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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고와디디 Sep 14. 2021

40대에 첼로를 시작하다

Prelude-서곡

40대는 의외로 좋은 나이다.

인정한다. 풋내기 시절에 4,50대 아저씨 아주머니를 보면 다 산 사람들 같아 보였다는 것. 정말 낼모레 죽을 날 받아놓았다는 말이 아니라 인생의 정말 좋은 시기, 가장 재미있고, 파이팅 넘치고, 열정이 끓는, 설렘과 희망으로 가득한 날들은 다 지났다는 의미다. 인생의 정점을 지나, 그냥 살아가는 나이, 꾸역꾸역, 혹은 무덤덤하게.

하지만 막상 이 나이에 이르고 보니 좋은 점이 많다. 몸에 여기저기 탈이 나기 시작하는 건 좀 서럽지만 마음은 의외로 편안하다.  내 또래 중에도 20대 혹은 30대로 돌아가겠냐고 하면 싫다고 하는 이들이 많다. 살아보니 인생, 뭐 그거 별거 있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제법 느긋해진다.

생각해보라, 초등학교, 중학교 때 1년 늦어서 (소위 1년 꿇어서) 한 살 어린애들과 같은 반에 다녀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면 그 집은 초상집이 됐을 거다. 요즘은 재수가 필수라지만 고3이 재수를 하게 돼도 남들보다 뒤처지는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을 것이며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취업을 못 해도 마음이 부대끼고 주위 눈치 보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40대인 지금은?

풋, 하고 웃겠다. 까짓 1년 정도야 뭐.

무슨 자격증 시험을 친다 가정해보자. 마흔여섯에 패스하는 것과 마흔일곱에 패스하는 게 과연 큰 차이가 있을까? 주위에서 ‘어머, 마흔여섯에 못하고, 마흔일곱에야 겨우 했다지 뭐야. 쯧쯧’ 할 사람이 과연 있을까?

오히려 40대에는 아주 자그마한 성취만 이뤄도 대단하다고 칭찬받는다. 꼭 할 필요가 없는데 하는 거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마흔다섯에 첼로를 배우기 시작해서 진도가 빠르네 늦네 하거나, 마흔여섯에 잘하게 되는 것과 마흔여덟에 잘하게 되는 걸 따지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다.      

그래서 나는 40대에 첼로를 시작해서 악보 읽는 걸 배우고, 굼벵이처럼 진도를 나가고 있지만 조금도 조급하지 않다. 금방 때려치울지도 모른다 생각했는데 여러 가지 난관에도 불구하고 1년 넘게 꾸준히 잘해오고 있다. 어느 날, 내가 정신을 놓거나 신체가 무너지기 전까지는 매일 연습해나갈 생각이다.      


내 본업인 번역보다 재미있는 일을 만날 수 없을 줄 알았는데 처음으로 취미가 재미있어 살맛이 나고, 죽을 때까지 지루할 일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하게 됐다. (연주할 곡은 무궁무진하므로!)     


본래도 기민하지 못하고 빠릿빠릿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인 데다 나이가 드니 노안도 오고 귀도 (예전보단) 잘 안 들리고, 인지 능력도 떨어지다 보니 배우면서 웃픈 일도 많이 생긴다. 그런 나의 첼로 성장기를 글로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 역시 첼로가 내게 준 선물이다. 번역을 하면서 나의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는데, 처음으로 내 이야기를 쓰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늦은 나이에 행복을 주는 취미를 향유하게 된 모든 분들과 공감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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