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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고와디디 Oct 02. 2021

악기에겐 잘못이 없다

첼로 입문기 <이 나이에 기어이 첼로를 하겠다고>

악기 케이스를 좋은 것으로 장만한 뒤 제주의 습기에 젖은 빨래처럼 늘어지던 현들이 자기 자리를 잘 지켰지만 그래도 나의 악기는 이런저런 보완이 필요했다. 현악기들의 현을 악기의 몸체 위로 띄워주는 역할을 하는 나무 조각을 우드브릿지라고 하는데 선생님께서 내 첼로의 우드브릿지가 너무 높아서 깎아야 할 것 같다고 하셨다. 첼로는 왼손가락들로 현을 눌러가며 연주를 하는데 브릿지가 높다 보니 현이 첼로의 몸체로부터 거리가 멀고 그러다 보니 엄청 힘을 주어 찍어 눌러야 했던 거다. 어쩐지 힘들더라. (관절염 오는 줄 알았다.)     

제주시에 있는 현악기 공방을 검색해서 전화로 문의해보니 우드브리지 깎는 건 시간도 얼마 걸리지 않고 가격도 2만 원이면 된다고 했다. 그 뒤로 몇 번을 미룬 끝에 큰맘 먹고 집에서 차로 한 시간을 꼬박 달려 악기 공방에 도착했다. 사장님이 악기를 보자고 하시는데 악기 케이스를 바꾼 다음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 쪼그리고 앉아 주섬주섬 검은색 자루를 벗겨내려면 모양이 많이 빠졌겠어, 하면서. 나는 우아하게 딸깍 딸각 케이스 잠금장치를 열고 첼로를 꺼내드렸다. 그러자 사장님의 첫마디.

“저 케이스에서 어떤 악기가 나오려나 기대했더니.”

사장님은 좋은 케이스를 알아보고 악기도 그에 걸맞은 게 나올 거라 생각했던 거였다. 나는 불필요한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제가 완전 초보라서요. 악기는 연습용으로 샀고, 제주 습기 때문에 케이스는 좋은 걸로 사는 게 좋다고 해서요...”

“아유, 악기 상태가... 이걸로 계속 연습을 하셨어요? 아니, 사람들이 중국산을 팔아도 어느 정도껏 다듬어서 팔아야지. 이건 뭐, 연주 불가, 연주 불가!”

연주 불가라니… 그런 악기로 여태 고군분투 해온 건가! 순간 나의 비루한 연주 실력이 다 저 악기 때문인 거였나 싶어 뭐든 중국산이 문제라고 맞장구를 쳤다. 그리고 그곳에 진열된 악기들은 둘러보며 이것저것 가격을 묻기도 했다. 사장님은 일단 급한 대로 브릿지를 적당한 높이로 깎아주시고, 가능한 부분들을 간단히 정비해주셨고, 나는 여길 진작 알았더라면 돈을 좀 더 주고라도 악기다운 악기를 살 걸 그랬다고 좀 심난해져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음 레슨 시간, 선생님을 만나 악기 공방에서의 일을 말씀드리며 나의 중국산 악기와 그걸 내게 팔아먹은 사람을 성토했다. 가만히 내 얘기를 듣고 있던 선생님이 입을 떼셨다.

“그분 좀 예의가 없으시네요.”

“그러니까요. 네... 네?”

“손님이 악기를 손보러 왔으면 악기만 잘 손봐주면 되지, 왜 남의 악기를 평가하나요?”

“아, 네... 그게 제 악기 상태가.”

“악기는 각자의 형편에 맞춰 장만하는 거고, 쓰면서 다듬어 나가면 되지요.”

“아, 네...”     


나의 악기를 소중히 다루고 누구보다도 아껴줘야 할 사람은 나였다. 그런 내가 누군가의 한 마디에 같이 내 악기를 나무랐던 것. 이 나이를 먹고도 귀가 이렇게 얇나…

내 악기에게 참 미안해졌다.      

나는 전국에서 가장 싼 등급의 중국산 첼로를 샀다. 나도 중국산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악기의 세계에선 저가의 중국산이 공헌한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바이올린은 물론이고, 첼로 같은 악기를 배우는 것은 평범한 집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악기라고 해봐야 학교 앞 문방구에서 사들고 가던 리코더와 탬버린, 학원에 가서 좀 뚱땅거리다 마는 피아노가 전부였다.

그러나 장인이 손으로 만드는 악기 대신 중국 공장에서 찍어내는 악기들이 공급되기 시작하며 원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악기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됐다. 우리 딸도 십만 원짜리 중국산 바이올린으로 바이올린에 입문했다. 초등학교에 갓 들어간 딸이 바이올린 케이스를 메고 다니는 친구가 부럽다고 자기도 배워보고 싶다고 했을 때, ‘저러다 진력나면 금방 때려치울 거면서.’라고 생각하면서도 별 부담 없이 동네 악기점에서 악기를 사줄 수 있었다. 심지어 운 좋게 좋은 악기가 걸려서 딸아이가 몇 년을 쓴 다음에 바이올린 선생님의 다른 어린 제자 둘에게 차례로 물려주기까지 했고, 나중에 선교 사업하시는 선생님의 알선으로 아프리카 어린이에게까지 날아간 것으로 안다.(요즘 돈 십만원을 이렇게 가치있게 쓰기도 쉽지 않다)

나도 급히 악기를 장만해서 제주로 내려와야 했을 때도 고가의 악기만 있었다면 첼로를 포기했을 수도 있었다. 그러니 나의 저가 첼로에게 얼마나 고마운가. 부족한 부분은 손보고 길들이며 보완해나가면 될 일이었다. 그날부터 나는 내 악기에게 고마운 마음을 품고 정을 들여 나갔고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악기에 대한 불만은 전혀 없다.  

인간에게 귀천이 없듯 악기에도 귀천이 없다.

그것을 귀하고 천하게 대하는 사람들이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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