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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고와디디 Sep 30. 2021

8.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

첼로 입문기 <이 나이에 기어이 첼로를 하겠다고>

오랜 세월 첼로를 동경하면서 연주도 연주지만 악기를 메고 다니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길을 가다가 악기 케이스를 메고 다니는 사람을 보면 그렇게 부러웠다. 명품 가방이나 외제차 따윈 부러워한 적 없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건 높은 문화의 힘’이라고 하신 김구 선생님처럼)

나는 늘 그 사람이 들고 다니는 책으로 그의 기호나 대강의 면모를 짐작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아마 악기에 대한 감정도 그런 것과 비슷한 맥락인 것 같다. 악기를 들고 다니는 사람을 보면 ‘나 이런 악기 하는 사람이야.’ 하는 문화의 향기가 풍기고 무언의 언어가 들리는 듯한.     


예술의 전당에 전시를 보러 가거나 음악회에 갈 일이 있으면 문화 행사 앞뒤로 친구와 함께 그 안뜰을 거닐며 산책을 즐기곤 하는데, 나는 곧잘 이런 소릴 했다. 나중에 첼로를 갖게 되면 꼭 ‘예술’의 ‘전당’인 이곳에 가져와서 음악인처럼 메고 거닐겠노라고.      

정말 모르는 소리였다.


첼로는 무겁다. ‘많이’ 무겁다.      

언젠가  번은 첼로 학원에 가면서 첼로를 두고 나와 차를 빼서 얼마쯤 가다가 생각이 났다. (그렇다, 나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다.  맡기세탁소 가면서 옷을 두고 가고, 도서관에  반납하러 가면서 책은 두고 가는.) 그래서 학원 가는 길에 독서실에 내려달라며 같이 타고 있던 딸아이를 대신 올려 보냈다. 첼로를 들고 내려온 아이는 악기를 트렁크에 집어넣느라 서너 번을 넣었다 뺐다 해야 했다. 악기를 보호하는 악기 케이스의 부피 때문에 워낙에 덩치  악기가  커지고 길어져서 각도를  맞춰 한쪽 끝을 먼저 넣고 반대쪽을 넣어야 악기가 들어가고 트렁크 문이 닫힌다. 8 중순  여름 땡볕 아래 땀을 뻘뻘 흘리며  번을 시도하다 포기한 딸이 첼로를 뒷자리에 넣을 생각으로 뒷좌석 문을 열었다. 나는 단호하게  된다고 했다. 그렇게 하면 학원의 촘촘하고 좁은 주차장에서 첼로를 꺼낼 도리가 없다. 우리나라 일반적인 상가 건물의 주차 간격과 부족한 자리를 생각하면 당연하다. ( 번은 좁디좁은 주차장에서  차에 닿지 않게 첼로를 겨우 꺼내긴 했는데  차와   사이로 첼로를 들고 가면  차를 긁을  같아서 마치 제물처럼 첼로를 번쩍 들어 올려 논두렁에 새참이고 나가듯 첼로 케이스를 머리에 이고 나간 적도 있다.) 딸은 씩씩대며 트렁크를 열고 다시  번의 시도 끝에 겨우 첼로를 쑤셔 넣다시피 하고 트렁크 문을 닫았다. ! 어찌나 세게 닫았는지  앞바퀴가 들리는  알았다.   

꽤 온순한 편인 우리 딸, 얼굴이 벌게져서 앞자리에 타더니 씹어 뱉듯 말했다.

“아니 뭔 놈의 악기가 저렇게 무거워???”     


우리 딸이 ‘놈’ 자를 씹어 뱉게 한 첼로를 체중계에 달아보았다.

 7.1 kg 되시겠다.      

악기를 멘 채 길을 거닐고 예술의 전당을 산책하겠노라 했던 나의 소박한 꿈은 그냥 영원한 꿈으로 남았다.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다. 그러나 제주와 수도권을 오가는 삶을 사는 나에게 첼로는 또 골칫거리다. 바이올린처럼 기내에 들고 탈 수 없기 때문이다. 기내에 들고 타려면 따로 좌석을 하나 예약해 드려야 한다.      

한여름이나 한겨울, 차 내부가 너무 뜨거워지거나 너무 추울 때도 악기를 오래 놔둘 수 없다. 그냥 상전 한 분 모시고 다닌다고 생각하면 쉽다. 더우셔도 안 되고, 너무 추우셔도 안 되고 습도가 너무 높아도 안 되고, 안 되고, 안 되고. 아무리 무거워도 등에 지고 다니며 적당한 온습도가 제공되는 곳으로 모셔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첼로를 멘 내 모습을 지켜보면 제법 흐뭇하다. 주로 주차장에서 학원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정도의 거리지만 다만 몇 분 사이에도 기분을 내며 다닌다.      

40을 훌쩍 넘어 처음으로 갖게 된 나의 악기, 무거워도 괜찮아요. 성심껏 모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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