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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고와디디 Oct 07. 2021

두첼로스 출범기

첼로 입문기 <이 나이에 기어이 첼로를 하겠다고>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무한도전>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에서 유재석과 이적은 노래했다. “말하는 대로 될 수 있다고 그대 믿는다면. 도전은 무한히 인생은 영원히, 말하는 대로.”

내 경험에 비춰 볼 때, 말하는 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하지만 아무래도 말을 많이 하고 다니면 안 하는 것에 비해선 기회도 더 생기고 도움을 주는 사람도 더 많이 만나게 되는 것 같다. 첼로를 하고 싶다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다 얘기하고 다녔더니 추진력 좋은 친구가 학원을 알아보고 이끌어주었고, 좋은 친구와 같이 악기를 배우기 시작하니 배우는 과정에서의 어려움이나 고민들을 의논할 수 있다. 무엇보다 좋은 건 둘이라 자꾸 뭔가 새로운 도전을 함께 해볼 의욕도 용기도 생긴다.     

둘이 첼로를 시작한 뒤엔 친구에게 자주 말했다. 우리 열심히 배워서 투첼로스 같은 첼로 듀오가 되자고. 그럼 우리는 우리말로 ‘두첼로스’로 활동하면 되겠다고.

 레슨 중에 선생님께도 말씀드렸다. “선생님, 저희 나중에 듀엣 앙상블도 할 거예요. 벌써 이름도 정했어요. 두첼로스요!”

그냥 생각만으로도 즐거워서, 두첼로스라는 한국 아줌마 첼로 듀오를 생각만 해도 재미나서 우스개처럼 한 말이었는데, 선생님께선 “어머 그래요?” 하시더니 바로 그 자리에서 ‘에델바이스’ 합주 악보를 꺼내 주셨다. 가르치는 아이들이 연습하는 곡인데 두 분이 한 번 해보라며. (역시, ‘생각’을 ‘말’로 꺼내놓으면 예상치 못 했던 ‘행동’으로 이어진다.)     

학원에서 바로 악보를 한 부 더 복사했고, 그날 당장 두첼로스가 출범했다. 파트를 나누고, 활의 진행 방향을 통일하고, 템포를 정하고. 언제까지 파트별 연습을 해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

그리고 대망의 합주 날, 우리는 검은색 티셔츠에 검은색 마스크를 쓰고 학원 연습실에서 만났다. (우리의 모습 때문에 잠시 듀오 이름을 ‘두첼로스’에서 ‘복면 첼로’나 ‘자객 첼로’로 바꿀까 고민했지만 매우 유치하다는 주변의 만류로 접었다) 합주를 하는 김에 모니터링을 위해 영상을 찍었고, 기왕 찍은 김에 <동갑내기 첼로 성장기>를 유튜브에 올리기로 했다. 한 사람씩 돌아가며 자꾸 틀려서 여러 번 찍다 보니 NG영상이 많이 생겼다. 그런데 미숙한 연주 영상보다는 낄낄대며 계속 틀리는 NG영상이 더 재미있었고(물론 우리만 재미있는 걸 수도 있다. 보는 이들은 짜증 날 수도), NG도 함께 편집해서 업로드하기로 했다. 유튜브에 연주 고수들은 많지만 우린 첫 업로드한 영상부터 꾸준히 발전해나가는 첼로의 성장기에 방점을 찍기로 했다. 유튜브 영상 업로드의 모든 것을 또 공부해야 했다. 유튜브 영상 올리는 법을 가르쳐주는 유튜버들이 있는데 그중에 구독자를 아예 ‘엄마’라고 호칭하며 딸이 (바보) 엄마에게 가르쳐주듯 누구나 알아듣기 쉽게 잘 가르쳐주는 분이 있어 큰 도움을 받았고, 덕분에 첫 번째 합주 영상 업로드에 성공했다.      

첼로는 이렇게 내 인생의 지평을 계속 넓혀주고 있다. 첼로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내가 이 나이에 유튜브 채널을 만들 일이 있었을까? 영상을 편집하고 자막을 넣고 업로드하는 법을 배웠을까?      

 사람들이 무언가를 배울 때는 그 시대의 맞춤으로 배우는 것 같다. 나는 내가 무언가를 왕성하게 배우고 흡수하던 10대, 20대 시절의 방식대로 지금까지 살고 있는 경향이 있고, 새로운 문물 흡수에 기민하지 않은 편이다.(그러다가 꼰대, 라떼가 되는 건가?) 그런데 2020년에 첼로를 배우니 2020년의 시대의 방식을 함께 배우고 활용하게 되는 것 같다.(유튜버가 됐고, 줌으로 친구와 합주를 하고, 편집 앱으로 두 영상을 합하는 기술적인 면도 어쩔 수 없이 배우게 된다.) 이렇듯 첼로는 나를 이 시대에 적극적인 일원으로 살아가게 해 준다. 뿐만 아니라 늦은 나이에 새로 입문한 취미가 있다는 건, 내게 아직 올라갈 일이 많이 남았음을 의미한다.      

이만큼 사니 모든 게 다 시큰둥하고, 다 뻔하고(네에, 권태기라는 거죠), 정점을 지나 이제 완만하게 잘 내려갈 일만 남은 인생이라 생각했는데 첼로는 나를 다시 초심자로, 병아리로, 끝없이 발전할 가능성이 무한히 남아있는 어떤 영역으로 입장하게 해 주었다. 평균수명이 80을 넘는 시대를 살며 겨우 40대가 이런 얘기를 하는 게 가소롭게 들릴 수도 있지만 40대 후반의 여성들이 다소 우울하고 상실감을 느끼는 건, 이제 엄청나게 기나긴 내리막길에 막 들어섰다는 두려움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런 시기에 나를 새내기로 만들어준 첼로에게 정말 고맙다. 그야말로 고칠 갱, 해년, 해서 세월을 고쳐 사는 ‘갱년기’다. 무엇보다 어느 날 도깨비처럼 나타나 뜬금없는 시작을 가능케 해준 나의 첼로 반려자이자 두첼로스의 이 리더님에게 정말 고맙다.      

이제 겨우 스즈키 2권,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리고 이 길에서 내가 얼마나 발전할지 가능성은 무한하다.(지금 바닥이기 때문에)

노랫말 틀린 거 하나 없다.

‘도전은 무한히, 인생은 영원히, 말하는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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