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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고와디디 Sep 16. 2021

악보도 못 읽는데 첼로를 배울 수 있을까요?

첼로 입문기 <이 나이에 기어이 첼로를 하겠다고>

 첼로 배우기는 무려 20여 년 전 작성한 버킷 리스트에 올라가 있는 미션이었다. 버킷 리스트 좋은 게 무엇인가? 죽기 전에만 하면 되니 시간의 압박도, 부담도 없다. 하지만 보편적으로 놀이공원 가기나 떡볶이 사 먹기를 버킷 리스트에 올리는 사람은 없으니 버킷 리스트를 채우고 있는 항목들은 대개 당장은 여의치 않지만 언젠가는 꼭 하리라 하는 것들이 되기 마련이다. 따라서 뒤집어 말하면 버킷 리스트의 항목들은 시작하기 만만치 않는 항목들 일 것이다. 그리고 사실 인간은 언제 죽을지 모르니 언제까지고 미룰 수는 없다.     

첼로는 입문 문턱이 낮은 악기는 아니다. 일단 덩치가 있기 때문에 악기 가격이 비싸다. 좀 해보다 아니면 말지 뭐, 하고 쉽게 시작하기엔 부담이 있다. 요즘은 옛날과 달라서 바이올린이나 발레 같은 것들이 부잣집 애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10만 원이면 중국산 바이올린을 살 수 있고, 발레도 동네 주민 센터나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싸게는 월 5만 원에 시작할 수 있다. 하지만 첼로는 일단 제일 싼 악기가 60만 원 정도 한다. 중국 공장 산 첼로에 달린 쇠줄을 좀 좋은 줄로 갈면 거기에 플러스 7,8만 원. 케이스도 아주 싸구려를 사려고 해도 30만 원 이상. 그럼 일단 학원비를 제외하고 초기 비용만 돈 백이 들어간다. 학원을 왕성하게 다니는 중고등 학생 자녀를 둔 아줌마의 취미로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악기는 아니다. 거기다 문제는 백만 원씩 들였는데 한두 달 해보고 집어치우게 된다면? 사실, 해보기 전엔 모르는 일 아닌가? 그럼 돈은 돈대로 날리고 첼로를 당근 마켓에 헐값에 처분하거나 나의 실패의 조형물처럼 (덩치나 작은가!) 방 안에 세워둬야 한다.

그래서 결국 죽기 전에 언젠간 하겠지, 하며 첼로는 그저 나의 버킷 리스트 속 악기로 간직만 하고 있었다.

물론 한 번씩 여유 시간이 생겼을 때 떠올려보지 않은 건 아니다. 대략 생각을 정리해보면,      


*못 할 이유

1) 초기 비용이 부담스럽다

2) 중도포기에 대한 두려움

3) 프리랜서라는 특성상 계속 일정하게 연습할 시간이 나지 않을 수 있음

4) 내 일과 경력에 도움 되는 취미가 아님(한글과 영어 두 언어 책을 읽기에도 바쁨)

5) 건강에 도움 되는 취미가 아님(운동할 시간도 없다)

6) 악기가 무겁다

7) 악보 장님임          


*해야 할 이유

1)하고 싶다

2) 들고 다니면 폼 날 것 같다     


역시나 하지 않을 이유가 압도적이었다.      


그랬는데 하루는 늘 만나서 별로 할 말만 없어지면 ‘언젠가 첼로 같이 배우자’고 얘기하던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연습용 첼로를 제공하는 학원을 찾아냈으니 곧 한 번 직접 가본 뒤에 브리핑을 해주겠다고. 나중에 친구 얘기를 들어보니 그 학원 시스템이 제법 괜찮았다. 일주일에 1회 30분 수업료(꽤 부담 없는)를 내고 레슨을 받으면 학원에 있는 첼로를 이용할 수 있고, 언제든지 시간이 날 때 학원 연습실에 가면 준비된 첼로로 연습을 할 수 있다는 거였다. 이러면 얘기가 달라졌다. 내가 20년간 망설인 이유였던 초기 비용과 중도 포기에 대한 부담이 동시에 해결됐다. 결국 추진력 만랩인 친구가 그 학원에 먼저 가서 시강을 받아본 뒤 나를 데리고 학원에 가주었다. 그 자리에서 등록을 하자니 흥분이 되기도 하고 걱정이 되기도 했다. “저 악보도 못 읽는데, 첼로 할 수 있을까요?”

“아유 글자도 읽으시잖아요. 더 쉬워요.”

그, 그렇지. 글자는 읽지, 내가. 그래, 악보도 사실은 인간이 만든 기호.

나는 사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데는 두려움이 없다. 그렇게 생각하니 자신감이 올라갔다.

학원 등록을 마친 후, 친구는 “자, 이제 책을 사야지?”하고 바로 교보문고로 데리고 가서 미리 주문해둔 바로드림 서비스로 교재까지 품에 안겨주었다.

그렇게 ‘어, 어? 어!’하다가 얼결에 첼로에 입문하게 됐다는 이야기.     


교훈

늦은 나이에 무언가를 시작하기 위해 필요한 것: 용기와 추진력

그것이 부족하다면,

추진력과 오지랖을 겸비한 친구.     

역시나...

좋은 친구는 모든 문제의 열쇠 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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