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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고와디디 Sep 26. 2021

저.. 호칭은 어드렇게?

첼로 입문기 <이 나이에 기어이 첼로를 하겠다고>

나는 동안이다. 아니, 동안이었다. 스물여덟에 신혼집에 놓을 책상을 사러 갔을 때 판매직원이 엄마에게 물었다. ‘따님이 중학생인가요?’ 엄마와 내가 어이없는 표정을 짓자, ‘아~~ 그럼, 고등학생??’

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아, 그분 영업 참 잘하시네.’ 하겠지만, 하늘에 맹세코 그분은 정말 그렇게 생각하셨다. 앞머리를 똑딱 핀으로 대충 찌르고 떡볶이 코트를 입고 있었기 때문에 더 어려 보이기도 했겠지만 어쨌든 예전엔 어려 보인다는 소리깨나 듣고 살았다.  


하지만 다 옛날 일이다. 지금은 내 주제를 잘 안다. 50을 목전에 두고 조금이라도 어려 보이려고 발악 중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귀신 같이 내 나이를 읽어낸다. 물론 나한테 대놓고 아줌마라고 하진 않지만 지난번엔 친구와 어딜 갔는데 판매 직원 분이 자꾸만 나한테 ‘어머님, 어머님’ 하며 따라다녔다. 딸을 데리고 간 것도 아니고, ‘제가 그쪽 어머님도 아니건만 왜 자꾸 어머님이라고 하시는 건지.’ 또 한 번은 일러스트 전시가 한창인 갤러리에 가서 큐레이터 분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나더러 ‘사모님’이라고 하는 게 아닌가. 나 그날, 보이프렌드 핏 찢청에 무려 스누피 프린트 티셔츠를 입고 헐렁한 오버사이즈 재킷을 걸치고 나름 힙하게 하고 갔단 말이지. 사모님은 어머님보다 더 싫다. 아니, 고객님, 손님, 이런 편견 없는, ‘내가 너의 나이를 알아.’라는 속내가 담기지 않은 아름다운 단어가 참 많지 않은가.


이 정도는 사실 애교다. 한 번은 마트에 무슨 친환경 세제 판촉을 나온 아주 젊은 분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듯한 아주 어려 보이는 친구였다)이 너무 열심히 영업을 하는 모습이 예뻐서 친구와 함께 향을 하나씩 골랐고, 내가 “저는 이걸로 할게요!”했다. 그러자 그분이 환히 웃으며 하는 말씀. “네! 어르신들이 원래 그 향을 그렇게 좋아하시더라고요.”

 이게 지금 무슨 소린가 내가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친구는 빵 터져서 이미 매대 앞에 쓰러져 있었고, 솔직히... 나도 너무 웃겨서 웃어버렸다.


 이 나이가 되면 아무리 감추려 해도 사방으로 뿜어져 나오는 중년 아줌마의 아우라는 정말 무섭다. 부모님 말씀 잘 듣고 조신하게 사느라 10대에 덕질 한 번 못 해보고 늙어버린 내 친구는 40대를 덕질로 활활 불태우는 중인데, 팬 카페에서 누군가 그 친구의 팬심을 자극하는 글을 올리자 참지 못하고 그 카페에서 젊은 친구들이 쓰는 어법과 용어(그 카페는 모두가 반말을 한다고 한다.)를 그대로 흉내 내어 댓글을 달고 말았더란다. 그러자 그 즉시 이런 대댓글들이 줄줄이 달렸다고. ‘줌마팬은 꺼지시지!!’

친구는 말했다. “나 걔들이 쓰는 말투 고대로 따라서 썼단 말이야. 대체 어떻게 안 거야?!?!”


아무튼 이제 나는 그런 급이 됐다. ‘어머님’, ‘사모님’, 혹은... ‘어르신’


그런데 제주에서 첼로 레슨을 받으러 간 첫날, 중년의 남자 선생님께서 ‘선생님이 어쩌고 저쩌고’ 하셨다. 나는 잠시 당황했다. 지금, 저 남자분, 본인을 3인칭으로 부르시는 것인가? 마치 귀여운 여자 친구가 ‘다영이는 속상했쩌.’하고 자신을 3인칭으로 부르듯 그런? 아니면 초등학교 담임교사가 아이들에게 말하듯 ‘선생님이 그런 건 하면 된다고 했어요, 안 했어요?’하는 그런 맥락에서? 그런데 자꾸 듣다 보니 둘 다 아니었다. 그분은 나를, 그러니까 첼로를 배우러 온 학생을 ‘선생님’이라 부르고 계셨다. 매우 어색하긴 했으나, 그저 이 나이에 나름 첼로를 배우겠다고 찾아온 중년 여자 사람을 어찌 불러야 하나 깊은 고민 끝에 취사선택하신 호칭이라 생각하고 감사하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아직도 선생님께서 “선생니임!!!! 그렇게 하면 안 되죠. 다시!! 다시!!”라고 하시면 어딘가 어색하다. 그리고 이어 생각한다.

‘아니, 근데 선생님을 이렇게 혼내도 되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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