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Is My Life

내 인생에서 음악이란

by 봉필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서도 꿋꿋이 음악에 대한 감정을 키워나갈 수는 있었다. 어디까지가 재능의 영역이고 어디까지가 노력의 영역인지 알 수가 없었던(여전히 알아내지 못하긴 했지만) 당시 중학생 나이로서는 하고 싶은 것을 찾아냈다는 사실에도 막막한 느낌을 좀처럼 지울 수가 없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하면서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 현실적인 부분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어린 마음으로 내가 아주 특출한 재능이 없는 한 음악으로 성공을 거두기 어려울 것이라는, 현실적이고 안타까운 생각을 어느 정도는 했었더랬다. 아주 약간은 핑계와 같은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런 생각들 때문에 제대로 집중하면서 노력할 수가 없다는 답답한 측면도 분명 당시에는 있었다. 늘 용기를 잃지 않으려 했지만 어쩔 수 없이 현실을 생각하지 않을 수는 없었던 상황. 그런 현실적인 문제들에 사로잡혀 제대로 된 노력을 기울이지는 못했었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음악은 그 자체만으로 나에게 힘을 안겨주었다고 할 수 있다. 남이 원해서 해나갔었던 공부가 아닌, 순수한 의지로 집중할 만한, 그리고 충분히 즐길 수 있는 무언가를 발견했다는 사실에 그 당시에는 나름대로 행복한 나날들을 이어갔었다. 3개월 정도밖에 다니지 못했던 보컬 학원에서도 최선을 다해 선생님이 가르쳐준 대로 노래를 부르고 음악도 많이 들었다고. 천부적인 재능이랄 것도 없었고, 다른 아이들처럼 음악을 계속적으로 이어가야만 하는 특별한 동기도 없었지만, 그저 열심히 해보려는 노력 정도는 했었다. 애초에 공부 말고는 뭐 하나 꾸준히 해본 적도 없었던 나였기에, 다른 일을 꾸준히 해나가야 한다는 감각조차 처음이었으니 이미 그 분야에 심취해 있던 아이들에 미치기에는 역부족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음악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면 여전히 '꿈'이라는 단어를 자연히 연상하곤 한다.


"가수가 꿈이라고? 노래 한번 해봐."


왜 사람들은 타인의 꿈에 대해 그토록 무례한 걸까. 누군가 꿈에 대해 이야기하면 응원과 격려를 보내기보다는, 당장에 팔짱을 끼고 눈빛을 가리는 선글라스를 낀 채 인상을 잔뜩 찌푸린 한 명의 심사위원이 되어 그 꿈에 대해 감히 심사를 할 준비를 한다. 어른이 된 지금에 와서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행동들이다. 자신의 인생에 있어 꿈을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열등감으로 꿈을 가진 타인에 대해 시기와 질투의 마음이라도 불태워 보려는 심산인 걸까. 더욱이, 당시에는 심란한 사춘기 소년이었기 때문에, 남들에게 섣불리 가수가 꿈이라는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었다. 꿈이라는 단어를 섣불리 뱉었다가 혹시라도 당장 그 자리에서 노래를 시킬까 두려워했었다고. 자신감은 부족했고, 노력을 지속해 가기엔 너무나 나약했었다. 지금에 와서는 약간 아쉬운 마음이 들 수밖에 없다. 그래도 어떻게든 놓지 않고 꾸준히 해나갔더라면, 관련 업계의 일 정도는 꿰찰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살아가다 보니 무슨 일이든지 머릿속에 그리기만 할 뿐 행하는 사람은 적고, 개중에 열심히 하는 사람은 더더욱 적고, 거기에 꾸준히 하는 사람은 찾아보기가 힘들다는 현실 상황에 대해 조금만 더 빨리 알아차렸더라면, 어쩌면 나는 과거에 음악을 좀 더 끈질기게 붙잡을 힘을 '감히' 내보지 않았을까.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그 정도의 간절함이 없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런 현실 상황을 재고 따지면서 소극적으로 열심히 할 상황을 살필 정도라면, 아마도 내가 업으로 삼을 만한 일은 아니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지 모른다. 내 과거 속의 평행 우주는, 늘리면 늘릴수록 현실 속에 후회만이 쌓여갈 뿐이다. 재미난 상상 한 번 해봤다 생각하면서 적당히 접어버려야지.


노래를 아주 조금 배웠을 뿐이었지만, 어쨌든 음악은 혼란스럽고 힘겨웠던 내 삶에 구원자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다. 내 인생의 암흑기라고 할 수 있는 중학교 3학년과 고등학교 1학년 동안을 내 곁에서 머물러 주었으니 말이다. 중학교 3학년의 시기에는 그저 시간을 흘려보내기만 했다. 물론 이전의 삶 속에서도 그저 남들이 시키는 대로 시간만 보낼 뿐이었으니 겉으로 봐서는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나의 인생에 대한 무거운 고심이 얹어졌다는 면에서는 사뭇 차이가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확실히 아무 생각이 없었던 2학년 때와는 인생의 무게 자체가 달랐달까. 더는 웃으면서 학교에 다닐 수가 없었고, 하교 후의 시간들에도 좀처럼 해소되지 않는 답답함을 주변에 은근히 퍼뜨리며 다녔었다. 교실 내에서 웃고 떠드는 아이들을 보면서 홀로 고고한 척 깊은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저 아이들은 앞으로의 인생에 대한 고민들은 전혀 하지 않는 건가? 어느새 나는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기 위해서 나의 깊은 고민들을 보이지 않게 접어 넣는 준비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그러지 않으면, 아이들로 하여금 스스로가 한없이 어두운 아이로만 비칠 것이 뻔했으니 말이다.


고등학교에는 나름대로 무난하게 진학할 수 있었다. 중학교 1, 2 학년 때의 우수한(?) 성적을 바탕으로 친형이 다니고 있었던 안산의 인문계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하필 내가 입학하는 시기에 그 학교에만 정원을 140명 초과하는 인원이 지원하는 바람에 시험을 치러야 하긴 했었지만 말이다. 고등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몸과 머리가 되었음에도 나의 인생에 대한 답답한 마음은 여전히 풀리지 않은 상태였다. 공부에 대한 흥미는 점점 사라져 가는데, 오히려 주변에서는 공부에 대한 압박을 더욱더 거세게 가해 왔다.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을 했던 탓에 '야간 자율 학습'은 그 이름과는 어울리지 않게 사실상 강제되었다. 평일이면, 학교에서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버스로 등교를 했었기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은 대략 6시 30분 정도. 당시에는 토요일도 격주로 학교를 가야 했기 때문에(쉬는 토요일이 '놀토'라 불리던 시절) 내가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은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방학 때에도 역시 방학 특강이라는 비정규 수업을 들어야 해서 일정 기간 학교를 가야만 했다. 당시 싸이월드에 유행처럼 번져있던 글귀는 내가 당시에 처했던 상황을 적나라하게 말해준다.


학생이라는 죄로,

학교라는 교도소에서,

교실이라는 감옥에 갇혀,

출석부라는 죄수명단에 올라,

교복이라는 죄수복을 입고,

공부라는 벌을 받고,

졸업이란 석방을 기다린다.


어른들의 잔인하리만치 확고한 생각들은 자라나는 아이들을 더없이 불행하게 한다. 좋은 대학, 그리고 좋은 직업을 가지면 좋은 인생이 완성된다는, 종교적 수준의 믿음이 당시 모든 인문계 고등학교의 행태를 그런 식으로 가꾸었다고 생각한다. 담임 선생님 상담 시간은 언제나 대학이나 부족한 과목들에 대한 이야기로만 채워졌고, 내가 궁금해했었던 인생에 대한 이야기는 아주 조금도 들어가 있지 않았다. 용기 내어 건넸던 질문들에도 선생님의 답은 언제나 "일단은 좋은 대학에 간 다음에"였다. 나는 그러면 그럴수록 공부와는 더욱더 거리를 둘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꽤 마음이 맞는 친구를 고등학교에 올라와서 만날 수 있었다. 같은 학급에 기타를 치는 친구였다. 어떻게 친해졌는지는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꽤나 힘겨웠던 그날들 속에서 한 줄기 낭만과도 같은 친구였지. 나는 그 친구를 따라다니며 기타를 조금씩 배울 수 있었다. 아버지에게 부탁해(살면서 부모님에게 했던 몇 안 되는 부탁들 중 하나) 15만 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동네 기타점에서 기타를 사 홀로 집에서 기타 연습을 해나가기도 했었다. 이미 그 친구가 숱한 연습으로 흥미를 잃었던 여러 타브 악보들을 집으로 가져와 기타를 붙잡고 한 음, 한 음 뜯어가며 고단한 마음을 달랬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무언가에 몰두하기에는 정신적으로 강인하지 못했던 시기였다. 여전히 뚜렷한 목표나 흥미는 없었기에, 넘치는 열정을 불태우며 30 분 정도 붙잡고 있다가 금세 지겨워하며 방 한쪽에 쓸쓸히 기타를 세워두는 식이었다. 당연히 기타 실력이 눈에 띄게 좋아지는 기적과도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어차피 노력해 봐야 이 답답한 학교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데."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야만 했기에, 무언가에 열중한다는 것은 어린 나에게 실로 불가능한 일로 인식되었다. 학교라는 울타리가 나의 음악에 대한 열정을 막고 있는 것이라는 다소 과장된 생각도 했었다고.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대단한 정도의 특별한 재능이나 노력을 들일 수 없는 나 자신을 원망하는 것을 대신해서 학교나 주변환경을 원망했던 것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대부분의 시간을 빼앗겼던 것은 사실이지만, 진심을 다해 좋아하는 일이었다면 어느 정도의 노력은 꾸준히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어떻게 해도 벗어날 수 없는 환경과 좀처럼 다잡을 수 없었던 내 마음에 수없이 절망하고 좌절했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물음이 지워지지 않는 한 아무것도 해내지 못할 것만 같은 마음이었다.


그런 암울한 상황 속에서도 그 시절 나의 귓가에는 늘 음악이 흘러 들어왔었다. Eric Benet, Muse, Taylor Swift... 그리고 기타 치는 친구가 알려주었던, 내 인생에 나침반이 되어준 Jason Mraz. 내가 그렇게 흔들리면서도 엇나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아름다운 음악들이 슬픔과 절망, 우울을 대변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힘겹고 고통스러운 삶을 곱씹을 때에 음악만큼 좋은 친구가 없다. 길을 잃고 방황하는 이의 감정을 한껏 받아 올리며, 다시 일어나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주는 훌륭한 친구. 음악은 나에게 그런 존재였고, 앞으로도 그런 존재일 것이다.


고민이 있는가? 이어폰을 귀에 꽂고 눈을 살며시 감아보자.

아주 잠시, 잠깐이라도 좋으니 그 리듬에 집중하며 몸도, 마음도 맡겨보도록 하자.

그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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