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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필 Oct 13. 2024

노래가 하고 싶어요

처음으로 하고 싶었던 것


"너는 공학박사가 되어야 해."


공학 박사가 어떤 직업이고 무엇을 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때에, 아버지는 나에게 공학 박사라는 직업을 제시했다. 너는 공부를 잘하니까, 나중에 포항 공대에 진학해서 공학 박사를 하는 걸 목표로 삼아. '공학'이 무엇인지, '박사'가 무엇인지도 몰랐던 나는 잠시의 고민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 저 공학 박사가 될게요. 그저, 아버지의 말씀대로 공부만 잘하면 될 수 있는 것이겠거니. 실제로 초등학교 장래희망에 '공학 박사' 네 글자를 적어서 제출했었다. 이게 뭐 하는 직업이야? 친구들이 물어오면, 아- 박사! 과학 박사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돼. 라고 말하며 적당히 둘러댔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참으로 웃긴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신도 잘 이해하지 못한 것이 되려고 하다니. 원래 어린아이들이 다 그런 건가 싶기도 하고. 그러고 보니 같은 반에 대통령이 될 거라고 했던 아이도 있었다. 혹시 나중에라도 선거에 나오면 찍어줘야지.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여느 또래 아이들처럼 깊은 고민이 없었던 어린 나는, 그저 꾸준히 함으로써 잘 해낼 수 있었던 공부를 계속해서 해나갈 뿐이었다. 아마 중학생 때까지도 나의 장래희망은 여전히 공학박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여전히, 그 직업에 대해서는 좀처럼 감을 잡지 못했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공부 잘하는 아이가 박사가 되고 싶다니! 하는 생각으로 우러러보던 주변 친구들의 시선이 썩 나쁘지만은 않았다. 결국 중학교 3학년이 되기 전, 나의 인생을 뒤흔들어 놓은 강력한 질문 하나로 '공학 박사'라는 단어는 내 인생에서 영영 사라져 버렸지만 말이다. 


되고 싶은 것은 보통 하고 싶은 것과 결이 같다. 공학 박사가 되고 싶다고 이야기해 왔었지만, 나는 이유도 모른 채 공부를 계속해 나가고 싶지는 않았다. 깊은 고민에 빠진 상태에서 나는 어쩔 줄 몰라했다. 그 어느 곳에도 내가 원하는 대답은 없을 것만 같다는 느낌을 아주 강하게 받은 탓에 현실을 외면하는 쪽으로 몸을 완전히 틀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공부를 잘해왔던 아들의 방황이 금방 끝날 줄로만 기대하고 기다리는 쪽을 선택했다. 나름의 판단으로 그런 행동을 했을 것이라 생각은 하지만, 오히려 그런 선택은 나를 더욱더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나의 미래에 대해 부모님은 조금도 관심이 없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냥 이렇게 집에서 컴퓨터 게임에만 몰두해도 부모님은 아무렇지 않은 건가? 


그러던 중에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별안간 가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무언가를 하면서 즐거웠던, 혹은 행복했던 순간들에 대해서 떠올려 보았고, 가장 뚜렷하게 머리에 내리 꽂힌 것이 바로 노래였다. 가족들과 외식 이후 노래방에 가는 것을 좋아했으며, 친구들과도 시험이 끝나면 꼭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며 즐거운 시간들을 보냈다. 그리고, 노래를 잘한다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어왔다. 단지 그뿐이었지만, '가수가 되면 어떨까?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마음껏 부르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이 스쳤다. 당시 유명했던 김명기 보컬 강좌 동영상도 찾아보며 호흡법을 익히거나 가수 등용문에 대해서 인터넷 검색을 해보기도 했다. 당시에는 뚜렷한 오디션 방송프로그램도 없었을뿐더러(슈퍼스타K가 나오기 전이다), 상당히 제한적인 정보들밖에 없었기 때문에 나는 만족스러운 정보를 얻지는 못했다. 하지만, 오랜 고민 끝에 찾아낸 답을 완전히 묵살할 수는 없었다. 해보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저 보컬학원 좀 보내주세요."


지금껏 부모님의 어려운 사정을 잘 알았기에 그 어떤 부탁도 해본 적이 없었다. 장난감을 사달라고 떼를 쓴다거나, 유행하는 옷이나 신발을 사달라거나, 혹은 용돈을 더 올려달라거나 하는 흔한 부탁조차 감히 꺼내지 못했다. 이미 충분히 무거운 짐들이 부모님의 어깨를 한껏  짓누르고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하게나마 알고 있었으니까. 나서서 그 짐 위에 철푸덕하고 철없이 업히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태어나 처음으로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부모님을 향한 배려는 잠시 접어둔 채 입을 열었던 것이다. 물론, 입 밖으로 꺼내기까지는 많은 고민들과 망설임을 거쳐야 했다. 어머니는 잠시 고민하더니 결코 가볍지만은 않았던 '알겠다'라는 대답을 내어 놓았다. 인생에 있어서 나의 첫 방황은 생각보다 경쾌한 첫걸음을 뗀 듯했지만, 순탄하게 나아가지는 못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에게는 음악적 재능이 없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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