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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y rain Dec 14. 2021

[장편소설] 톨게이트 21.

21. 톨게이트 여직원 실종사건

 갓길에 정차한 벤츠는 시동을 끄지 않았다. 비가 안개가 된 것인지, 안개가 비가 된 것인지 구분할 수 없는, 모든 것이 모호한 밤에 벤츠의 붉은빛만 하나의 일념으로 번득인다. 밤을 잊고, 축축함을 잊고, 추위를 잊기 위해 따뜻한 아랫목을 그리워해야 할 이 시간에 그들은 왜 이런 일을 벌이려 하는 것일까? 무엇이 그들에게 이런 번거로움을 무릅쓰게 하는 것일까?       

 벤츠의 조수석에서 남자가 나온다. 구부정한 어깨를 가진, 다부진 체구의, 잔 근육에 피부만 입혀놓은 듯한, 운동으로 다져진 똥파리가 주위를 둘러보며 나온다. 똥파리의 손에는 천으로 감긴 물건이 들려있다. 묵직한 그 물건을 똥파리는 힘주어 잡고 있다. 너무 힘주어 잡아 손이 저릴 지경이다. 똥파리의 콧속으로 안개비가 스며든다. 갑작스러운 한기에 재채기를 하고 싶지만 우악스럽게 코를 쥐어 눌러 참는다. 일을 벌일 때만큼은 진지해지고 치밀해지는 것이 똥파리의 특징이다.

 52조는 아직 똥파리의 존재를 발견하지 못한다. 52조의 눈이 1번 요금소에 고정되어있기 때문이다.

 똥파리가 쥐며느리처럼 몸을 말아 구르며 요금소로 접근한다.

 52조는 여전히 똥파리를 발견하지 못한다. 어둠과 안개비가 뒤섞여 세상이 온통 늪처럼 보인다.

 똥파리가 잠시 숨을 고르고 주위를 살핀다. 혹시라도 차가 들어올지도 모르기 때문에 신중해진 것이다.

 52조가 시간을 본다. 2시 31분. 이제 한 시간도 안 남았다. 약 30분 후면 하경을 곁에 둘 수 있는 것이다.

 똥파리가 자세를 낮춰 요금소 창구로 접근한다.

 요금소 창구는 52조의 시야 밖이다. 반대편에 있기 때문에 52조에겐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이다.

 똥파리가 숨을 죽이고 요금소에 귀를 기울인다. 고른 숨소리가 들리고 있다. 여자가 졸고 있는 것이다.

 52조가 다시 하품을 한다. 하품을 하자 눈물이 들어찬다.

 똥파리가 날렵하게 몸을 일으킨다.

 눈물을 닦던 52조의 동작이 정지되고, 정지된 눈에 경악이 들어찬다.

 요금정산기에 기대어 졸고 있던 여자가 눈을 뜬다. 여자의 눈 속에 흉악한 표정의 남자가 들어온다.

 남자가 야릇한 미소를 짓더니 둔탁한 물건을 휘두른다.

 놀란 여자의 눈에 공포가 들어찬다. 공포가 들어찬 여자의 눈에 눈물이 맺힌다.

 하품을 한 후, 눈물을 닦다 정지된 52조의 입이 벌어진다. 하지만 비명은 못 지른다.

 똥파리가 여자를 창구 밖으로 끌어내어 빼낸다. 마치 부대자루 다루듯 한다. 부대자루 같은 여자가 축 늘어져 똥파리에게 질질 끌려간다. 블라우스가 치마 밖으로 삐져나오고 치마가 말려 올라간다. 신고 있던 스타킹에 구멍이 나고, 살갗이 벗겨져 아스팔트 위로 피가 번진다. 똥파리의 손에 피가 묻는다. 여자의 머리에서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어허! 죽으면 안 되는디.. 똥파리가 걱정한다. 똥파리가 여자를 2미터 정도 끌고 가자 벤츠에서 오 사장이 내린다. 똥파리를 도와 여자를 태운 오 사장이 급발진을 한다.

 모든 것을 지켜본 52조는 오한을 느끼며 몸을 떤다. 눈물범벅이 되어 중얼거리던 52조가 차에 시동을 건다. 술에 취한 듯 몽롱한 52조가 갈팡질팡 운전한다.

 오 사장이 52조의 존재를 감지한다.     

 오 사장은 낄낄거리는 뒷좌석의 소리에 신경이 곤두선다.

 “어때? 오형, 나 잘했지?”

 자신감이 가득한 똥파리가 사투리 없는 표준어를 구사하며 자랑을 한다.

 “하하, 어때? 깨끗하게 끝내줬잖아! 어이구, 우리 이쁜 아가씨 얼굴에 피가 많이 묻었네. 어디 보자. 죽었나 안 죽었나 볼까?”

 말을 하며 똥파리가 여자의 가슴에 얼굴을 비빈다.

 “개소리 집어치우고 입에 테이프나 붙여. 저번처럼 코까지 붙이지 말고.”

 “알았어. 알았어.”

 여자의 가슴을 주무르던 똥파리가 건성으로 대답하며 하던 일을 멈추지 못한다.

 “어이! 빨리 테이프나 붙이라고!”

 “알았다니까.”

 노기 띤 오 사장의 호통에 똥파리가 시무룩해진다. 똥파리가 미라를 감듯 여자의 몸과 입에 테이프를 두른다.

 “코는 안 막았지?”

 “응.”    

 “안전벨트 매. 여자도 안전벨트로 묶어놓고.”

 “왜? 안전벨트는 갑자기 왜?”

 “날아가고 싶지 않으면 매.”

 “응?”

 “한 놈이 따라붙었어.”

 “뭐?”

 여자를 고정시킨 뒤, 안전벨트를 매며 똥파리가 뒤를 돌아본다. 차 한 대가 따라오고 있다.      

 안 돼! 걘 내 꺼야. 안 돼. 걘 안 돼. 절대 안 돼.

 52조에게 더 이상의 계획은 없다. 그냥 뒤쫓을 뿐이다. 구해야 한다는 일념도 없고, 일념이 없는 것도 아니다. 두려운 것도 아니고, 두려움이 없는 것도 아니다. 아무 생각이 없다. 그냥 쫓는 것이다. 자석에 이끌리는 철가루처럼, 하경이란 두 글자에 집착할 뿐이다.

 요금소를 벗어난 벤츠가 오른쪽으로 코너를 돌아 시야에서 사라진다. 코너에서 속도를 줄이지 못한 52조가 교차로의 중앙선 표시봉 13개를 부러뜨리며 휘청거린다. 샛길에서 기다리고 있던 벤츠가 코너를 돌고 막 샛길로 접어든 52조의 차 옆면을  들이받는다. 들이 받힌 52조가 사선을 그리며 반대편 가로수에 부딪친다. 벤츠를 쫓느라 안전벨트를 매지 못했던 52조가 밖으로 나와 쓰러지며 피를 토한다. 52조의 배에서 피가 흘러내린다. 벤츠가 52조의 뒤에 차를 세운다.

 “왜 세워? 그냥 가지?”

 “저 놈이 니 얼굴을 알아. 어때? 그냥 갈까?”

 “그, 그래?”

 “갔다 와.”

 오 사장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똥파리가 둔기를 들고 차에서 내린다.

 그냥 차로 깔아버리지 꼭 나를 시키고 지랄이여, 지랄이!

 똥파리가 조그만 소리로 구시렁거린다.

 “잠깐! 숨어!”

 “응? 왜? 뭣이여?”

 “숨으라니까!”

 똥파리가 기다시피 풀숲으로 몸을 낮춘다. 그사이 톨게이트를 나온 차가 쏜살같은 속도로 사라진다.

 “됐어. 빨리 해!”

 니미럴! 기냥 차로 깔아버리면 될 것을 왜 꼭 구찮게!

 똥파리가 기절해있는 52조의 머리채를 움켜쥐곤 둔기를 높이 치켜들며 투덜거린다.

 안 되겠다. 경찰차야. 빨리 타!

 오 사장이 다급하게 외치곤 차를 똥파리의 앞으로 댄다. 약 1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경찰차의 불빛이 번쩍이고 있다.

 “이놈은? 이놈은 어떡 허라고? 아직 한 대도 못 때렸는디? 아직 안 죽었어!”

 “차에 태워.”

 “니미! 그냥 깔아버리자니께!”

 똥파리가 씨불이며 52조를 끌어 트렁크에 쑤셔 박는다.

 “너도 들어가.”

 “뭐여?”

 “그래야, 그놈을 묶을 거 아냐? 빨리!”

 “이런! 옘병할!”

 52조와 똥파리가 트렁크에 들어가자 전조등을 끈 벤츠가 밭길을 달린다. 오 사장은 무리하지 않고 낮은 속도로 포복하듯 직진한다. 이 정도 수고는 아무것도 아니다. 벤츠가 가는 길에는 그들만의 목적지가 있다. 두 사람에게는 개미지옥이 되고, 다른 두 사람에게는 파티장이 될 아늑한 은신처가.     

 트렁크 속의 두 남자는 숨이 막힌다. 서로의 입 냄새 때문에 숨이 막히고, 서로의 피 냄새 때문에 숨이 막힌다.

 이런 육시럴 새끼가 날 트렁크에 밀어 넣어? 거기다가... 이 씨발 놈이 아까부터 너, 너, 하며 계속 명령조여. 니미! 어유, 이 개새끼! 이 새끼는 뭔데 쫓아와서 사람 구찮게 혀!

 오 사장에 대한 분노를 52조에게 풀며 좁은 트렁크 안에서도 똥파리는 능수능란하게 52조를 고문하며 묶는다. 정신을 잃은 52조는 꿈을 꾼다. 자신의 입술을 덮은 것이 하경의 입술이라고 느낀다. 혀를 내밀어 하경의 입술을 탐해보지만 이상하리만치 거친 느낌이다. 하경의 입술이 왜 이렇게 터 있을까? 꿈속의 52조는 어리둥절하다. 똥파리가 52조의 입과 몸에 테이프를 감는다. 테이프를 다 쓰기로 작정했는지 감고 또 감는다. 꿈속의 52조는 도발적인 하경을 체험한다. 하경이 52조의 몸 구석구석을 더듬는다. 팔, 다리, 엉덩이, 그곳까지. 자신의 성기를 쥔 하경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52조는 기쁨의 신음소리를 낸다.

 하경아!

 하경아!

 그들이 도착한 곳은 문경 대련산 근처의 이름 없는 산이다. 산은 그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해 주었다. 더럽게 깜깜했고, 더럽게 음습했고, 더럽게 깊었다. 등산로로는 절대 선정될 수 없는 암흑이었다. 이곳은 오 사장이 점찍어두고 자주 애용하던 곳이다. 불법 투기된 컨테이너 박스들이 널브러져 있었고, 갖가지 공업 자재들이 버려져있었다. 오 사장에게는 철물점이나 만물상 같은 곳이다. 컨테이너 박스들은 칠이 벗어져 붉은 살이 너덜너덜했고, 터지고 부서져 흉물스러웠지만, 그들은 만족스러웠다. 그들이 구상하는 파티장으로는 최적의 장소인 것이다.


벤츠가 무명산으로 내달릴 동안 여자가 정신을 차린다. 여자의 눈에서 끊임없는 눈물이 흘러내린다. 자신의 인생에 이런 날이 있으리라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엄마가 보고 싶다. 함께 있을 땐 결코 사이좋은 모녀가 아니었지만, 두려움 속에서 유일하게 생각나는 사람이 엄마였다. 그 어떤 것도 생각할 겨를이 없다. 엄마가 보고 싶었고, 무서웠다. 여자가 한기를 느낀다. 오줌을 싼 것이다.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어설 여지도 없다. 무섭다. 그냥 무섭고, 마냥 무섭다. 죽더라도 끔찍한 일을 당하지 않고 죽기를 바란다.

 “정신이 들었나 보네?”

 운전하던 남자가 여자를 돌아보며 말을 건넨다. 자상한 어투다. 그래서 더 두렵다. 여자가 소리 없이 운다. 절망적인 비명도 지르고 싶지만, 공포로 숨이 막혀 목소리를 낼 수도 없다.

 “아가씨, 좀 진정하면 좋겠는데.”

 타이르듯 을러대는 낮은 협박에 여자가 숨을 삼킨다. 한기와 두려움에 몸이 떨리지만 떨 수도 없다.

 “더 자라! 도착하려면 아직 멀었다.”  

 음침한 듯, 인자한 듯, 알 수 없는 남자의 목소리에 여자는 정신이 아득해진다. 곱게 죽지는 못 하겠구나, 라는 생각이 스치듯 지나간다. 절망과 공포 속에서 여자가 다시 정신을 잃는다.      

 “니미! 답답해 죽는 줄 알았구먼. 아, 왜 나꺼정 트렁크에 밀어 넣고 그랬댜?”

 열린 트렁크에서 똥파리가 불평을 쏟아냈지만 오 사장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다.

 “아, 나꺼정 트렁크에 들어갈 필욘 없었잖여. 첨부터 차로 깔아버렸으면 됐을 거 아녀?”

 눈치를 보던 똥파리가 풀 죽은 어조로 따진다.

 “차에 피 튀잖아. 그렇게 되면 잡히는 건 시간문제고.”

 “아! 그렇지? 그래, 그랬구먼! 그럼 그렇지. 역시 오 사장은 똑똑혀! 미안혀! 내가 오해했어.”

 똥파리가 멋쩍은 웃음을 웃으며 머리를 긁는다. 열린 트렁크 속의 남자는 반 실신 상태였고, 하의가 흐트러져있었다. 트렁크를 들여다보던 오 사장의 얼굴에 비웃음이 번진다. 트렁크를 무시한 오 사장이 뒷좌석의 여자를, 마치 아기를 안 듯, 부드럽게 안아 올린다.     

 “이 놈은 어떻게 혀?”

 “끌고 와. 그냥 죽이면 재미없잖아.”

 “그런가?”

 똥파리가 입맛을 다신다.

 컨테이너 박스 안엔 이불, 의자, 생수통과 술병 그리고 온갖 쓰레기들이 널브러져 있다. 오 사장이 발로 이불을 끌어와 그 위에 여자를 눕힌다. 벌벌 떨면서도 여자가 한사코 일어나 앉으려 한다. 테이프로 돌돌 말린 누에고치 같은 여자가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한다. 여자를 일으켜 앉힌 후 오 사장이 휴대폰 불을 여자의 얼굴에 비춘다. 기대했던 얼굴이 아니지만 상관없다고 오 사장이 생각한다.

 “어때? 이뻐?”

 똥파리가 입 냄새를 풍기며 얼굴을 들이민다. 오 사장이 얼굴을 찌푸리며 뒤로 물러난다. 불쾌해하는 오 사장의 표정을 보고 똥파리가 순간 어리둥절해한다. 아직도 내 몸에 똥이 묻어있나? 생각은 잠시, 똥파리가 여자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어? 이년, 아까 그년 맞어? 쥐어 터져서 얼굴이 부어서 그런가?”

 병신!

 오 사장이 속으로 똥파리를 비웃는다.

 “그놈도 기집애 옆에 묶어.”

 “이놈이 애인인가 본데? 눈깔 뒤집힌 채로다 뭐라고 뭐라고 씨불이던데?”

 미리 준비해놓은 쇠사슬을 컨테이너의 뚫린 틈으로 밀어 넣어 고정시킨 후 여자와 남자를 묶으며 똥파리가 지껄인다. 오 사장이 휴대폰을 들이밀며 흥미롭다는 듯이 둘을 바라본다.

 휴대폰 불빛에 드러난 서로의 얼굴을 본 52조와 여자가 경악을 금치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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