니 말이다.


                                                                  *상담내용, 시기는 약간의 각색이 있음을 참고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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