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 처음, 하고 싶은 것에 대해 생각하다
당시 비평준화 지역이었던 시흥에서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려면 내신 성적 관리가 필요했고, 한 학교에 많은 수의 학생들이 몰리면 고등학교 자체적으로 별도의 시험을 치르기도 했다. 중학교 3학년 1학기를 맞이하면 '가내신'이라는 것을 받게 된다. 2년 동안의 성적을 평균내서 3학년 때에도 그대로 유지했을 경우에 내신이 얼마 정도 나오는지 미리 산출한 것을 말하는데, 당시 나의 가내신은 200점 만점에 197점. 경기 남부권에서 내로라하는 이름 있는 인문계 고등학교들에 충분히 진학할 수 있을 만한 수준이었다. 3학년 담임 선생님은 첫 면담 때, 넘치는 의지를 가득 담은 표정으로 나에게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건넸다.
"잘 부탁해"
하지만, 또래 누군가가 심히 부러워할 만한(?) 점수를 듣고도 나는 환하게 미소 지을 수 없었다. 괜찮은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하고, 괜찮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은 내가 원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어른들이 원하는 것이었으니까. 좋은 학교에 진학하면 좋은 인생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어른들의 말은 사실일까. 그런 의문이 좀처럼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던 시절이다. 2학년 2학기가 끝나가던 무렵, 한 친구가 나에게 다가와 이야기해주기도 했다. 이번에 기말고사에서 너 전교 4등 했더라 총 성적으로는 전교 3등인가 그럴 걸, 내가 교무실에서 봤어. 그때도 나는 기쁘지 않았다. 기뻐, 해야 하나?
노력에 대한 대가이기는 했다. 수업 시간에 또래 아이들보다 더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선생님과 부모님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좋은 성적을 받으려고 노력했다. 시험 기간이면 아침 일찍 일어나 공부를 하기도 했었고, 예습과 복습은 언제나 빼먹지 않고 꾸준히 했었다. 그런데, 그런 꾸준한 노력에 대한 결과물을 받아 들고도 좀처럼 기쁜 마음이 들지가 않았다. 어떠한 성취감도 느낄 수가 없었다.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난 왜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거지?'
어릴 적 전학을 자주 다닌 탓에 남들에게 잘 보이고 싶은 욕구가 커서이지 않았을까. 선생님에게 잘 보이기 위해, 부모님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친구들에게 공부 잘하는 아이로 보이기 위해... 나는 나를 위해 살아오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공부는, 나에게 나의 그 어떤 면도 설명해주지 못하는 것이었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 앞에 나를 드러내기 위한 하나의 페르소나에 지나지 않았음을, 나는 사춘기에 접어들며 깨닫게 되었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연필을 손에서 놓은 것은.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는 좋은 고등학교를 나와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 중학교 내신을 잘 쌓아나가야 한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비율상 3학년이 50%, 2학년이 30%, 1학년이 20%로 반영되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말하자면, 좋은 대학을 위한 첫걸음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시기가 바로 중학교 3학년인 셈이다. 하지만, 나에게 그 중요성은 조금도 와닿지 않았다. '좋은 대학'이라는 목표는 학부모와 선생님이 정해준 것이지 결코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나는 남들이 말하는 중요한 시기에 인생 첫 방황에 접어들었다.
좀처럼 그 어떤 것에도 흥미가 생겨나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물음을 해결해 줄 만한 무언가를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지도 않았다. 사실 홀로 감당하기 어려운 이런 고민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고, 어느 누구도 거기에 대해서 제대로 된 답을 내려주지 못했다. 나는 좋아하지도, 잘하지도 않는 컴퓨터 게임에 몰두하기도 했고 틈만 나면 친구들과 피시방, 노래방을 전전하기도 했다. 내 인생을 제대로 마주 보는 방법을 몰랐던 시기였다. 그때 누군가가 좋은 대학, 좋은 고등학교와 같은 뻔한 대답 말고 인생에 대한 나의 진지한 고민을 어른으로서 들어줬더라면 어땠을까. 늘 그런 부분들이 아쉽다. 급격한 산업화 속에서 안정적으로 닦인 길만이 정답이라는 생각에 치우친 어른들이 상당히 많은 상황에서 인생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내가 마냥 어린아이로만 보였던 것일까. 그저 자신들이 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는 나를 문제아로 여겼던 걸까. 길 잃은 어린양을 이끌어 줄 누군가는, 적어도 당시 내 주변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학교 수업시간에 집중하는 태도가 평소 습관으로 자리 잡은 탓에, 집중하고 싶지 않아도 나는 무의식적으로 집중을 해나갈 수 있었다. 중학교 3학년 성적은 예전에 비하면 크게 떨어진 편이었지만, 그런 습관들 덕분에 평균 수준은 웃돌았다. 해결될 기미가 조금도 보이지 않았던 나의 고심은 고등학교 1학년이 끝나갈 무렵까지 지속되었다. 꽤나 고단하면서 힘겨웠고 좀처럼 답답함에 잠을 이룰 수 없었던 나날들의 반복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기나긴 터널에도 끝이 있듯이 나의 작은 방황에도 분명 끝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