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가 하고 싶어요

태어나 처음으로 하고 싶었던 것

by 봉필


"너는 공학 박사가 되어야 해."


'공학 박사'가 어떤 직업을 말하는 것이고 무슨 일을 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어린 날에, 아버지는 나에게 공학 박사라는 직업을 제시했었다. 너는 공부를 잘하니까, 나중에 포항 공대에 진학해서 공학 박사를 하는 걸 목표로 삼아. '공학'이 무엇인지, '박사'가 무엇인지도 몰랐던 나는 잠시의 고민도 하지 않고 대답했었지. 저 공학 박사가 될게요. 그저, 아버지의 말씀대로 공부만 잘하면 될 수 있는 것이겠거니. 실제로 초등학생 때 장래희망으로 '공학 박사' 네 글자를 적어서 제출했었다. 이게 뭐 하는 직업이야? 친구들이 물어오면, '아- 박사! 과학 박사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돼. '라고 말하며 적당히 둘러댔었다고.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참으로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신조차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직업을 가지려 하다니. 원래 어린아이들이 대체적으로 다 그런 건가 싶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초등학교 몇 학년일 땐가, 같은 반에 대통령이 될 거라고 했던 아이도 있었다. 혹시 나중에라도 선거에 나오면, 내가 졸업한 학교 출신의 아이인 것이 확인되면 찍어줘야지 싶다(사실 얼굴도, 이름도 희미하지만).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 여느 또래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깊은 고민까지 없었던 어린 나는, 그저 꾸준히 함으로써 잘 해낼 수 있었던 공부를 계속해서 해나갈 뿐이었다. 아마 중학생 때까지도 나의 장래희망은 여전히 공학박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여전히, 어린 날과 마찬가지로 그 직업에 대해서는 좀처럼 감을 잡지 못했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공부 잘하는 아이가 박사가 되고 싶어 하다니! 하는 마음으로 나를 우러러보던 주변 친구들의 시선이 썩 나쁘지만은 않았다. 결국 중학교 3학년이 되기 전, 나의 인생을 뒤흔들어 놓은 강력한 질문 하나로 '공학 박사'라는 단어는 내 인생에서 영영 사라져 버렸지만 말이다.


되고 싶은 것은 보통 하고 싶은 것과 결을 같이한다. 공학 박사가 되고 싶다고 줄곧 남들에게 이야기해 왔었지만, 나는 이유도 모른 채 공부를 계속해 나가고 싶지는 않았다. 깊은 고민에 빠진 상태에서 나는 어쩔 줄 몰라하며 허우적 댈 뿐이었다. 그 어느 곳에도 내가 원하는 대답은 찾을 수 없을 것만 같다는 느낌을 아주 강하게 받은 탓에(근거는 없었다), 현실을 외면하는 쪽으로 몸을 완전히 틀어버렸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공부를 잘해왔던 아들의 방황이 금방 멈출 줄로만 기대하고 기다리는 쪽을 선택했더랬다. 학기 중엔 괜찮아지겠지,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괜찮아지겠지 하는 마음이었다고. 나름의 판단으로 그런 행동을 했을 것이라 생각은 하지만, 오히려 그런 부모님의 선택은 나를 더욱더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나의 미래에 대해 부모님은 조금도 관심이 없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당시에 계속해서 떠올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냥 이렇게 집에서 주야장천 컴퓨터 게임에만 몰두해도 부모님은 아무렇지 않은 건가?


그러던 중에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별안간 가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나는 떠올렸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무언가를 하면서 즐거웠던, 혹은 행복했던 순간들에 대해서 곱씹어 보았는데 가장 뚜렷하게 내 머리에 내리 꽂혔던 것이 바로 노래였다. 가족들과 외식 이후 노래방에 가는 것을 좋아했으며, 친구들과도 시험이 끝나면 꼭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며 즐거운 시간들을 보냈었다. 그리고, 노래를 잘한다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어왔다(자기 객관화가 덜 된 상태였지). 단지 그뿐이었지만, '가수가 되면 어떨까?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마음껏 부르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이 스쳤었다고. 당시 유명했던 김명기 보컬 강좌 동영상을 찾아보며 호흡법을 익혀보기도 하고, 가수 등용문에 대해서 인터넷 검색을 해보기도 했었다. 당시에는 뚜렷한 오디션 방송프로그램도 없었을뿐더러(슈퍼스타K가 나오기 전이다), 상당히 제한적인 정보들밖에 없었기 때문에 나는 만족스러운 정보를 얻어 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오랜 고민 끝에 찾아낼 수 있었던 답을 완전히 묵살하며 그대로 다시 게임 따위에 빠져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살면서 처음으로, 해보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더랬다.


"저 노래 학원 좀 보내주세요."


지금껏 부모님의, 우리 가정의 어려운 경제적 사정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와 관련된 어떤 부탁도 어린 시절에 감히 해본 적이 없었다. 장난감을 사달라고 떼를 쓴다거나, 유행하는 옷이나 신발을 사달라거나, 혹은 용돈(기실 정해진 용돈이랄 것도 없었다)을 더 올려달라거나 하는 흔한 부탁조차 감히 꺼내지 못했다. 이미 충분히 무거운 짐들이 부모님의 어깨를 한껏 짓누르고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하게나마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나서서 그 짐 위에 철퍼덕하고 철없이 업히는 불효자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태어나 처음으로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강하게 사로잡혀 부모님을 위한 배려는 잠시 잊은 채, 어렵게 입을 떼었던 것이다. 물론, 입 밖으로 꺼내기까지는 많은 고민들과 망설임을 거쳐야만 했다. 어머니는 내 말을 듣고 잠시 고민하더니 결코 가볍지만은 않았던 '알겠다'라는 대답을 내어 놓았다. 그렇게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내가 스스로 원했던 일에 뛰어들 수가 있었다.


인생에 있어서 나의 첫 방황은 생각보다 경쾌한 첫걸음을 뗀 듯했지만, 생각만큼 순탄하게 나아가지는 못했다. 우리 가족의 경제적인 여건 때문에 막상 다니게 된 보컬 학원을 3개월 정도만에 그만두게 되었다는 현실적인 상황도 있기는 했지만, 무엇보다 나의 마음가짐 자체가 그리 견고하지 못했던 탓도 있었다. 15년 평생 공부만 할 줄 알았지, 다른 영역에 있어서는 문외한이나 다름없어서 나의 흥미와 열정을 어떤 노력으로 승화시켜야 하는지 완전히 젬병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나에게는 남다른 음악적 재능 같은 것은 없었다. 다소 드라마틱한 미래를 꿈꿔왔던 나는, 다소 쉽게 무너져 내려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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