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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y rain Dec 12. 2021

[장편소설] 톨게이트 19.

19. 그 일이 있기 전, 톨게이트 사람들.

 단양 톨게이트로 발령받아 온 지 2년째. 세윤은 요금징수원들만 생각하면 이가 갈린다. 버러지 같은 것들이, 꼴에 자기들끼리는 서로를 챙기면서 똘똘 뭉친다. 우유부단한 소장, 자기일 외엔 관심이 없는 직원들.

 세윤이 생각하기에는 죄다 못난 것들뿐이고, 맘에 안 드는 것투성이다. 이렇게 비전 없고 고루한 곳에서 아줌마들하고 푼돈이나 계산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면 절대 이 직장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아줌마들.... 못난 것들이 자신들의 치부를 조금이라도 들키면 합세해서 달려들었다. 가재는 게 편이라는 속담이 딱 들어맞는 것들이었다. 고분고분하게 명령을 들어야 할 것들이 늘 토를 달고 나섰다. 하도미는 그중에서 가장 이 갈리는 계집이다. 까칠한 성격에, 가시같이 생긴 얼굴. 항상 자신의 말에 이의를 제기하는 버르장머리. 게다가 이하경, 하경만 생각하면 괜히 싫었다. 하경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더 싫었다. 

 세윤이 속옷 차림으로 자신의 아파트를 돌아다닌다. 소파에 앉아 피자를 먹으며 TV를 보던 세윤이 피자 조각을 내팽개치고 화장실로 들어간다.

 이런 미친! 피자를 먹다니! 

 목구멍 깊숙이 손가락을 넣어 구역질을 한다. 토사물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초조해진다. 소화되기 전에 빨리 토해야 하기 때문이다. 목과 가슴과 배에 힘을 주어 구역질을 반복한다. 얼굴 핏줄이 불거지며 침이 늘어져 변기 위에서 흔들린다. 아무리 반복해도 음식물이 올라오지 않는다. 주방으로 가 소금물을 만들어 마신다. 짜고 씁쓸한 맛이 목구멍을 맴도는가 싶더니 서서히 욕지기가 올라온다. 손가락을 집어넣고 구역질을 반복하며 배에 힘을 주자, 위액과 섞인 피자가 올라온다. 먹고 싶은 욕심 때문에 씹지도 않고 삼킨 피자가 덩어리째 올라와 변기 속으로 떨어진다. 변기의 물이 튀지만, 구토의 고통 때문에 더러움을 느끼지도 못한다. 물을 내리고 양치질을 하며 거울 앞에 선다. 토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조그맣고 갸름한 얼굴, 약간 불거졌지만 반듯하고 잘생긴 이마, 짙지도 옅지도 않은 눈썹, 적당히 크고 쌍꺼풀진 눈, 도독하게 올라온 콧대, 육감적으로 도톰한 입술. 예쁘고 섹시한 얼굴이라고 생각한다. 거울을 응시하며 자신에게 빠져있던 세윤이 머리를 좌우로 흔들자 머리카락이 날린다. 목을 가린 긴 머리카락이 갑자기 칙칙하게 느껴진다. 순간 머릿속에 하경의 얼굴이 떠오른다. 하경은 산뜻해 보이는 짧은 단발머리를 하고 있다.

 흥! 걔하고 나하고 다를 게 뭐가 있어? 몸매는 내가 더 죽이는데. 얼굴도 이 정도면 수준급이고. 

 세윤이 속옷을 벗어던지고 거울을 들여다본다. 볼륨 있고 탄력 있는 몸매다. 자신의 몸을 탐했던 남자들이 생각난다. 단양으로 온 이후로 남자를 만나보지 못했다는 것이 새삼스러워 한숨이 나온다. 함께 근무하는 남자들은 죄다 멍청해 보였다. 멍청할 뿐만 아니라 용기나 패기도 없어 세윤에게 접근하기는커녕 말도 제대로 못 붙였다. 

 한성우. 호감 가는 얼굴과 자신감 있는 태도, 재치 있는 말투. 그 모든 것을 젖히고라도 떨쳐버릴 수 없는 매력, 의대생.

 유감스럽게도 한성우는 하경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흥! 그깟 싸구려 계집애를!    

 

 “여보세요? 성우 씨!”   

 "성우 씨, 아버님 일로 상의할 게 있어서요."

 망설임 없이 전화를 걸어 덫을 놓는다.  


 샤워기의 물을 틀며 세윤이 눈을 감는다. 오늘은 성우를 잠자리로 끌어들이고야 말겠다는 생각에 몸이 달뜬다. 기분 좋은 생각과 계획에 한껏 고조돼있던 세윤이 깜짝 놀라며 눈을 뜬다. 성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 남자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피부가 희고 선이 고왔던 남자. 잠깐의 마주침에서 설렘을 준 남자, 010-K643-6431. 이름은 모르지만 단번에 외워버린 남자의 전화번호다. 아직 전화를 걸어본 적은 없지만, ‘언젠간’이라는 희망을 품게 만든 번호다.

 뭐 하는 남자일까? 연약한 듯 섬세하고, 무심한 듯한 눈 속에 갈망을 담고 있던 남자. 잘생긴 얼굴과 피아니스트처럼 길고 아름다웠던 손가락.

 그 남자라면 하룻밤의 잠자리도…….

 그의 아름다운 손가락이 피아노 치듯 내 몸을 터치한다면...

 터무니없는 비약과 상상에 고개를 저어 보지만, 몸이 달아오른다. 생각이 쌓일수록 세윤의 생각은 결심으로 굳어진다. 언젠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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