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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y rain Dec 19. 2021

[장편소설] 톨게이트 24.

24. 그날의 톨게이트 2.

「단양으로 온 지 3개월, 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맞이했다. 산과 물이 맑은 단양이지만, 그 아름다움을 즐길 여유가 내게는 없다. 휴학을 하고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던 내게 이곳은 꿈의 직장이었다.....

 이곳을 그만둘 때가 된 것 같다. 굳이 더 다닐 이유가 없을 것 같다. 

 그를 의심하는 것은 아니다. 내 자격지심 때문이다. 아직은 내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 사랑이라고 생각되기 전에 그만둘 것......」      


 10월 28일. 밤 근무. 틈 날 때마다 끼적거리던 노트를 덮고 하경이 옆 부스를 돌아본다.

 좀 전에 한 대의 차량을 보낸 도미는 여전히 조용하다. 다른 때 같으면 고개를 빼고 말을 걸었을 도미가 조용하다는 것은 공부를 하고 있거나, 생각에 빠져 있거나 졸고 있다는 것이다. 마음이 복잡할 도미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하경이 다시 노트를 편다. 밤 열한 시가 다 되어가는 시각이지만 졸리지 않다. 잠을 쫓기 위해 마신 커피 덕분이다.

 휴대폰 벨이 울리며 액정에 불이 들어온다.

 「엄마」

 거절 버튼을 누르고, 대신 엄마가 보내 놓은 메시지들을 본다.

 「하경아, 왜 전화를 안 받아? 보고 싶다. 우리 딸!」

 「하경아, 네가 전화를 받지 않으니까 메시지 남길게.... 사랑하는 내 딸, 하경아... 」

 「사랑하는 내 딸아! 하경이는 세상 누구보다도 강한 아이라는 것을 엄마는 알고 있어. 사랑한다.」

 사랑이라는 단어밖에 할 말이 없는 듯, 엄마의 마지막 메시지는 사랑만을 전하고 있었다. 하경이 엄마라는 단어를 손가락으로 쓰다듬는다. 갑자기 목소리를 듣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잠시 주저하고 있는 사이, 휴대폰이 새로운 메시지 수신을 알린다. 메시지에 손가락을 가져가던 하경이 맹렬한 불빛에 방해를 받는다. 평일, 차가 없는 어둠 속이라 불빛이 유난히 도발적이다.


 01다 34XX. 벤츠.


 삼분의 이 가량 내려진 검은 유리창에서 손이 나온다. 크고 근육이 불거진 손이다. 표를 내민 남자는 정면을 바라보고 있어서 얼굴 윤곽이 보이지 않는다. 대신 옆자리에 앉은 남자가 탐색하듯 하경을 흘끔거린다. 불쾌한 기분이 들지만 내색하지 않고 거스름돈을 내어준다. 벤츠가 서서히 사라진다. 요금소를 빠져나가는 벤츠에서 음악소리가 작게 들려온다. 엄마가 불러주곤 하던 자장가다. 엄마가 섬 그늘에.....      

 벤츠를 보낸 하경이 새로 수신된 메시지를 클릭한다.


 「장소정 씨 보호자 연락바람.」


 예기치 못한 문자에 하경이 당황한다.     

 “여보세요?”

 낯선 목소리다.  

 “장소정 씨 핸드폰 아닌가요?”

 휴대폰을 쥔 하경의 손이 떨린다.

 “따님이세요?”

 휴대폰 너머가 시끄럽다. 여러 소음들 속에서 연락됐어! 연락됐어!라는 소리가 들려온다.

 “네. 왜요? 우리 엄마는요?”

 “여기 병원인데요. 장소정 씨가 교통사고로 실려 오셨습니다.”


 하경이 울며 요금소 부스를 뛰쳐나간다. 도미가 하경을 부르자 하경이 발을 동동 구르며 울음을 삼킨다. 도미가 어딘가로 전화를 하고, 하경이 영업소로 달려가고, 팀장은 못마땅해하고, 소장이 하경을 달래고. 그렇게 이십 여분이 흐른 후 하경은 도미의 배웅을 받으며 성우의 차에 오른다.

 하경의 빈 요금소를 세윤이 채운다. 부루퉁한 세윤은 불만이 많다.

 아무리 교대자가 없어도 그렇지, 어떻게 날 여기에 앉혀?

 들으라는 듯이 세윤이 큰 소리로 투덜거린다. 이 자리는 고속도로 영업소 최하층민인, 요금 징수원의 자리가 아닌가! 어떻게 나를 이 자리에 앉힐 수가 있지? 소장이 미쳤거나, 잘리고 싶어 환장한 거라고 세윤은 생각한다. 아빠가 사장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 자리에 자신을 앉힌 소장의 만용에 실소가 나온다. 날이 밝으면 모두 가만 두지 않겠다고 세윤이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고속도로를 끝으로 일엽이 톨게이트 진입로로 접어든 시각은 새벽 2시 32분. 그 시각은 요금소 여직원이 도로 위를 끌려가던 시각이다. 일엽의 눈에 요금소가 보이기 시작한 시각은 새벽 2시 33분. 그 시각은 요금소 여직원이 벤츠에 태워진 시각이다. 일엽의 차가 요금소로 진입한 시각은 새벽 2시 34분이었는데, 그 시각은 벤츠가 톨게이트를 완전히 빠져나가 우회전해서 52조의 차를 기다리고 있던 시각이다.      

 한 개의 요금소에 불이 켜져 있다. 다른 요금소에는 진입 차단 바리케이드가 세워져 있다. 일엽이 서서히 속도를 줄이며 불이 켜진 요금소 입구로 들어선다. 그런데 요금소 안에 사람이 없다. 일엽이 잠시 기다린다. 10초가 넘어가는 시점에서 일엽은 망설인다. 그냥 지나가야 하나? 아니다. 그냥 지나갈 수는 없다. 지금껏 신호위반이나 과속 이외에 다른 범법행위를 저지른 적이 없다. 게다가 어찌 됐든 경찰 신분이니 더욱더 요금을 안 내고 갈 수는 없다.

 갓길에 차를 세우고 영업소로 걸음을 옮긴다. 그때 한 여자가 요금소로 뛰어든다. 요금소 여직원이 납치되고 채 5분이 안 지난 시각이다. 그 시각, 벤츠는 52조의 차를 들이박고, 52조는 생과사의 갈림길에 놓여있었다.

 요금소로 뛰어든 여자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있고, 다급해 보이고,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괜찮으십니까?”

 일엽이 묻자, 여자가 일엽의 팔을 붙잡으며 울음 섞인 목소리로 외친다.

 저 차! 저 차를 쫓아야 돼요.

 “네?”

 여자가 가리킨 곳엔 희뿌연 안개만 가득 차 있다.

 납치! 납치됐어요.

 “네?”

 팀장! 팀장이 납치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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