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냥하게 받는다. 다이어트 전단지다. ‘내가 뚱뚱해 보이나?’ 버리고도 싶지만, 가방에 넣는다. 집에서 읽어보고 버린다.
#. 음식점에서 매운 음식을 먹었다. 땀도 닦고, 콧물도 닦은 휴지가 있다. 뭉쳐서 가지고 있다가 화장실에서 버린다.
#. 파스타를 먹다가 식탁 위에 면을 흘렸다. 휴지로 줍고 식탁을 닦아놓는다.
#. 뷔페에 간다. 아르바이트생들에게 눈길이 간다. 접시를 옮기는 그들의 모습이 위태위태하다. 쟤는 꼭 우리 딸 같네. 쟤는 조카 같네.라는 생각을 잠시 한다.
담아온 음식을 남김없이 깨끗이 먹는다.
사용한 접시를 수거하는 알바생에게, 접시를 건네주며, 고마움을 표시한다.
집에 돌아와서 딸이 말한다.
“엄마는 왜 그렇게 저자세야?”
“뭐가?”
“식당 같은 데서 왜 그렇게 굽신거리냐고? 친절도 정도껏 해야지.”
“얘는? 엄마가 언제 그랬다고.”
난 나를 너무 사랑하는 것 같다. 알바생들이 안쓰럽고 정이 간다. 예전의 '나'같아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삶은 빈번하게 우리를 속인다. 삶이란 놈이 우리를 속인다 해도, 절망이 꼭 우리의 몫은 아니다. 삶이 우리를 속이면 속아주는 척쯤은 할 수 있다. 하지만 진짜 속으면 안 된다. 속지 않고 흔들리지 않고, 흔들리더라도 떨어지지 않게 중심을 잡으면, 언젠가는 내 길이 보인다. 떨어져도 괜찮다. 다시 일어나면 되니까.
암튼, 내 길이 보이면 그 길을 가면 된다. 남을 의식하지 말고. 내가 뭘 좋아하는지, 내가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행복한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꼭 기억하면서.
인생은 나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겨울밤 막다른 골목 끝 포장마차에서
빈 호주머니를 털털 털어
나는 몇 번이나 인생에게 술을 사주었으나
인생은 나를 위해 단 한 번도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눈이 내리는 날에도
돌연꽃 소리 없이 피었다
지는 날에도
-정호승, 술 한잔-
부정하고 싶지만, 절대로 부정할 수 없는 진리. 삶은 유한하다.
삶에는 정규직도 없고, 무기 계약도 없다. 삶은 잠시 머물렀다 그만두는 아르바이트다.
인생의 알바를 할 때, 끌려다니면 안 된다. 한없이 끌려다니다 보면 만신창이가 되는 것은 나다.
말 좀 한다는 인간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다.
“나를 사랑하라.”
너무너무 너어무! 맞는 말이다. ‘나’를 사랑해야 수많은 ‘너’들을 ‘나’로 대하며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인생이 내게 술을 사주지 않으면 내가 나에게 술을 사주자. 혼자서라도 잔을 들어 나의 건강을, 나의 안녕을, 나의 행복을 기원해 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