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ilvery rain Dec 16. 2021

[장편소설] 톨게이트 23.

23. 그날의 톨게이트 1.

「일엽 씨 잘 지냈어요? 휴직했다는 얘기 들었어요. 만날 수 있을까요?」

 장상근 대장의 부인인 인희의 전화를 받은 일엽은 고민에 빠졌다. 상냥하지만 굳건한 목소리였다.      

 장례식 이후로 처음 만난 인희의 얼굴은 야위어있었고, 혈색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단호한 의지가 엿보였다. 

 “죄송합니다. 먼저 연락드렸어야 하는데.”

 “아무나 연락하면 어때요? 어차피 같은 마음이었을 텐데.”

 “네.”

 “찬우랑 명우도 잘 있습니까? 작년 크리스마스에 보고 못 봤는데, 많이 컸겠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잠시 말이 없던 일엽이 아이들의 안부를 묻는다.

 “네. 한창때니까, 잘 크고 있어요.”

 “아이들은..... 어떻게.....”

 “잘 이겨내고 있어요. 좋은 점이 있다고 하면 이상하려나? 아이들이 철이 많이 들었어요.”

 “네. 그렇군요.”

 “일엽 씨는? 일엽 씨도 잘 지냈어요? 왜 그동안 연락도 없었어요?”

 “죄송합니다. 49재는 잘 치르셨죠? 찾아뵙지도 못하고.”

 “마음은 함께였다는 거 알고 있어요.” 

 “죄송합니다.”

 “뭐가 자꾸 죄송해요?”

 “그냥, 여러 가지로.”

 “일엽 씨! 일엽 씨 얘기 들었어요.”

 “네?”

 “일엽 씨, 왜 인생을 낭비하고 그래요? 일엽 씨하고 상관없는 일인데. 그러지 말아요. 그 사람 죽음이 어떻게 일엽 씨 탓이에요?”

 “죄송합니다.”

 “그 사람은 늘 죽음을 염두에 두고 있었어요. 생명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거는 것은 당연하다고 했어요.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 죽음이 당연하다는 건 아니지만. 그만큼 그 일이 죽음과 가까웠다는 거예요. 그 사람은 그냥 자기 길을 간 거예요. 자기가 할 일을 하다 그렇게 된 것뿐이라고요. 그러니까 일엽 씨는 일엽 씨 자리로 돌아가요. 거기서 뭐 하고 있어요? 일엽 씨는 일엽 씨 할 일을 해야지요, 안 그래요?”    

 인희가 농담하듯 웃으며 일침을 놓는다.

 생사고락을 함께하며 하루에도 몇 번씩 사선을 넘나드는 산악구조대원들은 서로를 가족처럼 생각한다. 크리스마스나 명절도 함께 보낼 때가 많기 때문에 그들은 서로의 가족들도 챙기곤 했다. 인희는 명절 같은 때 음식을 보내오거나 아이들과 함께 면회를 오곤 했다. 그래서 일엽은 인희를 친 형수처럼 여겼다. 장상근 대장의 죽음 이후로 6개월, 자신의 슬픔을 추스르기도 힘든 시기인데 인희는 일엽을 위로하고 걱정했다. 이젠 미안함에 고마운 마음까지 더해진다. 


 한사코 마다하는 인희를 일산까지 바래다주고 북한산으로 향한다. 차로 도는 거리지만 네 개 시에 걸쳐있는 북한산은 역시 넓다. 자신의 터전이었던 인수봉이 구름 속에 가려져있다. 돌봐야 할 아이 같기도 하고, 섬겨야 할 어른 같기도 한 모습이다. 하지만 아직은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언젠가는 다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도미의 말 그대로였다. 팀장의 머리스타일이 자신과 똑같았다. 하경은 불쾌함보다는 의구심이 먼저 들었다. 자존심이 지나쳐 거만하고 도도한 팀장이 왜 자신과 똑같은 머리스타일을 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놀리기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키도 비슷하고 몸매도 비슷한 팀장은 자신과 쌍둥이 같은 모습으로 꾸미고 있었다. 그다음으로 든 생각은 불쾌감과 창피함이었다. 당장이라도 머리스타일을 바꾸고 싶었다.

 회의실로 들어가기 전 하경이 부랴부랴 고무줄로 머리를 묶는다. 

 “조만간 CS평가가 있을 겁니다. 지적받는 일 없도록 해 주세요.”

 “그놈의 CS평가, 늘 있는 건데 뭐 새삼스러운 거 있나?”

 CS평가가 있을 거라는 세윤의 말에 한바탕 한숨이 지나갔고, 이에 지숙이 한 마디 덧붙인다.

 “CS평가에 대비해 제가 몇 가지 지적한다면....” “하도미 씨! 하도미 씨는 하도미 씨 하는 일이 뭐라고 생각해요?” 잠시 말을 멈췄던 팀장이 그녀들을 둘러보다 도미를 가리키며 묻는다. 

 “네? 왜 갑자기 저한테?”

 “하도미 씨 하는 일이 뭐냐고요?”

 “요금 받는 거죠.”

 “단순히 그거밖에 없어요?”

 “그럼 또 뭐가 있어요? 영수증 주는 거?”

 “흥! 그러니, 그 모양이지.”

 세윤이 혼잣말하듯 중얼거린다.

 “네?”

 “요금징수원은 톨게이트의 문을 담당하고 있는 거예요. 고객들이 처음 만나는 고속도로 영업소의 직원이라는 거죠. 즉, 고속도로 영업소를 대표해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그런 서비스를 담당하는 사람이 그렇게 하고 다녀서 되겠어요?”

 도대체 저 여자, 무슨 말을 지껄이는 거야? 

 세윤의 말에 기가 막힌 도미가 하경과 지숙을 쳐다보다 세윤을 쏘아본다.

 “좀 알아듣게 말씀해주실래요? 제가 뭐가 어떻다는 거죠?”

 “그래요, 팀장님 도미 이만하면 깔끔한데 왜 그러세요?”

 불쾌해진 도미가 따지자, 지숙이 거든다.  

 “도미 씨가 직접 생각해봐요. 그 정도 머리는 있을 거 아녜요?”
  “아뇨! 모르겠는데요. 말씀해주세요.”

 “도미 씨 머리스타일의 정체가 뭐예요? 커트예요? 단발이에요? 아니면 좀 묶든가! 커트도 아니고 단발도 아니고. 그리고 화장도 좀 제대로 하고 다니라고 몇 번이나 말했어요?”

 “화장했는데요! 그리고 머리스타일에 대해 지적하셨는데, 지금 팀장님 머리스타일이나 내 스타일이나 다를 게 뭐가 있다고 그래요?”

 “도미 씨 머리스타일하고 내 머리스타일이 어떻게 같아요? 도미 씨 머리는 삐쭉빼쭉하고 덥수룩하고, 내 머리스타일은 깔끔하고 세련됐는데. 도미 씨는 드라이할 줄도 몰라요?”

 “도미, 이쁘기만 한데 뭘 그래요? 고객들도 도미 친절하다도 하더구먼, 진상들 빼고.”

 “알겠어요. 드라이는 그렇다 치고. 그리고 또 뭐요?”

 지숙이 도미의 편을 들고 나서지만 도미가 딱 잘라 묻는다.

 “그리고 화장했다고 하는데, 입술 색깔이 그게 아니잖아요! 빨간색으로 정해진 거 몰라요?”

 “이 보세요! 팀장님!”

 “뭐요?”

 “지금 팀장님이 지적하고 있는 거, 다 팀장님 생각 아닌가요? 제가 그런 걸로 지적받은 적은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그때 지적 안 받았다고 이번에도 지적받지 말란 법 있나? 그리고 명백히 CS평가 항목에 있는 사항들인데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요? 하라면 그냥 좀 할 것이지. 평가 잘 받으면 도미 씨한테도 좋은 거 아닌가?”

 “CS평가 항목에는 붉은 계통의 립스틱이라고 했지, 빨간색이라곤 안 쓰여 있잖아요. 저희가 꼭 립스틱 색깔까지 팀장님 허락받고 발라야 되는 건 아니잖아요. 그리고 친절응대, 친절 응대하는데, CS에서 말하는 친절 응대해서 우리한테 남는 게 뭐가 있어요? 골병밖에 더 있어요? CS 잘 받으면 뭐해요? 좋은 건 공사 직원들뿐인데. 우리가 CS 잘 받으면 점수 잘 받고, 성과급 올라가는 건 공사 직원들뿐이잖아요. 그러니까 이렇게 닦달하는 거고요.”

 세윤이 도미를 째려보다 콧방귀를 뀌며 위아래로 훑어본다. 세윤의 반응에 모멸감을 느낀 도미가 마주 쏘아본다. 

 “제대로 하라면 할 것이지, 왜 그렇게 말이 많아요? 도미 씨 매번 이런 식이면 재계약 없어. 알아요?”
  “네! 알겠어요! 저도 이런 거지 같은 일 오래 하고 싶지도 않아요. 어차피 하이패스 전면 시행되면 우리는 폐기처분 아닌가요? 왜요? 오늘 당장 그만둬 드릴까요? 그리고!”

 “왜? 또 뭐요?”

 “반말을 하려면 끝까지 반말을 하고, 존댓말을 하려면 끝까지 존댓말을 하지, 왜 반말, 존댓말 섞어 가면서 사람 더 열 받게 해요?” 

 “뭐야? 이 싸가지없는 게!”

 “야! 싸가지는 니가 없지, 내가 없니? 이 한국 땅에서는 엄연히 내가 너보다 언니야. 싸가지를 날로 처먹은 게! 쥐꼬리만 한 권력, 더럽게 휘두르네!”

 “이게, 어디서 감히!”

 도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세윤이 도미의 앞에다 업무일지를 던지며 씩씩거린다.

 “흥! 이게? 왜? 한판 붙어볼래?”

 세윤이 섣불리 덤비지 못하고 도미를 노려본다. 격투기로 다져진 도미의 몸을 조각이라도 낼 것 같은 표정이다.

 언니! 도미야!

 “도미야, 니가 참아!”

 잠자코 듣고 있던 하경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도미의 팔을 잡고, 지숙이 도미를 막아서며 만류한다. 근심 어린 지숙과 하경의 얼굴을 보자 도미의 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라온다. 자신이 그만두면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고생이 돌아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도미와 대치하고 있던 세윤도 더 이상 어찌할 수 없었는지 이 상황을 모면할 궁리를 찾는다. 도미가 그만두면 지금 당장 곤란을 겪는 것은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만 둘 테니 후임자 뽑으세요.”  

 흥! 

 도미의 말에 콧방귀를 날린 세윤이 회의 종료도 안 알리고 소리 나게 문을 닫고 나가버린다.   

 “언니 정말 그만 둘 거예요?”

 “응. 그렇지 않아도 조만간 그만두려고 했어. 시험 준비도 해야 되고.”

 “그래요?”

 하경이 서운함을 내비친다.

 “언니 미안해요.” “너랑 지숙 언니만 아니면 벌써 그만뒀어.”

 “그래, 잘 생각했다. 이런 일, 너한테 안 어울린다. 너처럼 정의감이 펄펄 끓는 애는 경찰 같은 거 해야 돼. 나랑 하경이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어차피 하경이도 내년이면 학교로 돌아갈 거고, 난 왕고참인데 무서울 게 뭐가 있겠니?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있으니까 괜찮아.”

 “언니 고마워요. 그렇게 얘기해줘서. 우리 앞으로도 계속 만날 거니까, 서운해하지 말자. 그리고 당장 그만두는 것도 아니잖아. 그렇지? 하경아?”

 “그래요.”     

이전 07화 [장편소설] 톨게이트 22.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