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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y rain Dec 15. 2021

[장편소설] 톨게이트 22.

22. 그날의 톨게이트 1.

 둘은 강을 내려다보고 있다. 비가 오려는지 대기는 축축했고, 강바닥에서부터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있다.

 “이제 돌아가세요.”

 “아직 시간 좀 남지 않았나?”

 “저도 이제 들어가 봐야 하고.”

 하경의 어투가 다소 쌀쌀하게 느껴진다.

 “하경아, 나 너한테 할 말이 있는데.”

 “......”

 “하경아!”

 “오빠!”

 물을 내려다보며 한참 동안 말이 없던 하경이, 결심한 듯 성우를 응시한다.

 “응?”

 “우리, 이제 그만 해요.”

 “무슨 소리야?”

 “오빠랑 나는 안 될 것 같아요.”

 성우와 시선을 맞추고 있던 하경의 눈이 충혈된다.

 “갑자기, 왜?”

 “그냥요. 미안하지만, 오빠는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하경아!”

 “미안해요. 그렇게 해요. 그렇게 하는 게 오빠한테도 좋을 것 같아요.”

 “도대체 무슨 소리야? 왜 그러는 건데?”

 “미안해요. 내 마음이 변했어요.”

 “뭐?”

 “먼저 가볼게요.”

 "하경아!"

 잡힌 팔을 뿌리치고 가버린 하경은 잡을 엄두도 못 낼 만큼 단호했다. 하경이 사라진 후에도 성우는 풍경 속에서 하경의 모습을 찾아 헤맨다.

     

 ‘울지 말자.’

 다짐에 다짐을 더한다. 울 일 아니다. 세상엔 이보다 더한 울 일이 많다.

 ‘울지 말자.’

 울음을 참느라, 붉게 충혈된 하경의 눈이 통증으로 감긴다.     


 세윤의 전화를 받고 하경이 도착한 곳엔 세윤만 있지 않았다. 세윤을 품에 안고 있던 성우가 있었다. 술에 취한 듯, 몸을 가누지 못한 세윤이 성우의 목을 팔로 감고 있었다. 성우가 세윤을 떼어내려 했지만, 세윤은 떨어지지 않았다.


 하경은 마음을 다잡는다.     


 톨게이트 근무경력 2년이 다 되어가는 데도 밤 근무는 여전히 적응이 안 된다. 피곤한 것은 물론이고, 적적하고 무섭기도 하기 때문이다. 요금소 부스가 새벽에는 교대로 한 개만 운영되기 때문에 그 적적함과 무서움이 배가 된다. 비교적 담력이 세다고 자부하는 도미지만 밤의 요금소는 늘 꺼려졌다. 마치 적들에게 포위된 참호 같았고, 상어들에 둘러싸인 조각배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암흑의 산 그림자는 서서히 범위를 좁혀오며 옥죄어왔고, 나무들은 음산한 영혼처럼 흔들리며 괴기스러운 소리를 냈다.

 정말 가기 싫다.

 톨게이트로 들어서면서도 도미는 차를 돌려 집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게다가 저녁을 짜고 맵게 먹은 탓인지 운전 내내 갈증이 났다.

 근무하려면 좀 피곤하겠네.

 근무 중에는 화장실에 갈 수 없기 때문에 맘껏 물을 마실 수도 없다. 자신의 처지가 새삼 한심스럽게 느껴졌다.

 주차하고 고속도로 사무소로 향하던 도미가 앞서가는 하경을 발견한다. 소리 나지 않게 하경의 뒤로 다가가 놀라게 할 목적으로 하경의 양어깨를 잡으며 소리친다.

 “하경아!”

 “뭐예요!”

 앙칼진 인상의 얼굴이 돌아보며 신경질을 낸다.

 “앗! 죄송!”

 당황한 도미가 사과하곤 입을 다문다. 하경이 아닌 험악한 얼굴이 화를 내자 더 놀란 것이다.

 뭐야? 저 여자? 머리를 하경이랑 똑같이 잘랐네? 왜 저런대?

 여자가 사무소 안으로 사라지고 나서야 도미가 중얼거린다.


 “언니 하이! 하경이 어서 와라.”

 탈의실로 들어서는 지숙과 하경을 도미가 반긴다. 옷을 갈아입은 도미가 탈의실 벤치에 앉아 물을 들이켜고 있다.

 “웬 물을 그렇게 술 마시듯 들이켜고 있대?”

 “짜게 먹었나 봐.”

 “안 들어가고 뭐 해?”

 “언니랑 하경이 기다리고 있었지. 저긴 들어가기 싫어서. 꼴 보기 싫은 애 때문에.”

 “아! 그래.”

 도미에게 마주 찡긋하며 지숙이 대답한다.

 “걔가 왜? 또 너한테 뭐라고 그러디?”

 “아니, 그냥. 눈에 띄는 거 자체가 싫어서. 아참! 언니, 팀장 봤어? 너, 팀장 봤니?”

 도미가 생각났다는 듯이 묻는다.

 “아니, 왜?” “아뇨.”

 “걔 머리 잘랐는데 하경이랑 똑같이 잘랐어. 하경인 줄 알고 반가워했다가 완전 깜놀했다니까.”

 도미가 아이들의 은어를 섞어가며 흥분한다.

 “그래? 걔 또 왜 그런다니?”  

 “그래요? 그냥 잘랐겠죠.”

 “아냐. 니가 못 봐서 그래. 너랑 완전히 똑같다니까. 길이도 똑같고. 스타일도 똑같고. 왼쪽으로 가르마 탄 것까지 똑같아. 얼굴은 영 아니지만.”

 “단발머리는 어차피 다 비슷비슷하잖아요?”

 “아냐! 너도 보면 깜짝 놀랄 거야. 분명히 너 따라 했어. 그렇게 하면 지도 이뻐질 줄 알고.”

 “그래요?”

 “너, 조심해라.”

 갸우뚱하고 있는 하경에게 지숙이 이어서 말한다.

 “뭘요?”

 “아무래도 팀장이 너 찍은 것 같다.”

 “저를요? 왜요?”

 “너도 알지? 걔가 샘 많고 질투 많은 거.”

 “네.”
  “거기다가 걔가 커플 커터라는 거 아니니.”

 “커플 커터요?”

 “그래! 팀장이 간질 여왕이잖니. 이간질 여왕. 커플들 잘되는 꼴을 못 보거든. 그리고 지보다 이쁜 여자 못 참고. 남자들은 다 지 좋아해야 하고. 걔 때문에 깨진 커플이 어디 한둘이니? 걘 대학교 때도 유명했다더라.”

 “정말?”

 “걔가 인간 심리를 이용해서 얼마나 이간질을 잘하는지 아니? 이간질해서 커플 갈라놓고 남자가 자기 좋아하면 차 버리고. 걔 완전히 사이코 스릴러란다.”
  “그 정도야? 걔 진짜 대단하구나!”

 도미도 놀랐는지 입을 다물지 못한다.

 “고게, 하경이 니가 남자들한테 인기 많으니까, 또 본색이 드러나는 거야. 그리고 성우랑 썸 타는 것도 눈치챘을 테고.”

 “네에...”

 성우의 얘기가 나오자 마음이 어두워지지만, 하경은 애써 표정을 감춘다.

 “너 진짜 조심해야겠다. 고 기집애는 하여간. 어디서 못돼 먹은 것만 배워서.”

 도미가 하경의 옆구리를 툭 치며 혀를 끌끌 찬다.


 벌써 네 번째다. 사람들이 자신을 하경으로 착각한 것이. 세윤은 은근히 기분이 좋다. 뒷모습만 보고 착각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앞모습을 보고 착각한 사람들도 있었다. 물론 멀리서 보고 착각했겠지만, 어느 정도는 비슷해 보였기 때문이라고 세윤은 생각한다.

 역시 머리 자르길 잘했어.

 물론 자신보다 하경의 용모가 뛰어나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는 않다. 하경은 하경이고, 자신은 자신이니까. 하지만 뭔가 변화를 주고 싶었는데 그것만큼은 성공했다고 세윤은 자신을 합리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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