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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고와디디 Oct 01. 2021

틀려도 돼, 멈추지 마

첼로 입문기 <이 나이에 기어이 첼로를 하겠다고>

내가 멀티형 인간이 아니라는 것, 두 팔로 각각 다른 동작을 하는 것도 내겐 엄청난 도전이라는 것은 앞서 얘기했지만 내겐 또 치명적인 약점이 있으니, 순간 상황 판단력이 몹시 떨어진다는 거다. 당황스러운 상황이 생겨 얼른 판단을 내리지 못할 땐 일단 멈춘다. ‘얼어버린다’는 표현이 더 맞을 수도 있겠다. 그래서 흐름을 잘 타는 것이 중요한 운전을 할 때 문제가 많이 생긴다. 양 갈래 길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판단을 하지 못 했을 땐 일단 어느 쪽으로든 주행을 하고 봐야 하는데 나는 두 길 사이 주황색 원형 뿔이 놓여 있는, 빗금 쳐진 부분에 차를 멈춰 세운다. 같이 타고 있는 사람들이 경악하는 가운데 어느 길이 맞는 길인지 열심히 판단을 내리는 거다.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다. 그냥 ‘일단 멈춤’이 내 몸이 기능하는 방식이다. 신혼 땐 이런 일도 있었다. 농구를 좋아하는 남편이 어느 저녁 운동이나 하자해서 농구공을 들고 동네 농구 골대로 갔다. 남편이 슛을 쏘고 내게 떨어지는 공을 받으라고 했는데 고개를 들고 공이 떨어지길 기다리고 있다가 순간 또 얼어버렸다. ‘이걸 받을 순 없을 것 같은데, 그럼 피해야 하나? 그럼 어디로 피해야 하나, 어? 농구공이 생각보다 무지 크네? 어, 어 하다 그냥 멍해진 거다. 자리는 또 얼마나 정확하게 잡고 있었는지 공은 내 얼굴 한 복판 위로 떨어졌고, 나는 코피를 흘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이런 사람이므로 첼로를 연주하다 악보를 보고 어떻게 해야 할지 순간 판단이 되지 않으면 일단 멈춘다. 그리고 한참 악보를 뚫어져라 들여다본다. 내가 몇 번 이러는 걸 지켜보던 선생님이 어느 날 드디어 한 마디 하셨다.

“틀려도 돼요.”

“네?”

“틀려도 되니까 멈추지 마세요.”

“아니, 이 부분이 이게 맞는지 자신이 없어서...”

“연주를 멈추면 틀리는 거고, 계속하다가 틀려도 틀리는 거고, 똑같은 거예요. 어차피 틀릴 거면 그냥 한 군데 틀리고 앞으로 나아가세요. 연주를 시작했으면 끝까지 해야죠.”

아...     

그러고 보면 내가 살아오며 멈춰버리는 건 그냥 습관인 건가 했는데, 그 깊은 내면을 들여다보면 어쩌면 ‘틀리는 게 싫기 때문’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완벽하기 위해 멈춘다는 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가.

그래서 흠도 보이고 좀 허술하기도 해도 일단 새로운 땅으로 나아가는 쪽을 선택하기로 했다.

김연아 선수가 점프와 회전을 하다 넘어졌는데 그 순간 ‘에이 틀렸어.’하고 멈춰버린다고 생각해보라. 엉덩방아를 찧어도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무슨 일이 있었던 가요?’하는 표정으로 끝까지 경기를 마치고 당당히 목에 메달을 걸지 않던가.     

이런 깨달음의 순간이 있긴 했어도 평생 해오고 산 가락이 있어서 요즘도 순간순간 우뚝! 멈추려고 한다. 그렇지만 나는 바로 활을 그으며 다시 앞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한다.  

틀려도 괜찮아. 용감하게 전진 앞으로!

이전 07화 막 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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