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ilvery rain Dec 20. 2021

[장편소설] 톨게이트 25.

25. 그날의 톨게이트 2.

 일엽의 차에 함께 오른 도미는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다. 

 “무슨 차였는지 기억나십니까?”

 “아뇨. 너무 어둡고 안개 끼고, 비도 와서...... 검은색 차인 것 같았어요.”

 “신고는 하셨습니까?”

 “아뇨. 정신없이 나오느라.”

 “신고부터 합시다.”

 그들의 차가 교차로를 돌아 내달릴 때 벤츠는 샛길에서 숨죽이고 있었다. 

 “어떤 종류의 차였는지도 기억 안 나십니까?”

 새벽 세시가 다 되어가는 시각, 거리엔 차가 없다. 

 “어떤 종류요?”

 “네. 승용차나 SUV나, 그런 거.”

 “승용차였어요. 두 대, 두 대였어요. 그 차가 가고 난 다음에 다른 차가 따라갔어요. 그 차도 검은색이었는데.”

 “그래요? 이상하네. 차 불빛도 안 보이는데. 다시 가 봅시다.”     

 도미의 신고를 받고 톨게이트를 기점으로 반경 20km 이내에 경찰력이 집중되었다. 밭길을 벗어난 벤츠가 산길을 달리고 있을 때였다. 벤츠가 경찰력의 범위를 벗어난 시점은 일엽의 차가 톨게이트 부근을 다시 수색하고 있을 때였다.      

 “저기! 숲 쪽으로 뭐가 있는 것 같아요.”

 도미의 지적에 따라 일엽이 국도변의 샛길로 접어든다. 샛길의 초입에 나무를 들이받은 검은색 승용차가 방치되어 있다. 차는 조수석과 보닛이 찌그러진 채 버려져 있었다.

 “저 차 맞나요?”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 검은색은 맞아요. 둘 다 검은색이었어요.”

 “나오지 마시고 경찰에 다시 신고해주세요.”

 상향 등을 켜고 승용차의 주변 탐색을 마친 일엽이 밖으로 나가며 도미에게 말했다. 가죽장갑을 낀 일엽의 손에는 손전등이 들려있다.   

 53 도 41X4 검은색 소나타 안에는 아무도 없다. 운전석에 다량의 혈흔이 있을 뿐이다. 손전등을 비추며 조수석과 뒷좌석, 바닥과 트렁크까지 살폈지만, 아무것도 찾을 수 없다. 손전등으로 바닥을 비추자, 핏자국과 발자국, 누군가가 쓰러졌던 흔적이 보인다. 흔적을 밟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뒷걸음질 쳐 자신의 차로 돌아간다. 

 “아무도 없네요.”

 “어떻게 된 거죠?”

 “앞 차를 쫓다가 저렇게 된 거 아닐까요? 오른쪽 옆구리를 들이 받힌 것 같은데. 암튼 경찰이 올 때까지 기다려봅시다.”

 경찰들은 쉽게 오지 않았다. 충주와 제천, 문경과 영월, 영주 방면으로 흩어진 경찰들이 톨게이트와 대로 주변만을 검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동을 끄고 있던 일엽이 다시 시동을 건다. 사무복 한 겹만 입고 있던 도미가 몸을 떨고 있었기 때문이다. 

 “추우십니까? 이거 입으세요.”

 괜찮아요,라고 대답하려던 도미가 순순히 옷을 받아 입는다. 누가 봐도 자신의 모습이 괜찮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교대 준비를 하던 도미가 창문으로 팀장의 모습을 바라본 것은 좋은 의도가 아니었다. 팀장의 근무태도를 보고 싶어서였다. 엄밀히 말하면 졸고 있는지 아닌지 감시하고 싶어서였다. 작은 꼬투리라도 잡고 싶은 옹졸한 마음이라고 할까? 그런데 도미의 시야에 들어온 요금소의 풍경은 그야말로 살풍경이었다. 도살된 가축처럼 처참하게 끌려가던 팀장의 모습은 모든 미움이나 앙심을 날려 버렸다. 도미는 무작정 달렸다. 구해야 한다는 일념뿐이었다.      

 “친한 분이었나요?”

 데려다주는 차 안에서 일엽이 물었다. 둘만이 있는 차 안이 부담스럽기도 했고, 도미의 마음을 진정시킬 필요도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아뇨.” 잠시 말을 끊었던 도미가 말을 잇는다. “전혀 친하지 않았어요.”

 “네....”

 “그래서 더 걱정돼요. 미워했는데, 어떻게 될까 봐. 그렇게 되면 구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너무 클 것 같아서.”

 “구할 수 있을 겁니다.”  

 “고맙습니다. 이렇게 도와주시고.”

 “아닙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선해 보이는 일엽의 옆모습을 보던 도미가 창밖으로 고개를 돌린다. 드문드문 자리한 상가들 사이로 가로등과 신호등 불빛이 나타났다 사라져 갔다.

 “그런데.... 혹시, 저 아시겠어요?”

 잠시 적막이 흐른 후, 도미가 주저하다 묻는다. 

 “네? 아, 요금소에 근무하시는 분 아니십니까?”

 “네, 맞아요. 그렇죠, 요금소에 근무하는 사람 맞아요. 그리고 또.... 지난번에 읍내에서도 만났었는데.”

 “아! 그렇군요. 기억납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쪽을 아냐고요?”

 “네.”

 “이 일을 하다 보면 많은 사람들을 만나거든요. 그런데 유독 기억에 남는 사람들이 있어요. 아주 좋은 사람이거나, 아주 나쁜 사람이거나, 그런 사람들요.”

 “그렇습니까? 그럼, 저는......?”

 “물론 앞쪽에 해당되죠.”

 “앞쪽이라면......?”

 “좋은 사람.”

 “왜죠?”

 “요금소를 지나는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하층민으로 봐요. 그래서 하대를 하고, 욕을 하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해요. 자신들의 잘못을 지적하면 돈을 던지거나 물건을 던지기도 하고요.”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까?”

 “네. 그것도 아주 많아요. 누군가에게 당한 분풀이를 저희들한테 하는 거죠. 요즘 유행하는 그거 있잖아요. 갑의 횡포. 어디서든 갑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을들을 찾아 화풀이를 하는 거죠. 갑과 을의 숨바꼭질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데 그런 것과는 딴 세상인, 그런 사람들이 있어요. 그쪽처럼. 그쪽은 너무나 당연한 일을 했다고 생각하겠지만 늘 당하고 사는 저희한테는 그게 더 이상한 거죠. 특이한 거고. 그래서 기억이 나는 거예요. 드문 경우니까.”

 “제가 어떤 일을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제게 친절하게 말씀해주셨고, 먼저 인사해주셨고, 제가 떨어뜨린 돈을 주워주셨어요. 그리고 거스름돈이 맞지 않는데도 화내지 않고 그냥 가셨고요.”

 “그건 뭐…….”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시겠죠? 그렇지만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에요. 그 아무것도 아닌 일에 화내고, 열 내고, 욕하고, 폭력까지 서슴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요. 저도 그걸 이 톨게이트에서 일하면서 알게 되었고요.” 

 “그렇습니까? 몰랐습니다. 힘드시겠습니다.”

 “아니에요. 사람에 대한 기대를 안 하면 괜찮아져요. 그러다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되면 감동하고. 그걸 힘으로 이겨내는 거죠.”

 “네.”

 “아까 경찰하고 말씀하실 때 들었는데, 경찰이시라면서요? 어느 경찰서에 계세요?”
  “여긴 아니고. 일반 경찰과는 좀 다른 겁니다. 경찰 산악구조대라고.”

 “아!” 잠시 말을 멈췄던 도미가 다시 말을 잇는다. “멋지세요.”

 “휴직 중입니다.” 

 “네…….”

 휴직 중이라는 일엽의 말에 도미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일엽 또한 대화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어서 어색한 표정이 되어갔다.

 읍내로 접어든 차가 도미의 아파트를 찾을 때까지도 끊긴 그들의 대화는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  

 “여기서 내려주시면 돼요.”

 “네.”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차에서 내린 도미가 고개 숙여 일엽에게 인사한다. 따라 내린 일엽도 마주 인사하며 고개를 숙인다. 아파트로 걸어가던 도미가 아쉬운 마음에 돌아보니 일엽이 차 옆에서 도미를 바라보고 있었다. 도미가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후 일엽이 차에 오른다. 계단 창에서 일엽의 차가 단지 밖으로 나간 것을 확인한 도미가 쓸쓸히 계단을 오른다.  

이전 09화 [장편소설] 톨게이트 24.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